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시시하고 뻔한 불행

머니투데이 황모과 작가 2020.02.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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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 '모멘트 아케이드' <3회>

③시시하고 뻔한 불행


엄마가 떠난 순간 제 삶도 잃었어요. 엄마가 아플 땐, 학업도 포기하고 오로지 치료비만 생각하며 돈을 벌었고 출퇴근 시간 이외엔 병원에 머물면서 엄마를 간호했지요.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그렇게 충직한 딸로 살면서도 저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장하다고, 저 같은 효녀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아무런 자부심이 되지 못했어요. 저는 경주마처럼 그냥 옆눈을 가리고 달리고 있을 뿐이었으니까요.

더 솔직히 말하면, 내 삶을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고도 자신의 고통 외에는 관심을 쏟지 못하는 엄마를 마음 깊이 증오했어요.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언니는 최소한의 돈만 보냈고 우리를 모른 척하며 살았죠. 학업과 아르바이트로 힘들었던 언니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기적인 언니를 견디다 더 큰 분노가 얼굴을 들었어요. 곁에서 엄마의 고통을 함께 뒤집어쓴 건 전부 저의 몫이었죠. 언니도 누구도, 제 곁에 없었으니까요. 차라리 언니가 없었다면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이 반절쯤 줄었을지도 몰라요.



도리와 의무감, 그리고 증오심 때문에 엄마 곁을 지켰는데, 당시 나를 추동했던 강한 감정들이 돌팔매가 되어 이제 제 삶을 할퀴고 상처 입히고 있어요.

항암 치료 말기, 엄마는 남은 힘을 짜내어 하느님께 원망하듯 변기 속 토사물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엄마의 절망이 고스란히 내 것 같았어요. 불쌍하고 불완전한 반쪽짜리 인생, 나는 그 반쪽에서 나온 더 불완전한 인생이었지요.



자기 인생에 미숙한 사람이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만, 아주 간단히 양육을 방기하는 젊은 어머니가 언니와 저의 보호자였죠. 철없는 엄마에게 생명력 짧은 연인이 생길 때마다 우리에겐 홀어머니조차 부재했죠. 때때로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더러운 방에서 언니와 저는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잠들었어요. 엄마를 보면 모성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는 결국 매일매일 하느님을 저주하다 떠났지요. 엄마가 미친 듯 날뛰며 자신의 삶을 저주할 때면, 저도 곁에서 같은 저주를 입었죠. 엄마의 행동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소리로 들렸어요. 내 의지로 태어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죠. 그렇게 나까지 덩달아 삶의 의미를 부정하는 순간, 제 삶에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어요.

엄마도 나도, 어쩌면 세상 누구도 우리를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니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어수선한 삶의 악순환 속에서 엄마와 나는 외롭게도 둘만 얽혀 있었어요. 보험 회사 사람이 엄마의 보험 가입 시기와 질병 인지 시점에 대해 관심을 보였을 뿐, 우리의 삶의 조건이나 감정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었죠. 드라마가 되기엔 너무 시시한, 뻔한 불행이었으니까요.


"이제 그만 죽고 싶다.“

엄마는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이렇게 반어법으로 표현했어요.

"죽긴 왜 죽어.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려야지.“

나는 이렇게 반어법으로 답하며 엄마와의 이별의 날을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엄마가 어렸을 때 우리를 방기했던 것에 대한 복수였을까요. 저는 끝까지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건 효심이 아니었어요. 증오하던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보겠다는 결의였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제 심장은 차갑게 식었어요.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는 언니를 저는 싸늘하게 내려다봤지요.

'비겁한 년.'

그 말을 내뱉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하지만 내 눈은 똑똑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을 거예요. 12년 동안 엄마와 내가 살던 방은 천장 위로 하수관이 지나고 있었어요. 지상의 사람들이 버리는 수많은 생활 하수들 아래에 우리 삶이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었죠. 그 방에서 나는 엄마 삶의 온갖 오물까지 받아 내었죠. 그냥 다 버리고 도망칠 생각은 안 했느냐고, 혼자 살아남았다고 비난할 사람은 없었을 거라고 누가 묻더라고요. 전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나라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당뇨병 환자이기도 했던 엄마에게 인슐린을 과다 투여했겠죠. 간단하게 그리고 몰래 엄마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렇게 안 한 건, 도덕적인 가치 판단을 한 게 아니라 판단력이 한치도 발동을 안 했던 탓인 것 같아요.

바보 같다고 불쌍하다고 얼굴을 찡그리진 마세요. 심리 상담사들이 자주 그런 표정을 짓더군요.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내 마음을 나도 내팽개치고 싶어집니다. 동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니는 그사이 자기 학업을 마쳤고 장례식 직후 결혼도 했고 아주 정상적인 삶으로 나아갔어요. 혼자서만 말이죠. 그러면서 가끔 언니는 내게 이제 네 삶을 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 말을 하는 언니를 용서할 수 없어서 저는 두 배로 괴로웠어요.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방 안에 어린 우리는 똑같이 버려졌는데 언니와 나는 어쩜 이렇게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요? 왜 나만 삶이 비참해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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