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혐오 부른 '박쥐 먹방'…알고보니 가짜뉴스?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20.01.3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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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되는 '먹는(Eat)' 이야기]
[인싸Eat] 중국인이 박쥐 먹어서 전염?
전세계서 '혐오' 확산…진실은?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지난달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폐렴)이 확산하면서 전세계가 공포에 사로 잡혔습니다.

중국에서만 이미 사망자만 213명, 확진자는 9700여명으로, 확진자수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당시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감염이 계속 확산되고,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환자들이 속속 늘어나면서 '중국인은 바이러스'라는 인종 차별과 혐오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인을 넘어 한국인 등 아시아계도 타깃이 되자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운동이 일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란의 시작은 중국인들이 박쥐 같은 야생동물을 먹어 바이러스가 퍼져나갔다는 주장인데요. '박쥐 먹방'을 올린 한 중국인 여성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진짜 '박쥐 먹방'은 이번 바이러스의 원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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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혐오' 부른 '박쥐 먹방'
중국 인플루언서 왕멍윈이 올린 '박쥐 먹방' 영상. /사진=웨이보 캡처.중국 인플루언서 왕멍윈이 올린 '박쥐 먹방' 영상. /사진=웨이보 캡처.
포린폴리시(FP)는 지난 27일 신종 코로나와 관련해 '박쥐탕(Bat Soup)을 비난하지 마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 여성이 올린 박쥐 먹방 하나로 전세계가 이 여성을 우한 바이러스의 원인이라고 믿기 시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FP는 중국 웨이보를 시작으로 이 영상이 퍼졌는데, 영국 데일리메일과 러시아 관영언론 FT, 극단주의 블로거 등이 이를 정확한 확인없이 퍼뜨리기 시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영상의 주인공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비오 팔로워만 200만명이 넘는 왕멍윈이라는 인플루언서입니다. 왕멍윈은 이 영상에서 검은 과일 박쥐를 날개를 펼쳐서 보여주는가 하면 시식 후에는 "고기가 질기지만 맛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영상이 2016년, 중국도 아닌 팔라우에서 먹은 영상이라는 점입니다. 과거의 한 영상이 마치 신종 코로나 발병 이후 먹은 것처럼 둔갑해 전세계로 퍼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왕멍윈은 지난 22일 자신의 웨이보에 2016년 팔라우에서 찍은 영상이 야생 박쥐가 아닌 현지인들이 먹는 요리라고 해명하면서 무지했다고 사과했습니다. 웨이보 계정도 폐쇄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유튜브에는 왕멍윈의 박쥐 먹방 영상을 그대로 퍼다 나른 영상들만 수천여개에 달합니다. 일부 유튜버들은 박쥐 먹방을 해보겠다며 가짜 영상을 올렸다가 사과하는 영상까지 올리는 등 촌극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박쥐탕(Bat Soup)'로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 /사진=유튜브 캡처.유튜브에서 '박쥐탕(Bat Soup)'로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 /사진=유튜브 캡처.
'중국인 출입금지' 전세계 혐오 확산
신종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각국에서는 중국인 혐오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웨이보에는 일본의 한 식당에서 중국인 여성에게 나가라고 소리치는 영상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일본 상점들은 '중국인 출입금지' 간판을 내건 곳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서구권에서는 언론들까지 가세해 노골적인 차별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중국인을 비롯해 아시아인들을 향해 "바이러스가 지나간다"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아시아계 유학생은 가디언에 기고를 통해 "버스에서 내가 옆자리에 앉자 남성이 급히 자리를 떴다"면서 "중국인들이 전염병에 걸렸으니 차이나타운에 가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덴마크의 윌란스포스텐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의 별을 바이러스로 바꾼 그림을 실어 논란을 샀다. /AFPBBNews=뉴스1덴마크의 윌란스포스텐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의 별을 바이러스로 바꾼 그림을 실어 논란을 샀다. /AFPBBNews=뉴스1
여기엔 언론들까지 가세한 모양새입니다.

프랑스의 르 쿠히에 피카르는 1면 기사에 '황색 조심, 황색 위험'이라는 헤드라인을 실었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고, 덴마크의 윌란스포스텐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의 별을 바이러스로 바꾼 그림을 실어 논란을 사기도 했습니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인들은 더럽다'거나 '혐오스럽다'는 의견을 남기고 있습니다.

'박쥐탕'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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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는 '박쥐탕'을 바이러스의 원흉이자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동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박쥐 뿐만 아니라 곤충이나 뱀 등을 먹는 모습은 미디어에서 흥미로운 소재로 다뤄져왔고, 이번 '박쥐 먹방' 역시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닌데 신종 코로나와 결합해 오랜 인종 차별주의 사상이 분출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FP는 그러면서 "중국인은 네발 달린건 모든지 먹는다"다는 조롱섞인 농담도 이러한 인종차별적 시선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중국에서도 박쥐를 먹는 장면이 흔한 것은 아닙니다. 박쥐 요리는 남동부 광둥성 등 일부 지역에서 간혹 볼 수 있고, 우한에서는 박쥐를 먹지도 않습니다. 또 "초기 감염자는 야생동물이 거래되는 우한 화난시장에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고 FP는 전했습니다.

박쥐가 바이러스의 원인일 가능성은 각종 연구를 통해 유력한 상황이지만, 박쥐가 원인이라고 해도 꼭 박쥐 음식을 통해 전해진 것은 아닐 수 있고, 감염경로 또한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중국 당국은 야생동물 거래도 금지했습니다. 그럼에도 암암리에 거래해 이를 먹는 것은 중국의 음식 문화 탓이 아니라 야생동물을 먹으면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일종의 미신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감기에 걸리면 의사를 찾지 않는다"면서 "대부분은 그냥 낫거나 야생동물을 먹으면 면역력이 올라간다는 미신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FP도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얼마나 위생적인가'의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스 → 우한폐렴 →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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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또다른 참사를 막으려면 야생동물을 먹는 습관을 줄이거나, 유통 과정에서 위생 수준을 크게 높이는 것 두가지 중 하나는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둘다 쉬운 과제는 아닙니다.

WSJ는 먼저 위생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면서 그 이유에 대해 대량 생산을 지목했습니다. 위생에 대한 아무런 문제가 없으려면 돼지처럼 품종을 단일화하고 대량생산할 정도가 돼야 하는데,소수가 즐기는 희귀 고기류는 이것이 불가능해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WSJ는 2008년 이후 중국 양돈농가의 75%가 500마리 이상을 키울 정도로 대형화하면서 위험도가 크게 줄었다고 전했습니다.

게다가 야생동물 거래는 중국 지방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형농가에 밀려 지방의 소규모 농가들이 사라지고, 대신 야생동물 유통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구조가 자리잡았다는 것입니다. 이 탓에 중국 정부가 야생동물에 대한 미신을 확실히 뿌리뽑기도 어렵고, 금지령을 시행하면서도 감시가 느슨해지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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