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입고 출근할 것"…'젊은 총수' 조원태의 파격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19.11.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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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직접 답변하며 직원 소통…"이익 안나는 사업 버린다" 고강도 구조조정 예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이상배 뉴욕특파원


"내년 여름엔 반바지를 입고 출근할거다. 그날은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어야겠다. 다들 보라고."

19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한식당에서 만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44·사진)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9월부터 대한항공에서 복장자율화를 실시한 뒤 솔선수범 차원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항상 캐주얼을 입는다고 했다. 보수적인 한진그룹의 기업문화를 깨기 위해서다.

"지난 여름 대한항공 본부장 회의에서 복장자율화를 제안했다. 그 전까진 남자는 넥타이에 정장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본부장들이 복장자율화를 해도 최소한의 기준은 정해야 한다고 하더라. 제가 그냥 놔둬보자고 했다. 슬리퍼를 신고 오든 수영복을 입고 오든 알아서 하라고. 아직까지 그렇게 하고 오는 사람은 없더라.(웃음)"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직접 답변하며 직원 소통

지난 4월 취임 후 조 회장이 기자들과 공식적으로 만난 건 이번이 두번째다. 지난 6월2일 서울에서 열린 제75회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개막 기자회견이 처음이었다.



조 회장을 만나면 누구나 큰 키에 한번 놀란다. 또 악수를 하면서 큰 손에 또 한번 놀란다. 키가 193cm라고 했다. "외국인 배구 선수들보단 작다. 그래도 한국에선 맞는 옷을 못 구한다. 정장은 맞추면 되지만 캐주얼은 그것도 안 된다. 골프채도 그냥은 못 쓴다. 길이도 그렇고, 그립도 그렇고. "

한국배구연맹 총재인 조 회장의 요즘 취미는 배구 경기 관람이다. "배구연맹을 맡기 전까진 스포츠 뉴스를 본 적이 없다.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출근하면 배구 뉴스부터 찾아본다." 경기장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젊은 총수답게 조 회장이 회사에서 가장 공 들이는 건 직원들과의 소통이다. 온라인 사내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직접 답변을 달기도 한다. "익명 게시판에서 직원들의 건의 글을 보다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본부장에게 해결하라고 보낸다. 그런데 가끔 정말 맞는 말을 한다 싶으면 직접 답을 단다. 바로 해결하겠다고. 그런데 내가 답을 했더니 그 뒤에 아무도 의견을 안 달더라. 소통하려고 한건데, 오히려 역효과가 있는 것 같다.(웃음)"


조 회장이 뉴욕을 찾은 건 지난 4월 별세한 선친 조양호 전 회장에게 수여되는 '2019년 밴 플리트상'을 대신 받기 위해서다. 밴 플리트상은 한미 친선 비영리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양국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고인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상식은 20일 뉴욕 맨해튼 플라자호텔에서 열린다.

선친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물었다. "지난 1월부터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셨다. 그때부터 의사소통도 안 되고 계속 병원에 계셨다. 유언은 따로 없었고 지난해 12월 제게 이메일을 보내 앞으로 대한항공은 제가, 나머지 계열사는 대표이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누나와 동생, 어머니와 협조해서 결정해 나가라고 하셨는데, 그게 마지막 말씀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지분으로 볼 때 가족 간에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제가 독식하고자 하는 욕심은 전혀 없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항공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이익 안나는 사업 버린다" 고강도 구조조정 예고

한진그룹의 새 총수로서 향후 경영전략이 궁금했다. 조 회장이 내놓은 대답은 주력사업 집중을 위한 사업 구조조정이었다.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버려야 한다. 항공운송과 항공기 제작, 호텔을 포함한 여행 등 주력 사업을 제외하곤 정리할 것들이 좀 있다. 운송사업과 그와 관련된 사업 외에는 관심이 없다. 있는 것도 지키기도 힘든 환경인 만큼 추가로 사업을 벌릴 생각은 없다."

재무구조 개선 의지도 밝혔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가 개선되면 경쟁이 심해질 수 있다. 대한항공도 빨리 재무구조를 개선해 대응하려고 한다." 재무구조 개선책으론 비용구조 개편을 꼽았다. 대한항공의 흑자전환 시점으론 2021년초를 예상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3/4분기 2118억원(별도기준)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의 2대주주인 국내 행동주의펀드 KCGI의 경영권 위협에 대해선 자신감을 내비쳤다.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한번 겪어봤기 때문에 앞으로 좀 더 쉽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조 회장 앞엔 추락한 신뢰회복이란 숙제가 놓여있다. 신뢰를 되찾을 복안이 있냐고 물었다. "그동안 너무 부끄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다. 금방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외엔 딱히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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