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국회의원 4년 전 '공약', 잘 지켰나 보니…[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0.02.0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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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전화→현장 방문 통해 검증, '공약 허점' 파악…2주간 공부, 관심 가지니 제대로 비판하게 돼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동네 국회의원 4년 전 '공약', 잘 지켰나 보니…[남기자의 체헐리즘]
동네 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상냥한 목소리의 공무원이 전화를 받았다.

그에게 용건을 말했다. "저희 동네 방범용 CCTV가 2016년부터 얼마나 늘었는지 알고 싶어요." 그러자 그는 확인해서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다.

잠시 뒤 전화가 왔다. 공무원은 매년 늘어난 CCTV 개수를 얘기해줬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늘어난 CCTV는 총 1223개였다.



그러고 난 뒤, 그는 "혹시 무슨 용건 때문에 필요하신 거냐"고 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OOO 국회의원이 CCTV 늘린다고 약속했었거든요. 정말 늘렸는지 보려고요."

/사진=뉴스1/사진=뉴스1


그랬다. 동네 국회의원이 공약을 잘 지켰는지 점검하고 있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16년 4월) 때, 당선되면 꼭 지키겠다고 내걸었던 약속 말이다.

이런 말을 하면 '평소 국회의원에 관심이 많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부끄럽게도 아녔다. 사실 4년 내내 아무 관심이 없었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더 솔직히 말하면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누군지도 몰랐다. 얼마 전 처음 알게 됐다. 점심 자리에서 취재원이 "동네 의원이 누구냐"고 물어봐서 머리가 새하얘졌다. 관심조차 없었다. 낯이 그만 뜨거워졌다. 이렇게 모르면서, 정치인들 비판이나 할 자격이 있나 싶어서.


그날 검색을 했고, 누군지 처음 알게 됐다. 그러니 궁금해졌다. 과연 이 사람은 얼마나 일을 잘했을까. 선거 전에 얘기했던 약속을 잘 지켰을까. 그래서 하나씩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국회의원 이름은 '익명'에 부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강조컨대, 이 글의 목적은 누군가를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끝까지 읽어보면 안다.

동네 국회의원 쉽게 찾는 법
/사진=뉴스1/사진=뉴스1
우리 동네 국회의원은 누굴까. 이것부터 찾아야 했다.

그러려면 '선거구'라는 것부터 알아야 했다.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 선거를 할 때, 한 단위가 되는 지역을 뜻한다. 그 선거구에서 한 명의 대표를 뽑는다. 그게 국회의원이다.

이걸 찾는 것부터 난해했다. 내가 사는 곳은 선거구가 여러 개여서. 예컨대 자치구가 펭수구면 펭수갑, 펭수을, 펭수병, 펭수정 이렇게 나뉘어 있는 식이다. 어딘지 알고 싶은데,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이트가 없었다.

가장 쉽게 찾는 방법은 이랬다. 포털사이트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지역구별'이라고 검색한 뒤 위키백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키보드에서 컨트롤 키와 F를 같이 누른 뒤, 사는 동 이름을 입력했다. 그러니 국회의원이 누군지, '짠' 하고 나왔다.

편의상 형도형 국회의원(익명, 거꾸로 해도 형도형)이라고 하겠다.

4년 전, 당신이 약속했던 것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 홈페이지 화면. 4년 전 국회의원들이 내건 공약들을 살펴볼 수 있다./사진=홈페이지 캡쳐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 홈페이지 화면. 4년 전 국회의원들이 내건 공약들을 살펴볼 수 있다./사진=홈페이지 캡쳐
이제 형도형 의원이 4년 전, 20대 총선에서 뭘 약속했는지 볼 차례였다. '저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시면 OO을 꼭 이루겠습니다'에서 OO 부분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포털사이트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이라고 검색하면 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당선인 공약'을 보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공보를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우측 네 번째에 있는 '공약정보센터' 배너를 누르면 된다. 하단에 '국회의원 공약 정보'를 누르면 목차별로 일목요연하게 나온다.

난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써서 형도형 의원의 공약이 뭔지 파악했다. 그리고 하나씩 들여다보기로 했다.

1단계 검증: 검색하자, 메인 공약들
이른바 메인 공약이랄까. 그 검증부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이 가장 혹할만한 큰 사업 관련 공약들이다. 이건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확인 가능했다.

굵직한 것들이라 최근 기사만 봐도 나왔다. 그리고 의원 이름과 그 공약 키워드를 함께 검색하면,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좀 더 명확히 볼 수 있다. 예컨대, 형도형이 OO단지 재건축을 해주겠다고 했으면, '형도형 OO단지 재건축' 이렇게 검색해보면 된다. 잘한 건 의원들이 알아서 홍보하기 때문에, 여기에 걸리게 돼 있다.

형도형 의원이 추진한 메인 공약은 총 7개였다. 하나는 계속 추진 중이고, 세 개는 달성했으며, 세 개는 이루지 못했다. 달성한 것 중에서도 빨리했다고 하기엔 갸우뚱하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1단계 짚고 가기: '추진'과 '조기'라는 표현
한 국회의원이 내건 실제 공약에 쓰인 표현들./사진=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한 국회의원이 내건 실제 공약에 쓰인 표현들./사진=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그리고 메인 공약엔 공통되게 보이는 표현 두 가지가 있었다. 이를 생각해보자.

하나는 '추진'이라는 말이다. 주로 형도형 의원이 내건, 지역 교통 향상 관련 공약에 많이 등장했다.

이 표현은 유권자 마음을 뺏기 상당히 좋은 표현이다. 마치 곧 이뤄질 것처럼 설레게 하면서도, 못 지켰을 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 있는.

예컨대, 'OO 철도 추진'이란 공약이 있다고 하자. 형도형 의원이 이 철도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것만으로도 공약을 지킨 셈이 된다. 추진하다 잘 되면 더 좋은 것이고. 반면, 'OO 철도 임기 내 완공'이란 표현을 쓰면 상황이 다르다. 공약을 지켰는지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조기(빨리)'란 표현이었다. 이는 형도형 의원 말고도 다른 의원들도 많이 즐겨 쓰는 걸 확인했다. '조기 달성', '조기 완공', '조기 개통', '조기 설립' 등이다.

이 말도 좀 비겁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조기'라는 말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 누군가에겐 빨리 개통하는 게 1년 정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3~4년일 수도 있다. '이게 무슨 조기 달성이야'란 말에, '이 정도면 조기 달성이지'라고 반박할 수 있다.

2단계 검증: 전화하자, 민생 공약들
국민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 공약을 잘 지켰는지 청구해봤다./사진=정보공개포털 화면 캡쳐국민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 공약을 잘 지켰는지 청구해봤다./사진=정보공개포털 화면 캡쳐
형도형 의원의 민생 공약은 크게 한 8개 정도 됐던 것 같다. CCTV나 가로등 설치, 교통 체계 개선, 어린이집 확충, 뭐 그런 것들이다. 메인 공약보단 세지 않지만, 일상에서 필요한 것들이다.

이건 사실 검색으로 찾기 힘들었다. 한 지역의 CCTV 개수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기사로 쓰진 않기 때문. 그래서 좀 더 적극적인 검증이 필요했다.

동네 구청을 활용했다. 의외로 어렵지 않다.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전화번호 안내에 들어갔다. 그리고 직원 검색을 했다. 검색 분류엔 '담당업무'로 체크 했다. 거기서 어린이집 확충을 파악하고 싶으면 '어린이집'으로 검색하면 된다. 그럼 담당 직원과 전화번호가 나온다. 예의를 갖춰 전화해 알고 싶은 걸 물어보면 된다.

그리고는 '2016년부터 OO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알고 싶다'고 직원에게 물었다. 몇몇은 바로 알려줬고, 또 다른 몇몇은 알아본 뒤 회신을 줬다. 얼마든 파악할 수 있는 거였다.

그래도 파악하기 쉽지 않은 건 '정보공개포털'서 정보공개를 청구하면 된다. 로그인을 한 뒤 '청구신청' 카테고리에서 담당 기관을 선택하고,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면 된다. 의외로 어렵지 않다.

형도형 의원은 민생 공약을 얼마나 지켰을까. 8개 중 4.5개 정도 지켰다고 해두자. 1개는 확실히 지킨 것, 0.5개는 지키긴 했는데 좀 미비한 것으로 분류했다.

2단계 짚고 가기: '목표치'가 없다


생활환경을 더 낫게 하려는 공약엔 빠진 게 있었다. 구체적인 목표 수치다.

가령 밤거리를 밝히기 위한 가로등을 설치하겠단 공약엔 '얼마나'가 빠져 있었다. 그냥 추가 설치라고만 써놓으니 공약이 빈약했다. 대부분 지자체가 더 늘리긴 할 거 아닌가. 그러면 1개만 늘어도 공약을 달성하는 셈이다.

4년간 500개를 더 만들겠다, 이런 식의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해 보였다. 더 좋은 건, 어떤 지역에 어떤 가로등을 얼마만큼 늘릴 것이고,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는 식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았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드는 일이니.

어르신 복지관을 건립한다고 하면, 그냥 건립을 추진하겠다고만 쓰여 있었다. 국공립어린이집 확충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만 쓰여 있으니 공약 검증이 쉽지 않았다.

거꾸로 생각하면, 좋은 공약은 검증이 가능한 공약이란 생각도 들었다. 언제까지, 얼마만큼 하겠다, 이런 구체적인 공약은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파악하기 쉽다. 반면 그냥 지원하겠다, 노력하겠다 같은 애매한 공약은 검증조차 쉽지 않다

3단계 검증: 입법 공약은, 국회의원 홈페이지에서
잊지 말아야 할 건, 입법(법을 만드는 일) 활동이야말로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란 것이다. 단지 우리 동네만 더 잘 살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이니까. 국회의 본질이 '입법부'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형도형 의원의 입법 공약은 크게 7가지였다. 어르신 노후에 대한 것도 있었고, 아동학대 근절 방안도 있었다. 청년 일자리가 화두인 만큼 그와 관련된 공약도 있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 국회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아마 거의 처음 가본 것 같다. 여기서 의원활동 탭으로 가니, 하단에 '국회의원 현황'이 있었다. 거기엔 의원 295명의 정보가 있었는데, 검색으로 형도형 의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사진을 누르니 홈페이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홈페이지 왼쪽 다섯 번째 카테고리엔 '대표발의법률안'이란 게 있었다. 거기서 형도형 의원이 어떤 법을 주도해 발의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보다보면 생각보다 재미있다. 이 의원이 어떤 제도를 바꾸고 싶은지, 확인할 수 있다.

여하튼 형도형 의원의 입법 공약 7가지 중 지킨 건 3가지, 못 지킨 것도 3가지, 아직 진행 중인 건 1가지였다.

3단계 짚고 가기: 발의는 누가, 통과됐는가
동네 국회의원 4년 전 '공약', 잘 지켰나 보니…[남기자의 체헐리즘]
입법 공약은 거창한 것이 많기에, 좀 더 정교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형도형 의원이 이 법을 만드는데 얼마나 주도적으로 역할을 한 건지에 대해 세밀하게 발라내는 일이다. 치킨 한 마리로 비유하자면, 닭 다리 정도의 핵심 비중인지, 목뼈에 붙은 작은 살점 정도인지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배고프다).

우선 형도형 의원만 낸 입법 공약인지, 그가 속한 당 차원에서 낸 공약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형도형 의원의 경우 당 차원의 공약이 하나 있었다. 그러니 그가 얼마만큼 역할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또 하나는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법안인지, 공동 발의한 법안인지 봐야 한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할 때 10인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표 발의자 1명을 정한다.

통상 자신이 주도해 만든 법안이면 대표 발의, 다른 의원들 법안에 찬성한 거면 공동 발의안으로 본다. 통과된 입법 공약이 의원이 대표해서 만든 건지, 아니면 다른 의원들 법안에 동의한 정도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공동 발의안도 그가 어떤 법안에 찬성하는지 살펴보는 척도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실제 통과됐는지다. 의원이 야심차게 낸 법안은 국회 의안과를 거쳐 상임위로,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 돼 심사를 받는다. 원안대로 통과됐는지, 수정한 뒤 가결됐는지, 아니면 폐기됐는지를 의원 홈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

4단계 검증: 발로 뛰기, 지역 주민이 가장 잘 알아
한 동네근린공원 화장실 내부 모습. 개선했다던 공약과 달리, 열악해보였다./사진=남형도 기자한 동네근린공원 화장실 내부 모습. 개선했다던 공약과 달리, 열악해보였다./사진=남형도 기자
마지막 검증 절차는 직접 가보는 거였다. 여기서부턴 공약을 지켰느냐, 못 지켰느냐가 아니라 지켰단 공약 자체를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그 공약이 현장서 정말 잘 실현됐는지 알고 싶었다.

판단 기준이 되는 건, 형도형 의원이 발간한 '의정보고서'였다. 통상 국회의원 임기가 끝날 무렵, 각 의원마다 그동안 의정활동을 얼마나 잘했는지 보고회도 열고, 보고서도 보낸다. 우리집 우편함에도 그의 의정보고서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가 이뤘단 것들을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동네 곳곳을 가보기로 했다. 현장엔 늘 답이 있다고 믿으니까. 눈으로 보는 것만큼 정확한 게 없다.

잘 지킨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그렇지 못한 것들도 꽤 눈에 띄었다.

자전거도로를 개선했다고 하기에, 자전거를 타고 살펴봤다./사진=남형도 기자자전거도로를 개선했다고 하기에, 자전거를 타고 살펴봤다./사진=남형도 기자
지역 내 한 근린공원 화장실을 개선했다고 해서 가봤더니, 출입구 인근 화장실부터 시설이 열악했다. 간이 화장실 수준이었고, 열어보니 분변이 그대로 있는 등 관리가 엉망이었다. 모 초등학교에 옐로카펫(교통안전시설)을 설치했다고 해서 가봤더니, 학교 주위를 빙 둘러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만들었다던 문화 예술 공간은 공약으로 볼 땐 거창해 보였는데, 막상 가보니 지하에 자그맣게 있는 정도였다. 자전거도로를 정비했다고 해서 자전거를 타고 달려봤는데, 곳곳에 도로가 갈라진 것이 눈에 띄었다.

4단계 짚고 가기 : 주민들에게 물어보기
교통체계를 개선했다던 공약과 달리, 정체가 더 심해졌단 얘기가 많았다./사진=남형도 기자교통체계를 개선했다던 공약과 달리, 정체가 더 심해졌단 얘기가 많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실현된 공약에서 더 생각해 볼 건, 그걸로 인한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였다. 그걸 확인하는데 가장 좋은 게, 그 지역 주민들에게 묻는 거였다.

교통을 더 좋게 하겠다고 정비한 게 있었는데, 막상 인근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평가가 반반 나뉘었다.

그 방향으로 쉽게 가지 못해 돌아가야 했던 주민은 "도로가 바뀌어서 더 좋다"고 했지만, 또 다른 주민은 "직진하는 차량이 많아져 차가 예전보다 너무 막힌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출근 시간에는 그 도로를 빠져나가는데 20분 정도 걸린다고 호소했다.

실제 그 도로에 30분 정도 서서 지켜보니, 직진과 우회전 차량이 한 도로를 같이 써서, 정체가 심각한 게 보였다. 한 택시기사는 "여길 지날 때마다 너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공약 이행 후, 괜찮은지 한 번 더 점검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동네 국회의원, 2주간 검증해보니
국회의원 예비 후보들이 내건 공약들. 얼마나 역량 있는 이들을 뽑을 건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사진=뉴스1국회의원 예비 후보들이 내건 공약들. 얼마나 역량 있는 이들을 뽑을 건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사진=뉴스1
2주간의 공약 검증이 그리 끝났다.

처음엔 '얼마나 공약을 잘 지키나 보자'며 도끼눈을 뜨고 시작한 일이었다. 잘 지킨 것도, 그리고 잘 못 지킨 것도 있었다. 반반 정도였던 것 같다. 실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7일 발표한 20대 국회의원 공약 완료율은 3564개(46.8%)로 나타났다. 추진 중인 게 3530개(46.35%), 보류가 342개(4.49%), 폐기가 74개(0.97%)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동네 국회의원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됐다는 것이다.

14일간 매일 형도형 의원을 검색하고, 홈페이지를 들락거리고, 직접 동네 곳곳을 다니면서 그가 뭘 했었는지 공부했다. 그러니 이젠 '국회의원 문제야'가 아니라, 'OO 국회의원은, OO가 문제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 아닌가. 그런데 모두가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으니, 대표할 사람(국회의원)을 대신 뽑는 게 아닌가. 주인이 그 노릇을 하려면 잘 알아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다.

국회의원은 싸움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법안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형도형 의원이 소외된 이들의 권리에도 꽤 관심이 많단 걸 알게 됐다. 그가 우리 동네 의원이라 다행이란 생각도 잠깐 들었다. 국회의원 연봉(1억5176만원)은 늘 아깝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마음이 다소 나아졌다(다는 아니고).

좋은 국회의원은 어쩌면 이런 '관심'이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잘하는 건 기꺼이 칭찬해주고, 못하는 건 따끔히 지적할 수 있는. 그런 견제와 감시가 국회의원을 신나게 하고, 긴장하게 하는 게 아닐지. 그리고 4년간 그리 지켜보다 다음 선거 때, 잘하는 의원은 당선되게 하고 못 하는 이는 응당 떨어지게 해야 할 것이다. 그게 이 나라의 주인이라 불리는, 우리의 의무다.

좋은 국회의원을 뽑아야 하는 이유
동네 국회의원 4년 전 '공약', 잘 지켰나 보니…[남기자의 체헐리즘]
그러니 국회의원을 잘 뽑는 게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쉽게 설명하려 한다.

우선 법을 만든다.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가해자가 있다고 치자(실제 비일비재하다). 기사를 보며 '이딴 법이 어딨어'하고 판사를 욕할 것이다. 그 '이딴 법'을 만드는 게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다. 판사는 그 법에 따라 판결할 뿐.

2020년 정부 예산이 512조3000억원이다. 여기엔 내 월급에서 매달 떼가는 피 같은 세금이 낱낱이 다 포함돼 있다. 감히 상상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 예산이 낭비 없이 편성됐는지, 감시하는 이가 국회의원이다.

돈 얘기를 좀 더 하자면, 국회의원 한 명에게 4년간 세비, 보좌관 월급, 후원금 등으로 국민 세금이 약 30억원 정도 들어간단다.

그리고 정부(대통령 등 청와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에 대한 국정감사로 일을 똑바로 잘하는지 감시하는 이들도 국회의원이다.

정청래 전 국회의원은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이란 저서에서 "국회를 욕할 땐 욕하더라도, 일부러라도 눈을 크게 뜨고 쓸만한 국회의원을 찾고, 키우고, 지키자고 호소하려 한다"며 "국회가 힘을 가져야 행정부를 감시, 견제하고 국가 예산을 적재적소에 쓰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독자들에게 간절히 다시 묻고 싶다.

"여러분, 동네 국회의원이 누군지는 아십니까?"
/사진=영화 300 화면 캡쳐/사진=영화 300 화면 캡쳐
에필로그(epilogue). BC 480년, 페르시아 100만 대군이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레오니다스 왕과 용맹한 스파르타 전사들이 그들과 맞섰다. 그게 불과 300명이었다.

최고의 용사들은 테르모필레 협곡서 버티고 서서, 이 무모한 전투를 벌였다. 이틀을 버티고, 마지막 날이 됐다. 그들은 쏟아지는 화살을 맞으면서도 항복하지 않았다. 칼과 창이 부러지자 주먹과 손톱으로 싸웠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도.

그 고달픈 희생 덕분에 그리스는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살라미스 해전서 결국 페르시아를 무찔렀다. 그들은 영웅이 됐다.

국회의원 300명을 보며 스파르타 전사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 5000만명을 대표하니까.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일당백'이었으면 싶었다.

국운을 좌우할 전투에 최정예 전사를 내보낼 것인가, 아니면 내 이익만 챙기는 비겁한 이를 내보낼 것인가. 그걸 결정하는 건 오롯이 우리 몫이다.

그리고 새로운 300명을 뽑을 시간이,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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