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력'해도 안돼…日청년, 절망에 빠진 이유[日산지석]

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2019.12.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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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 나라 '17~19세' 설문조사
일본 낙관론, 美 절반도 안돼
韓도 낮아, 日현상 참고할 만

편집자주 고령화 등 문제를 앞서 겪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타산지석' 삼기 위해 시작한 연재물입니다.

"국가에 문제 있지만, 바꿀 수 있다는 기대 안해"
지난달 말 일본의 한 공익재단이 발표한 9개국 젊은이들의 의식 조사 결과가 일본 내에서 걱정 어린 시선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국, 미국 등도 포함된 이 조사 결과가 눈에 띄게 어둡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11월30일 일본재단이 공개한 이 조사는 한국, 일본, 미국, 중국, 영국, 독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9개 나라의 만 17~19세 각 1000명씩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기간은 9월27일~10월10일. 주제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식'입니다.



'노오력'해도 안돼…日청년, 절망에 빠진 이유[日산지석]


"해결하고 싶은 사회문제가 있나"라는 물음에 일본의 새내기 성인(혹은 예비성인)은 46.4%가 긍정 반응을 보였습니다. 같은 질문에 한국은 71.6%가, 중국 73.4%, 미국 79.4%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이 사회문제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스스로 국가나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질문에 일본 청년은 18.3%만이 "예"라고 했습니다. 8위인 한국(39.6%)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중국(65.5%), 미국( 65.7%)과는 매우 큰 차이를 보입니다. 사회문제에 관심도 적지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는 더 낮습니다.



이들 질문의 종합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데 긍정 의견은 일본에서 겨우 9.6%입니다. 선진국인 미국(30.2%), 독일(21.1%)과도 많이 다릅니다. 개발도상국인 중국은 무려 96.2%, 한국은 22%였습니다.

일본의 17~19세들은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29.1%로 다른 나라(한국 49.1%, 중국 89.9%, 미국 78.1%)보다 크게 낮았고, "책임있는 사회의 일원"이라고 한 쪽도 44.8%로 역시 상대적으로 적습니다.(한국 74.6%, 중국 96.5%, 미국 88.6%)

이러한 결과에 대해 일본에서는 일본사회의 무력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나도 저렇게 살 거야"→"나도 저렇게 될라"
/사진=로이터/사진=로이터
지난 4월 사회학자인 주오대학의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야후뉴스 특집기사에서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야마다는 1997년 '패러사이트 싱글'(parasite single, 부모에 의지해 사는 성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이름을 알린 교수입니다.

그는 일본에서 널리 쓰이는 '희망의 격차'를 주제로 한 해당 기사에서 젊은이들이 앞선 세대의 모습을 보면서 냉정하게 미래의 위험을 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과거에는 직장에서 때가 되면 승진하고 월급도 느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데,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겁니다.

일본경제가 절정이던 1987년 내각부 조사에서 "앞으로 수입과 자산에 불안을 느낀다"는 20대는 11.5%였지만, 2012년에는 32.1%로 껑충 뛰었습니다. 그 사이인 1990년대 말,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쳐 대기업과 금융사가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비정규직이 늘었고, 이 시기를 전후로 비정규직 또는 프리터족(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으로 사회에 진입한 젊은이들은 정규직이 되지 못한 채 사회생활을 이어갑니다.

야마다 교수가 이름 붙인 '패러사이트 싱글'은 1990년대 초반 20대 회사원이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점 독립이 어려운 30~40대 패러사이트 싱글이 늘어났습니다. 앞선 설문조사에 응한 지금의 젊은이들(17~19세)은 과거 젊은이들이 어떻게 중년이 돼가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뉴스에선 연금에 대한 불안한 소식이 들립니다.

늘어난 주거비
젊은층의 생활이 이전보다 팍팍해진 것은 일본정부의 보고서에서도 나타납니다. 지난해 내각부 문서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5~39세 나홀로가구의 소비 내역에서 주거비 비중은 1984년에 비해 두자릿수 퍼센트로 가장 크게 늘어났습니다. 반면에 외식비 비중은 많이 줄었습니다. 보고서는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과 일본의 버블붕괴 이후 기업들이 사택·기숙사 제공, 주택비 지원 등 복리비를 줄인 것을 이유로 분석합니다.

야마다 교수는 과거 젊은이들은 '현실엔 불만, 미래는 낙관'이었는데, 지금은 '현실 만족, 미래 비관'으로 정반대라고 지적합니다. 특히 그는 노력해도 안 된다, 사회는 바꿀 수 없다 등으로 이들의 비관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사회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회에서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 궤도에서 튕겨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와 같지는 않습니다만, 비정규직·주거비 문제 등 처한 상황에는 비슷한 점들이 보입니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한국 청년들의 반응도 밝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현상에 눈길이 가는 이유입니다.

'노오력'해도 안돼…日청년, 절망에 빠진 이유[日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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