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재채기에 '긴장'…특급호텔에 "중국인 있나요?"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20.01.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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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경복궁, 중국인 관광객 몰리며 시민 불안감↑…중국 꺼리는 분위기에 인바운드 관광도 타격 예상

지난 26일 찾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설 명절을 맞아 무료개방한 가운데 가족단위 나들이객과 고궁 구경을 온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사진=유승목 기자지난 26일 찾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설 명절을 맞아 무료개방한 가운데 가족단위 나들이객과 고궁 구경을 온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사진=유승목 기자


"이(하나) 얼(둘) 싼(셋)." "저희 사진 한 장 찍어 주세요."

지난 26~27일 국내 대표 관광지 서울 종로구 경복궁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궐 내 곳곳에선 한국어와 중국어가 뒤섞여 들렸다. 명절 연휴 동안 무료개방이란 소식을 듣고 가족 나들이를 온 시민들과 춘제 기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서다.

낮 기온이 12도까지 오르는 포근한 날씨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즐거운 웃음이 오가는 와중에도 주위에서 재채기 소리가 들리면 일순 불편한 기색이 흘렀다. 중국인 관광객들을 향한 불편한 눈초리도 적지 않았다. 어린 자녀와 경복궁을 찾은 박모씨(37)는 "연휴 마지막 날이라 나들이 왔는데 생각보다 중국인이 많아 놀랐다"며 "우한 폐렴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데 괜히 왔나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중국 허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 공포가 커지고 있다. 모처럼 활기를 띠었던 한중 관광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에 대한 환영은 설 연휴 시작과 함께 우려와 불안으로 바뀌었다. 우리 국민들의 중국 여행심리가 얼어붙은 것을 넘어 아예 관광 교류 자체를 꺼리게 되면서 국내 관광시장도 침체 분위기다.
지난 27일 찾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설 명절을 맞아 무료개방한 가운데 가족단위 나들이객과 고궁 구경을 온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사진은 오후 2시 수문장 교대식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몰린 모습. /사진=유승목 기자지난 27일 찾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설 명절을 맞아 무료개방한 가운데 가족단위 나들이객과 고궁 구경을 온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사진은 오후 2시 수문장 교대식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몰린 모습. /사진=유승목 기자
경자년(庚子年) 새해 들어 한국 관광시장은 중국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여행) 모두 호조를 보였다. 특히 인바운드 시장이 달아올랐다. 개별여행객(FIT)를 중심으로 중국의 한국여행 수요가 높아진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까지 점쳐지며 '한한령' 해제 기대감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행, 면세점 등 관련 소비 종목이 오름세를 보였고, 주요 관광지 소상공인들의 표정에도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설 연휴를 앞두고 상황이 급변했다. 설마 했던 우한 폐렴이 한국에도 상륙하는 일이 벌어지며 중국인 관광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 우한 폐렴이 유행하는 최근 시기가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 기간과 겹친다는 점은 호재에서 악재로 바뀌었다. 중국 정부는 우한 폐렴 확산을 막기 위해 당초 이달 24일부터 30일까지 였던 춘제기간을 내달 2일까지로 연장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춘제 기간에는 지난해보다 2만여 명 늘어난 13만 명의 중국인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우한 폐렴의 진원지인 중국 허베이성 우한시에서도 중국인 상당수가 한국을 찾은 것으로 알려지며 걱정을 키웠다. 중국 제일재경망이 항공서비스 앱 '항공반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30일부터 1월22일까지 약 3주 간 우한에서 출발한 탑승객 중 6430명이 한국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우한 폐렴 첫 확진자 역시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 국적의 30대 여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3일 올라온 중국인 입국을 막아달라는 내용 청와대 청원이 28일 오전 50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캡처지난 23일 올라온 중국인 입국을 막아달라는 내용 청와대 청원이 28일 오전 50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사태가 커지자 중국 여행심리 뿐 아니라 중국 인바운드 자체를 꺼리는 여론이 높아진다.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원은 28일 오전 10시30분 현재 청원자 51만 명을 돌파했다. 설 연휴 기간 동안 해외여행은 다녀온 김모씨(30)는 "한국에서 중국 여행을 가지 않아도 중국에서 오면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니냐"며 "인천공항에 들어올 때가 가장 겁 났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들과 마주치는 주요 관광지나 호텔에선 이 같은 우려가 더욱 커진다. 서울시내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지난주부터 중국인 투숙객이나 객실에 대한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묻는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체인 호텔인 메리어트는 오는 2월8일까지 한국 메리어트 산하 호텔에서 중국 우한 거주민이나 기업에 한해 예약 취소 수수료를 면제하는 등 투숙객 안전 대책을 진행하고 있다.

방한 중국인 인바운드 시장과 관련된 업계와 정부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면세업계는 고객과 직원의 안전과 위생관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롯데면세점은 근무자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고객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고 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설 연휴를 맞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종합안내소를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체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설 연휴를 맞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종합안내소를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체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정부도 관광 현장 관리에 나섰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27일 경복궁과 코리아그랜드세일이 진행 중인 동대문 두타몰 앞 웰컴센터 등을 찾아 우한 폐렴 대응방안을 점검했다. 박 장관은 관광해설사 등 관광 일선 종사자들에게 안전과 위생관리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는 점에서 국내 인바운드 관광시장에도 여파가 적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심각한 전염병인 우한 폐렴에 따른 불안은 반일감정이 만든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사스에 대한 학습효과도 커 중국인 관광객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기 떄문에 관광업계 자체가 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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