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회장의 금싸라기 땅 매각, 누나에게 던진 메시지는?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주명호 기자 2020.02.0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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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동 땅, 왕산마리나 매각은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책임 묻는 것…명분도 챙겨

조원태 한진 회장 / 사진=내부조원태 한진 회장 / 사진=내부


대한항공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 소재 땅과 인천 을왕리에 위치한 요트 계류시설 등을 연내 매각한다. 대한항공은 이를 통해 수 천억원대 현금을 확보해 재무구조를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송현동 땅 매각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 세력인 KCGI(강성부펀드)가 대한항공에 요구해왔던 내용이다.



이에 따라 조원태 회장은 경영권 분쟁 상대방인 KCGI 측 요구사항을 일부 수용해 주요 주주 입장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실질적인 재무구조 개선도 노릴 수 있게 돼 그룹 최고경영자로서 '명분'과 '실리'를 잡을 수 있다는 평이다.

대한항공의 이번 유휴자산 매각은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일종의 경고장 같은 의미도 갖는다. 조 전 부사장이 한진그룹의 호텔과 레저 사업에 영향력을 발휘해왔는데 송현동 땅은 그룹 차원에서 건립하기를 원했던 호텔 부지고, 왕산레저개발은 레저 부문의 대표 기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조 회장이 대척점에 있는 조 전 부사장 관련 사업을 대한항공에서 완전히 지우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송현동땅+왕산레저 지분 연내 매각
대한항공은 6일 오전 조 회장 주재로 이사회를 갖고 송현동 부지와 왕산마리나 운영사 왕산레저개발 지분을 연내 매각 완료하기로 의결했다.

조 회장은 이날 이사회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컨퍼런스콜(화상회의) 방식으로 주재했다. 지난달 우한 특별전세기에 승무원으로 직접 탑승한 후 14일간의 자가격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송현동 부지 매각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3인 연합을 결성하고 경영권 흔들기에 나선 KCGI(강성부펀드)가 지속적으로 주장한 내용이다.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조 회장 측이 본격적인 재무구조 개선에 들어가면서 조현아-KCGI-반도건설 연합 측의 명분이 한층 약해질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서울 도심 노른자위로 경복궁과 가까운 송현동 토지(3만6642㎡)를 활용해 한옥호텔 건립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이 땅의 현재 가치는 5000억~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왕산레저개발은 인천 을왕리에 위치한 요트 300척 계류시설 '용유왕산마리나'를 운영하는 회사다. 이 시설은 투자금액만 1000억원이 넘어 왕산레저개발 기업 가치도 수 천 억원대에 달한는 분석이다.

특히 송현동 땅은 조 전 부사장이 칼호텔네트워크 사장 시절부터 개발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고, 왕산마리나도 조 전 부사장이 대한항공 재직 시절 맡았던 사업으로 성과가 좋지 않았다. 결국 이들 자산을 매각한다는 것은 조 전 부사장에게 책임을 묻는 성격도 있다.

지배구조 투명화 '거버넌스위원회' 설치
대한항공은 이날 이사회에서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한 안건도 의결했다. 이중 독립성 강화를 위해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기존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이었던 우기홍 사장이 위원직에서 물러나고, 대신 사외이사인 김동재 이사를 신규 위원으로 선임했다.

대한항공은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설치를 권고하는 거버넌스위원회 설치도 의결했다. 거버넌스위원회는 주주가치와 주주권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회사의 주요 경영사항들을 사전 검토하는 조직이다. 이 위원회는 김동재 사외이사가 위원장을 맡는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과 건전한 지배구조 정착을 위해 이사회 의결 사항을 착실히 지켜나갈 것"이라며 "앞으로 또 다른 개선 방안들도 내놓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명분 쌓아가는 조원태...조현아 지우기?
이번 대한항공 이사회의 결정들은 앞으로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조 회장 측에 명분과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조 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조 전 부사장 측에 서 있는 KCGI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KCGI는 올 초 유튜브를 통해 "(대한항공이)송현동 부지를 빨리 매각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따라 조 회장 측이 앞으로 경영권 분쟁에서 경영권을 계속 행사해야 한다는 명분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이 대한항공 이사회 결의로 KCGI 요구사항을 대거 수용한 것은 KCGI가 조 회장을 흔들 명분이 상당 부분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특히 또다른 오너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조 회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직후 이번 재무구조와 지배구조 개선안이 나와 조 회장 경영체제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7일 열린 한진칼 이사회에서 또다른 특단의 그룹 경영 개선안이 나온다면 조 회장 체제는 더욱 확고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영권분쟁의 모든 초점이 3월말 한진칼 주주총회에 쏠리는데 여기서 표 대결을 벌일 경우 명분과 행동이 앞선 조 회장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송현동 부지 개발과 왕산마리나 운영은 모두 조 전 부사장이 맡았던 사업으로 알려졌는데 이번에 정리 대상이 됐다"며 "이는 조 전 부사장 이미지를 지우는 한편 상대방의 공격 명분까지 흐리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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