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국열차]美 IT기업 규제강화 뒤엔 한 남자가 있다

머니투데이 김수현 기자 2020.02.1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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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푸는 국제부 기자들]
오라클 로비스트 글룩
직접 제보로 경쟁 IT기업 규제강화 이끌어

편집자주 복잡한 국제경제이슈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보려 합니다. 재미있는 '썰'을 풀듯이 어느 한 부분이 아닌 전체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로비스트 케네스 글룩. 앞줄 중간에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과 사리프 캣츠 오라클 최고경영자(CEO)가 걸어가고 있다. /사진=AFP가장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로비스트 케네스 글룩. 앞줄 중간에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과 사리프 캣츠 오라클 최고경영자(CEO)가 걸어가고 있다. /사진=AFP


최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등 미 5대 IT기업에 대해 스타트업 등 중소기업 인수와 관련한 상세 정보를 넘기라고 명령했습니다.

FTC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곳으로 대표적인 규제기관입니다. 과거 FTC가 이들을 대상으로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는지 광범위하게 살펴본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번 조사에서는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하면서 한층 더 압박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IT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부추긴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라클의 워싱턴 로비스트 케네스 글룩입니다.

[썰국열차]美 IT기업 규제강화 뒤엔 한 남자가 있다
미국 IT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배경엔 한 '로비스트'가 있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조 사이먼스 위원장. /사진=AFP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조 사이먼스 위원장. /사진=AFP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술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감독이 강화된 배경에는 케네스 글룩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글룩은 비즈니스용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파는 오라클의 워싱턴 최고 로비스트입니다. 우리와 달리 로비스트가 합법화돼있는 미국에서 그는 오라클의 경쟁사라 할 수 있는 거대 IT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구글과 MS가 독점법을 위반했는지를 조사하라며 규제 당국에 압력을 넣었고 국방부로부터 대규모 클라우딩 컴퓨터 계약을 따내려는 아마존이 이해상충혐의가 있다고 밝힌 장본인입니다.

청바지에 스니커즈 차림으로 직접 뛰는 로비스트
페이스북, 애플, 구글, 아마존 로고. /사진=AFP페이스북, 애플, 구글, 아마존 로고. /사진=AFP
지난해 오라클이 로비에 쓴 돈은 820만달러(약 97억원). 이는 구글(1270만달러), 아마존(1680만달러), 페이스북(1670만달러)이 쓴 것보단 훨씬 적은 액수입니다. 하지만 오라클은 글룩 하나로 이들을 이겼습니다.


AT&T의 최고 로비스트였던 밥 퀸은 "글룩은 보통 로비스트들보다 훨씬 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전했습니다.

미국 드라마에서 보는 양복 쫙 빼입은 로비스트들과는 달리 글룩은 평소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입고 6년된 포드 F-350 픽업트럭을 몰고 다닙니다. 그는 와인과 스테이크가 나오고 유명인사들이 붐비는 화려한 만찬 자리에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이 케네스 글룩. /사진=AFP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이 케네스 글룩. /사진=AFP
대신 그는 직접 단서를 만듭니다. 글룩은 최근 그의 픽업트럭에 구글 안드로이드 새 스마트폰을 사서 넣어두고 뉴햄프셔 더램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새 스마트폰을 비행기모드로 해두고 와이파이도 꺼둔 채 여행을 다녔습니다. 이 주말 여행 동안 휴대폰은 그의 목적지와 이동경로뿐 아니라 그가 쇼핑몰의 몇 층에 있었는지도 파악해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3일 후 인터넷이 연결됐을 때 그의 휴대폰은 이를 구글에 보냈습니다.

글룩은 이를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의 초안을 만들고 있던 연방 의원들에게 보냈습니다. 이 법은 IT공룡 기업들이 고객정보를 광고를 하기 위해 파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글룩은 MS의 반독점 혐의를 캐내기 위해 MS 본사에서 나오는 쓰레기 더미를 뒤진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현재 구글에 대한 반독점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조사를 개시하기 위해 유럽연합(EU) 및 미국의 연방 당국자들에게 로비를 벌이고 있습니다.

오라클이 거대 IT공룡들에 주눅들지 않는 이유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오라클 본사. /사진=AFP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오라클 본사. /사진=AFP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IT업체와 소원한 편입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IT기업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라클은 다릅니다. 오라클의 창업자 겸 회장인 래리 엘리슨과 사리프 캣츠 오라클 최고경영자(CEO)는 오랫동안 공화당과 트럼프의 후원자였습니다. 지난 2016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캣츠 CEO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 공개되면서 캣츠 CEO가 백악관 요직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엘리슨 회장은 다음주 캘리포니아 랜초 미라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운동과 공화당 전국위원회를 위한 골프 기금 모금 행사를 주최할 예정입니다.

기업규모로 봤을 때 오라클은 MS, 아마존, 구글과는 상대도 할 수 없을 만큼 작습니다. MS, 아마존, 구글 모두 시총이 1조달러가 넘는 반면 오라클의 시가총액은 177억달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오라클은 이들 거대 IT기업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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