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투자 했더니 오히려 남들보다 잘 벌어"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20.01.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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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새로운 10년 ESG] 1-<9>투자 패러다임이 변한다…임팩트 투자자 네트워크 'Toniic'(토닉) 아담 벤델 사장 인터뷰

편집자주 ESG(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ESG 친화기업에 투자하는 글로벌 자금은 30조 달러를 넘어섰고, 지원법을 도입하는 국가도 생겨났습니다. ESG는 성장정체에 직면한 한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단이자 목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2020 새로운 10년 ESG’ 연중기획 기획을 통해 한국형 자본주의의 새 길을 모색합니다.

아담 벤델 토닉(toniic) 사장/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아담 벤델 토닉(toniic) 사장/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


"사회적·환경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치는 착한 기업들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가 돈이 안 된다는 건 착각이다. 임팩트 투자는 오히려 시장 평균수익률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린다. 사회적·환경적 영향에 대한 관심은 시장 대비 초과수익을 거둘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준다."

전세계 임팩트 투자자들의 모임인 'Toniic'(토닉)의 아담 벤델 사장(CEO)은 임팩트 투자가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다는 고정관념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임팩트 투자자, 시장수익률 이상 달성"
지난 연말 뉴욕 맨해튼의 한 식당에서 만난 벤델 사장은 "토닉 회원들을 비롯해 대다수 임팩트 투자자들이 시장 평균수익률 수준의 수익을 추구하는데, 실제론 그 이상을 달성한다"고 귀띔했다.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선 아직 임팩트 투자가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처럼 인식돼 있다. 전형적인 오해다. 임팩트 투자도 재무적 수익을 목표로 한다. 오히려 사회와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진 덕분에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 기회를 남들보다 일찍 찾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사례를 묻자 그는 식물성 단백질로 '대체육류'를 만드는 기업 '비욘드미트'(beyond meat)를 꼽았다. '채식주의' 열풍을 타고 급성장한 비욘드미트는 지난해 5월2일 나스닥시장에 상장한 뒤 한달 만에 주가가 4배나 급등했다.

벤델 사장은 "전통적 투자자들은 이제야 대체육류 분야를 투자대상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임팩트 투자자들은 수년 전부터 이 분야에 집중해왔다"며 "토닉 회원 등 많은 임팩트 투자자들이 비욘드미트의 초기 투자자였다"고 했다.

-사회·환경 고려했더니, 대체육·공공화장실 등 주목


-남보다 빠른 투자로 성과… "좋은 일 했다" 행복감도

-'고령화', '여성', 저소득층 위한 '포용적 금융' 유망

-"스스로에게 오늘 돈을 어디에 쓸지 물어보라"



토닉이 2년마다 발간하는 'T100: 파워드어센트(Powered Ascent)란 보고서가 있다. 이에 따르면 토닉에 가입한 임팩트 투자자 76명 가운데 82%가 지난 9월 기준으로 임팩트 투자에서 시장수익률 이상을 기록했다. 이들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총 28억달러(약 3조3000억원)로, 이 중 75%의 자금이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고려해 투자됐다.

벤델 사장은 또 다른 성공적 임팩트 투자 사례도 소개했다. 화장실이 부족한 케냐 나이로비의 빈민가에 공중 화장실을 지어주고, 그곳에서 나오는 인분을 비료로 만들어 농부들에게 파는 사업이다. 공중 화장실을 빌려주고 임대료 수익도 올린다. MIT(매사추세츠공대) 출신 학생 3명이 시작한 이 사업은 나이로비 현지에서 수백명의 직원을 고용할 정도로 커졌다.

토닉 회원들이 임팩트 투자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뭘까. 벤델 사장은 임팩트 투자의 동기를 크게 3가지로 요약했다. △사회적 요구 △행복감 △미래에 대한 공포다.

"주주와 소비자, 종업원 등 이해관계자들이 사회적·환경적 영향에 대한 관심을 요구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펀드 투자자들이 운용사에 그런 요구를 하기도 한다. 또 다른 동기는 이 일 자체가 즐겁다는 것이다. 나의 자원을 세상에 좋은 일을 위해 쓴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마지막 동기는 공포다.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도외시한 기업들의 활동이 결국은 그 기업들의 수익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하루 이틀 뒤에 벌어질 일은 아니지만 머지 않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기후변화가 대표적이다."

벤델 사장은 미래에 대한 공포가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열망으로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비욘드미트가 그 예다. "이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식품생산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욘드미트에 투자했다. 지금의 축산업은 메탄가스 배출로 기후변화 문제를 악화시키고 물과 토지를 오염시켜 전세계 수십억명의 건강을 위협한다. 동물학대 문제가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의 식품생산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대체육류 사업에 투자한 것이다."

이쯤에서 벤델 사장,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변호사인 그는 자신이 창업한 IT(정보기술) 서비스 업체를 대기업에 매각하며 큰 돈을 번 뒤 그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회사를 대기업에 넘기고 한동안 그 대기업의 임원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개인적 취미로 투자를 시작했는데, 금전적 수익뿐 아니라 사회적·환경적 영향도 함께 추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고민을 하는 토닉 회원들을 알게 되면서 회원이 됐고, 점점 취미가 아닌 전업으로 임팩트 투자를 하고 싶어졌다. 대기업을 떠나 토닉 사장에 지원한 이유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변호사, 창업가, 대기업 임원까지 해봤지만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좋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 자체가 날 행복하게 한다."

아담 벤델 토닉(toniic) 사장/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아담 벤델 토닉(toniic) 사장/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
"스스로에게 오늘 돈을 어디에 쓸지 물어라"
앞으로 유망한 임팩트 투자 분야를 물었다. 그는 △고령화 △여성 △포용적 금융을 꼽았다.

"한국과 일본 등에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앞으로 절대적으로 늘어날 고령 인구가 반드시 필요로 할 상품이나 서비스가 있을 것이다. 노인들을 위한 커다란 버튼의 휴대폰이 대표적이다. 노인들에게 IT(정보기술) 기기를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밖에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노인들에게 도움이 될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가 앞으로 나올 수도 있다. "

그는 여성을 위한 '성 인지'(Gender Lens) 투자는 사회적 영향 뿐 아니라 투자 수익 측면에서도 큰 기회라고 강조했다. "여성들을 위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여성 종업원들에게 친화적인 정책을 가진 기업, 여성이 창업자 또는 경영진인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지금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여성들의 영향력이 큰 시기다."

포용적 금융은 저소득층이나 신용불량자들에게 대출이나 신용카드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벤델 사장은 "경제적 약자들을 상대로 약탈적인 금리를 물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도 그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물론 신용 등의 위험이 크지만 위험을 관리하는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임팩트 투자에 어려운 점은 없을까. 그는 사회적·환경적 영향과 재무적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털어놨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회사 A와 B가 있다고 치자. A는 대출의 95%를 상환받고, B는 90%를 상환받는다. 재무적으로는 A가 좋지만, 만약 B가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회사라면 어떨까. 이럴 때 임팩트 투자자는 어느 회사에 투자해야 할까? 관련 정보를 모두 살펴보기 전까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는 또 임팩트 투자 생태계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지역에선 투자 자체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한국의 임팩트 투자 생태계는 아직 발전하는 단계다.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은 더 성숙한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갖고 있다. 더 많은 정보와 중재자들이 있어서 투자 대상을 찾고 거래를 하기가 훨씬 쉽다. 임팩트 투자를 위해선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측정하고 경영진을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누굴 믿을 수 있고, 누굴 믿을 수 없는지 판단하는 것도 성숙된 생태계가 갖춰져야 가능하다."

벤델 사장은 전통적 투자에서도 더 이상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우린 근본적 변화의 시작점에 와 있다. 사회적·환경적 영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것이 투자의 아주 중요한 변수가 됐다. 전문적 투자자라면 이젠 임팩트 투자 기술을 익혀둘 필요가 있다.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측정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투자 포트폴리오를 짤 때 과거엔 수익과 위험, 유동성, 자산배분 등을 고려했지만 앞으로는 사회적·환경적 영향도 고려할 조건으로 넣어야 한다. 수익을 포기하란 뜻이 아니다. 단지 새로운 조건 하나만 추가하는 것이다."

그는 "임팩트 투자를 수익극대화를 위한 투자전략의 하나로 활용할 수도 있다"며 "사회적·환경적 영향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이를 초과수익을 위한 투자 정보로 활용해도 좋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스스로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졌으면 한다. '오늘 나의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 뭔가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가급적 사회적·환경적으로 좋은 것을 선택했으면 한다. 만약 여러분이 부자라면 다소 비싸더라도 환경에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 테슬라의 초기 고가 모델이었던 모델S가 대표적이다. 부자들이 그 모델을 샀기 때문에 이후 평범한 사람들도 살 수 있는 모델3 등 비교적 대중적인 모델들이 나올 수 있었다. 기왕 돈을 쓸 바엔 사회와 지구에 더 도움이 되는 쪽에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토닉은 어떤 곳?
토닉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전세계 임팩트 투자자들의 네트워크다. 현재 2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에선 이철영 아크임팩트자산운용 회장과 이덕준 D3쥬빌리파트너스 대표 등이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환경적 영향과 재무적 수익을 동시에 추구한다.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판단할 땐 빈곤, 건강, 교육, 여성, 환경 등 유엔의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를 기준으로 삼는다.

회원들에게 투자 대상과 전략, 성공 사례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는 각 회원들이 개별적으로 한다. 투자 대상 기업을 찾아 공동 투자 기회를 주선하기도 한다.

아담 벤델 토닉(toniic) 사장/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아담 벤델 토닉(toniic) 사장/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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