'수사·기소 분리' 때문에 전국 검사장 불렀는데…말도 못 꺼낼 분위기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20.02.1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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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임 국무위원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임 국무위원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소집한 '전국 검사장 회의'에서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 당장 회의 소집 명분이던 수사와 기소 주체 분리에 대한 논의는 현실성이 없는 내용이란 지적에 분리가 아니라 분권형 형사사법시스템에 대한 논의라며 안건 주제를 변경한 상태다. 일선 검사장들 사이에서도 "이미 끝난 이야기아니냐"며 차가운 반응이 주를 이룬다.

오히려 장관 취임 이후 검찰개혁을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검찰장악을 시도한 추 장관의 소통 방식에 이의 제기를 벼르는 움직임이 감지돼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일선 검사장들의 '항명 사태' 가능성도 우려된다. 최근 우군이었던 여당에서마저 추 장관의 '검찰개혁'이 방향타를 잃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 조직에 대한 법무부의 우위를 과시해왔던 추 장관의 입지가 중대 고비를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기소 분리 논의 "물건너 갔다" 냉소적 반응
18일 법무부와 검찰 등에 따르면 일선 검찰청은 오는 21일 전국 검사장 회의를 앞두고 법무부의 수사와 기소 분리 추진 주장에 대비해 대응 논리를 취합 중이다. 주로 검찰 내부의 수사와 기소 분리 방안이 검찰청법상 검사의 권한이나 형사소송법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와 사례, 통계 등을 수집해 반대 논거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검사장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평검사들이 검찰 내부망을 통해 추 장관의 주장을 공개 반박하기 시작했다. 전날 차호동 대구지검 검사(사법연수원 38기)는 추 장관이 수사·기소 주체 분리의 근거로 든 일본 검찰의 낮은 무죄율에 대해 "일본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무죄율이 극도로 낮아 학계의 연구대상이 돼왔고, 이는 이른바 ‘정밀(精密) 사법’이라는 일본의 소극적 기소 관행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회의 준비와 별개로 이번 회의에서 수사·기소 분리 방안이 추진되기는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다수다. 추 장관이나 법무부가 당초 추진해야 한다고 들었던 일본 사례가 사실과 다르다고 판명나고 구체적인 방안조차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 강행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 일선 지검장은 "수사·기소 분리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난 셈"이라며 "다만 수사 검사가 기소를 할 때 '레드팀'을 만들어 견제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해 보완할 점을 논의해 봐야 한다는 데 컨센서스가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장급의 한 간부 역시 "국민들 역시 수사 검사와 기소 검사를 분리한다는 법무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아니냐"며 "이미 여론에서 물건너 간 일인데 전국 검사장 회의를 소집해서 논의한다해서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역시 지난 13일 부산고검·지검을 방문해 "수사는 기소에 복무하는 개념으로 독자적 개념이 아니다"라고 말해 사실상 수사·기소 분리 방안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윤 총장이 전국 지검장 회의 참석을 앞둔 지검장들의 입장 정리를 도운 셈이다. 윤 총장은 20일 광주고검과 지검을 방문한 후 21일 전국 지검장 회의에는 불참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1일 오후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진행된 취임 후 첫 공식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1일 오후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진행된 취임 후 첫 공식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일방적 '검찰장악' 행보에 이의제기 움직임도
이번 회의에선 수사·기소 분리 방안 뿐 아니라 수사권조정·공수처 법안의 하위 법령 제정과 검찰 수사관행 및 조직문화 개선 등도 안건으로 채택됐다. 특히 추 장관은 장관 취임 후 검찰개혁 과제로 검찰 수사관행과 조직문화 문제를 끊임없이 거론하며 지휘·감독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따라서 이를 통해 역공을 꾀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추 장관은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불구속 기소 당시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두고 "검찰청법상 검찰총장의 지시는 일반적 지휘감독권이고 구체적 수사 지휘권은 검사장의 고유 권한"이라며 일선 검찰청에 대한 검찰총장의 지휘권 행사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지검장은 "구체적 사건의 지휘감독권은 검찰총장에게 있다는 것은 모든 검사들이 동의하는 것"이라고 잘라말하며 "추 장관이 이 주제를 먼저 꺼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실익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추 장관이 검찰총장의 지휘감독권 문제를 지적했다간 참석한 지검장들의 거센 반발을 사며 검찰 조직과 척을 지게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거꾸로 이번 기회에 추 장관의 '무대뽀식' 검찰 장악 방식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다며 추 장관의 소통 방식과 검찰수사 독립성에 대한 몰이해도 등에 대해 이의제기를 준비하는 지검장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천=뉴스1) 안은나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신임검사 임관식을 마친 후 신임 검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2.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과천=뉴스1) 안은나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신임검사 임관식을 마친 후 신임 검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2.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미애 행보에 커지는 비판…몸 사릴까
검사장 회의에 대한 일선 검찰청의 부정적 기류가 확산되자 법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이날 공문을 다시 보내 회의 일정을 변경했다. 당초 오전 10시부터 7시간 동안 열기로 했던 회의 시간을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으로 대폭 줄였고 추 장관과 저녁 자리도 희망자에 한해 참석하도록 했다.

지검장들이 오전 회의 등 업무를 봐야한다는 점을 고려해 회의 시간을 조정했다는 게 이유지만 애초에 과욕에 가까운 일정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추 장관이 검찰 인사에서부터 공소장 비공개, 수사·기소 분리까지 무리수를 자초했다는 비난이 커지면서 전국 검사장 회의 소집에 대한 비판 여론도 반영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추 장관과 검찰 간 갈등이 총선 악재가 될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4일 민주당 공개회의 석상에서는 "추 장관이 추진하는 개혁방안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권 사건과 관련 있는 것처럼 비쳐지지 않도록 주의해달라"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당 내부에서는 추 장관의 행보에 거친 표현을 동원해 비판하는 인사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추 장관이 친정인 여당에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검사장 회의 소집이 당초 목적대로 힘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아무래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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