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거부들은 왜 ESG투자로 자산을 옮겼나

머니투데이 런던(영국)=한정수 증권부 기자 2020.02.17 06:54
글자크기

[2020 새로운 10년 ESG]7-<3>ESG 우량기업 투자가 장기적으로 안전하다는 신념

편집자주 ESG(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ESG 친화기업에 투자하는 글로벌 자금은 30조 달러를 넘어섰고, 지원법을 도입하는 국가도 생겨났습니다. ESG는 성장정체에 직면한 한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단이자 목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2020 새로운 10년 ESG’ 연중기획 기획을 통해 한국형 자본주의의 새 길을 모색합니다.

프란치스카 얀-매델 러퍼 책임투자 부문 이사 / 사진제공=러퍼프란치스카 얀-매델 러퍼 책임투자 부문 이사 / 사진제공=러퍼


1994년 설립된 러퍼는 지난해 말 기준 운용자산 규모가 200억 파운드(약 30조6000억원)에 달하는 영국 투자회사다. 설립 당시엔 부유한 자산가들이나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는 업무를 했지만 지금은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의 자산도 관리한다.

자산가들이 초기 주요 고객이다보니 자산관리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잃지 않는 데 맞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휩쓴 2008년에도 러퍼 고객들이 손해를 보지 않은 이유다.



러퍼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영국 런던에서 만난 프란치스카 얀-매델 러퍼 책임투자 부문 이사는 "자산가들과 부자들은 ESG를 '재무적인 리스크'로 여긴다"며 "자산을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ESG 요소를 고려한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러퍼가 ESG 등 책임투자 분야에서 관리하는 포트폴리오는 6000여개에 달한다. 책임투자 분야에서 2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인 프란치스카 이사는 ESG 투자와 관련해 "투자 대상에 오른 개별 기업들의 리스크를 꼼꼼히 평가하는 작업이 첫 번째"라고 말했다.



리스크 평가는 내부 리서치팀이 담당하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ESG 지수 등도 참고한다. 고객들의 의사도 반영한다. 프란치스카 이사는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기업에 투자하기 싫다'는 식의 구체적인 주문을 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프란치스카 이사는 ESG 요소를 고려한 책임투자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 "성과에 대한 개념이 다를 수 있다. 즉각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책임투자가) 장기적으로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하는 방향으로 기업을 운영하면 근로자들의 이직률이 줄어들 수 있다.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면 기업 평판도 올라간다. 장기적으로 더 많은 투자를 받아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서 주가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프란치스카 이사는 "책임투자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당장의 주가와 직접 연결시킬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고 했다.


/그래픽=최헌정 기자/그래픽=최헌정 기자
러퍼의 ESG 투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투자 기업은 물론 다른 주주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주주행동으로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프란치스카 이사는 "개별 기업 활동에 관여해 변화를 이끌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석유회사 로열 더치 쉘이다. 러퍼는 쉘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사업을 이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질의하고 함께 논의를 했다고 한다. 쉘은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겠다는 답을 내놨고 석유보다 가스 사업 비중을 늘리고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에선 전기차 충전소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카 이사는 "투자자들이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같은 문제들을 견제하지 못한다면 파리기후변화협약과 같은 ESG를 장려하려는 거시적인 움직임들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며 "ESG는 피하기 어려운 큰 흐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