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인터뷰]어느 우한 교민의 한숨 "아내 두고 어떻게 갑니까?"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주명호 기자 2020.01.3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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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일 중국 베이징에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했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있는 한 여성이 베이징 기차역을 빠져 나가고 있다. /로이터=뉴스130 일 중국 베이징에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했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있는 한 여성이 베이징 기차역을 빠져 나가고 있다. /로이터=뉴스1


중국 시간으로 30일 새벽 1시10분. 우한 현지 교민 700여명이 가입한 위챗 메신저 단체방에 요란한 알람음이 연신 터졌다. 교민들이 주우한총영사관의 긴급공지를 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문자를 끊임없이 보낸 것이다.

교민들은 당연히 이날 오후 3시와 오후 5시 대한항공 특별전세기 편으로 우한을 떠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총영사관은 출국 14시간을 앞둔 한밤중에 전세기를 띄울 수 없다고 알려왔다. 중국 정부의 항공기 운항허가 지연이 이유였다.



현지 교민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있는 교민들은 한시라도 빨리 우한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이런 공지가 뜨자 더 불안해했다.

우한에서 3년째 한국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본지 기자와 위챗 메신저로 나눈 대화에서 갑작스런 긴급공지에 너무 당황했다고 밝혔다.



A씨는 "대부분의 한국 교민들은 하루빨리 이 우한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고 싶어한다"며 "그런데 30일 갑자기 긴급공지가 뜨자 서운함과 불안함과 초조함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교민들 사이에선 미국과 일본 전세기만 운항 허가가 난 것일뿐 한국과 영국 등 다른 나라 전세기는 허가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괴담까지 떠돌았다.

혼자선 떠나지 못하는 우한 교민들 사연
이미 전세기편 탑승을 신청한 사람들은 한 차례 지연이 있더라도 우한을 떠나는 장면을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교민은 신종 코로나의 진원지인 우한을 절대 떠나지 못하는 운명이다. 부인이 중국인이거나, 자녀가 중국 국적인 경우 한국행 전세기에 함께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우한 교민 B씨는 "친하게 지내는 한국 친구가 중국 여성과 결혼했기 때문에 이번에 전세기를 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지 교민이 아니라 여행이나 출장으로 우한에 들렀다가 발목을 잡힌 한국인들도 제법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A씨는 "우한에 여행차 왔거나 잠시 출장으로 들렸다가 23일 우한공항 폐쇄로 아예 발이 묶인 한국인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들은 더더욱 한국에 가고 싶을 것"이라고 밝혔다.

생업 접고 끝내 '한국행' 택한 교민들도
한산한 우한의 거리/로이터=뉴스1한산한 우한의 거리/로이터=뉴스1
우한에서 간신히 일궈놓은 생업을 접고 한국으로 가야하는 사람들은 만감이 교차한다. 단적으로 음식점을 운영하는 현지 교민들은 지난 20일부터 춘절 연휴로 음식점 영업을 중단했는데 이후 우한 지역이 폐쇄되며 장사를 계속 접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들은 계속 월 임대료를 낼 수 없는 상황이어서 영업을 중단한 채 일단 한국행 전세기에 오르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 우한으로 돌아가 생업을 재개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신종 코로나 창궐이 장기화하면 우한 폐쇄도 수개월이상 계속돼 우한으로 돌아갈 날을 기약할 수 없다. 수 개월간 삶의 터전을 비우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다.

이 때문에 자영업을 하는 일부 한국 교민은 목숨을 걸고 현지에 남는 것을 택했다.

주호북성한인회 정태일 사무국장은 "전세기편으로 한국으로 가는 700여명의 교민 외에 신종 코로나의 위협 속에 우한 잔류를 선택한 한국 교민이 120여명에 달한다"며 "이분들은 여러 이유로 우한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어떻게 살까" 벌써부터 걱정 앞서
한국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도 있다. 우한 교민들은 당장 자신들의 격리 수용에 반대하는 한국 일부 지역 주민들을 보면 참담하다.

정태일 사무국장은 "한국 주민들이 거주지역 인근에 우한 교민들이 격리 수용되는 것을 반대하는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며 "그러나 우한에서도 살 수 없고, 고국에서도 살 수 없다면 우한 교민들이 받는 상처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에서 장기간 신세 질 가족들이 없는 교민들은 격리 조치 이후 갈 곳이 없어 더 막막하다.

죽음의 전염병을 피해 삶의 터전을 두고 떠나야 하는 700여명. 그리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생업을 떠나지 못하는 120여명. 그들의 굴곡진 사연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 우리 모두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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