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헤지펀드 美증시 하락 베팅'은 오보일까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2019.11.25 16:55
글자크기

WSJ "브리지워터 증시 하락에 15억달러 베팅"보도...브리지워터 "방향성 투자한 적 없다" 반박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업자 겸 사장 / 사진제공=권성희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업자 겸 사장 / 사진제공=권성희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 수준까지 올라서자 세계 최대 헤지펀드가 증시 하락에 15억달러를 베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헤지펀드는 "증시 하락에 베팅한 적이 없다"며 기사를 즉각 부인했지만, 보도를 한 신문사 역시 "오보가 아니"라며 기사 게재를 유지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관계자들을 통해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가 주식 시장 하락울 예상하며 15억달러를 베팅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미국 S&P(스탠다드앤푸어스) 500 또는 유로스톡스(Euro Stoxx) 50 둘 중 하나만 하락해도 수익이 나는 구조다. 투자는 내년 3월까지 유효한 풋옵션으로 구성됐다. 풋옵션이란 특정한 기초자산을 장래의 특정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주가가 하락해도 풋옵션을 행사하면 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기 때문에 주가 하락 시 이득을 볼 수 있다.



헤지펀드가 풋옵션을 매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시장 상황이 불안해 주가의 방향을 점치기 어려울 때 펀드가 매수한 포트폴리오를 헤지(주가 하락 방어)하기 위해 풋옵션을 사기도 한다. WSJ는 브리지워터의 풋옵션이 현재 시장에 대한 가장 큰 약세 베팅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15억달러는 브리지워터 자산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
또 관계자의 말을 빌어 옵션 계약이 약 1000억달러 상당의 지수와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브리지워터가 언제, 얼마나 수익을 볼 지는 시장의 하락 규모와 헤지펀드가 옵션을 현금화하는 시기 등에 달려 있어 미리 추정하기는 어렵다.

베팅 규모가 크다보니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트레이더들 사이에서 관련 대화가 이어지고 일부 옵션의 가격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특히 S&P 500 지수와 관련해 풋옵션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데이터 제공 업체 트레이드 알럿에 따르면 S&P 500 풋옵션의 수는 지난 9월에 4년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3월에 만료되는 S&P 500 풋 옵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WSJ는 증시가 사상 최고치에 도달하고, 일부 투자자들이 증시 조정을 우려하면서 약세장에 대한 베팅이 늘어나고 있다고 봤다. 특히 일각에서는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 의원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거나 대통령이 되면 헬스케어 업종을 포함해 증시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5년간 S&P500 지수 추이/블룸버그최근 5년간 S&P500 지수 추이/블룸버그
브리지워터는 이와 같은 WSJ의 기사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브리지워터는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미국의 어떤 정치적 발전에 대해서도 헤지하거나 베팅하는 포지션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브리지워터의 포지션은 자주 바뀌고 종종 다른 자산을 위해 헤지하며, 이를 하나의 방향성으로 읽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브리지워터의 창립자인 레이 달리오도 23일 트위터에서 "이 기사는 틀렸다. 나는 우리가 증시 하락에 대한 순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록 진실이 헤드라인에 맞지 않더라도 많은 기자들이 주목을 끄는 헤드라인을 우선시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고 했다.


WSJ 측은 "기사는 여러 출처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했다"며 오보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WSJ는 성명서에서 "달리오의 말처럼 브리지워터가 주식 시장에서 순수하게 약세장에 베팅했다고 보도하지 않았다"며 "기사에서 주식 시장에 대한 헤지 가능성을 분명히 했다"고 덧붙였다.

CNBC는 브리지워터와 WSJ의 공방과 관련해 "브리지워터가 약세 베팅(풋옵션)의 배경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최근 3주간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많은 투자자와 전략가들이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달리오의 이전 인터뷰를 인용하며 그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에 대해 낙관하고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달리오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무역전쟁, 기술전쟁, 지정학적 전쟁이 진행되고 있고, 자본전쟁도 있을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접근 방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전쟁이 자본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솔직히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낙관적이기를 원한다"고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