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피해자 문제, '본안 판단' 미룬 사법부…왜(종합2)

머니투데이 이미호 , 송민경 , 김영상 기자 2019.12.2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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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위안부 문제, 각하하면서도 "정치적 합의" 언급…사할린문제 각하로 손배 소송 '난항' 예상

헌법재판소가 2015년 박근혜정부가 일본정부와 발표한 '한·일위안부 합의'에 대한 선고를 내린 27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부산 출신 이옥선 할머니와 대구 출신 이옥선 할머니가 헌재의 각하 결정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2015년 박근혜정부가 일본정부와 발표한 '한·일위안부 합의'에 대한 선고를 내린 27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부산 출신 이옥선 할머니와 대구 출신 이옥선 할머니가 헌재의 각하 결정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 및 보상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잇따라 각하 결정을 내렸다. 박근혜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와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동포들이 낸 헌법소원에 대해 모두 사법부가 판단할 수 있는 법적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며 실질적(내용적) 판단을 미룬 셈이다.

◇헌재, 위안부 합의 '각하'했지만…"구속력 없다는 것 강조"



헌재는 27일 강일출씨(89) 등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 29명과 유가족 12명이 지난 2016년 3월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했다.

헌법소원 사건은 이를 청구하는 사람의 자격과 판단 내용 등에 일정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각하란 소송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 본안에 대해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그대로 재판 절차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피해자 측이 낸 헌법소원과 관련해 일단 형식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고 본안 판단에 들어가지 않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헌재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양국 외교 장관의 공동 발표와 정상의 추인을 거친 공식적인 약속이긴 하지만 서면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통상적으로 조약에 사용되는 형식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헌법이 규정한 조약의 체결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합의의 효력에 관한 양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없었고 구체적이고 법적인 권리나 의무를 창설하는 내용도 아니다"라며 "이 합의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문제의 해결을 위한 외교적 협의 과정에서의 정치적 합의에 불과해 이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정치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 사건 합의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주지 않고 그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 있다고 보기 어려워 이를 대상으로 한 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일본 정부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조항을 달아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약100억원)을 출연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하지만 합의 조건에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시는 문제 삼지 않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드러나며 '불공정 합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이듬해 3월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들을 대리해 "이들의 재산권과 알 권리, 외교적 보호를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 소원을 냈다.

헌재는 이 사건을 3년 9개월가량 심리해왔다. 애초부터 일본과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선고를 미루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날 각하 결정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헌재가 정치적·외교적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선 헌재가 박근혜정부 위안부 합의를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만큼, 조약으로서의 구속력은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해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당 합의를 두고 그동안 법적 구속력을 부인해 온 외교부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일제강점기 피해자 문제, '본안 판단' 미룬 사법부…왜(종합2)
◇헌재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 정부 의무이행 위반 아냐"=헌재는 이날 한문형씨(86) 등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동포들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서도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일제강점기에 동원돼 러시아 사할린에 머무르며 강제노동을 했던 한 씨 등은 당시 급여를 일본국 우편예금이나 간이생명보험으로 강제 예금 당했지만 재산권을 받지 못했다.

한국은 1965년 일본과 청구권 협정을 체결했으나, 이 협정으로 개인적 재산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이 한 씨 측 주장이다. 또 협정 체결 당시 사할린은 한국과 국교가 단절 돼 있어 협정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이들의 개인적 재산권도 협정으로 소급해 소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청구권 협정에 관한 해석상 분쟁 해결을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헌재가 이날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피해보상을 받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헌재는 이날 "정부가 분쟁해결 이행에 관한 자기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위헌이라 주장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내기
시작했지만 일본 법원들은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내에서 진행중인 소송에서도미쓰비시중공업·후지코서 등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피해보상 인정 판결이일부 나오긴 했지만 일본 기업들이 배상금을 낼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단체 "각하 결정, 아쉬움 남아"=시민단체들은 이날 헌재의 각하 결정이 내려지자 아쉬움을 표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와 민변은 기자회견을 열고 "상처를 받고 지낸 시간들이 수년에 이르렀는데 (정부 책임을 묻는게) 부적합하다는 각하 결정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어르신들이 받았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을 헌재가 하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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