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시대... '데이터 총생산' 새 경제지표로"

머니투데이 대담=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정리=류준영 기자, 사진=김창현 기자 2019.11.1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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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최희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

최희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사진=김창현 기자 최희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사진=김창현 기자


데이터는 흔히 4차 산업혁명의 원유라 불린다. AI(인공지능), 핀테크(금융기술), 블록체인,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미래를 이끌 신사업 대부분 데이터가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후 국가, 기업의 경쟁력은 빅데이터 분석·활용 능력에 달려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1914년 이후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의 87%가 대용량 연구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뤄졌다.



국내에서도 정부출연연구기관·대학의 연구 데이터를 개방·공유하는 ‘오픈 사이언스(개방형 과학)’ 바람이 불고 있다. 1억여건이 넘는 과학기술 정보·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유통하는 플랫폼 개발 및 시스템 구축을 주도하는 곳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다. KISTI는 국가 과학기술 정보분야 대표 연구기관으로 과학기술기본법에 역할이 명시돼 있는 유일한 출연연구소이기도 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보다도 빠른 1962년 설립됐다.

최희윤 제7대 KISTI 원장(61)은 “과학기술 정보·데이터를 수집, 표준화하고(Collection R&D)’, 슈퍼컴퓨터를 통해 국가난제를 해결하고(Computing R&D),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가의사 결정을 지원하고(Analysis R&D), 협업·융합 연구환경을 구축하는(Collaboration R&D)것이 KISTI의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머니투데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데이터 기반 과학기술혁신투자플랫폼 서비스와 솔루션은 우리 삶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킬 것”이라며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산·학·연·정 협업·융합 생태계를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생산3요소(토지·노동·자본)에 데이터를 새 요소로 포함시키자는 제안도 했다. 최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데이터경제’를 선언할 정도로 데이터는 이제 과학기술, 경제, 산업 등 전 분야에서 새로운 생산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면서 “이미 해외에선 ‘데이터총생산’(Gross Data Product, GDP)을 새로운 경제지표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벌써 임기 반이 지났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로부터 그간의 새로운 실험과 도전, 소회를 들어봤다.

-어느덧 취임 후 임기 반환점을 돌게 됐는데 소회가 어떤가.

▶기관장으로 취임한 지 1년 9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제가 한 일을 키워드로 표현하면 데이터, 연계, 융합으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은 제 캐치프레이즈입니다.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연계·융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연결 생태계를 만드는 데 힘써 왔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연구데이터 플랫폼’ 시범서비스를 구축했습니다.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이 국가 R&D를 수행하며 축적해온 연구 데이터를 한번에 볼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이 사업은 2009년 정보유통본부장 때 제안했던 일입니다. 그땐 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강조된 시절이 아니었던 탓에 기획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사이언스온’(ScienceON)도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KISTI의 여러 서비스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과학기술정보들을 한곳에서 이용할 수 있는 통합 서비스 플랫폼입니다. 가령, 논문을 읽다가도 이게 어떤 과제에서 나왔지, 슈퍼컴으로 계산한 결과값이 얼마지, 관련한 핵심 키워드는 뭐지를 한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AI(인공지능)로 수요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해 ‘우연한 발견’이 가능케 한 플랫폼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과 국가연구개발투자의사결정플랫폼 ‘R&D 파이’(PIE, Platform for Investment and Evaluation)도 구축했습니다.

-다음달 3일이면 ‘누리온’ 가동 1년째에 접어든다. 그간 어떤 시도가 있었고, 어떤 성과를 거뒀나.

▶누리온은 세계 인구 70억명이 24시간, 420년에 걸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를 1시간 만에 처리하는 성능을 갖췄습니다. 이 덕에 현재까지 142개 기관 2000여 명에 달하는 산학연 연구자가 누리온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했고, 현재까지도 계속 사용 신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은하 생성·진화의 비밀에서부터 반도체소재 후보물질 발굴까지 기초·개발연구 전 부문에서 쓰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누리온으로 세계에서 2번째 규모인 ‘우주 구조 시뮬레이션’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주 나이 138억년 동안 은하의 생성을 살펴보고, 암흑물질이 우주 구조물 생성에 미친 영향을 규명했습니다. 국립암센터, 서울대병원 등과 공동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암 전장 유전체 빅데이터를 분석해 ‘암 유전자 돌연변이 지도’도 작성했습니다. P형 산화반도체 후보 물질 탐색을 위해 1만7700여개의 물질을 분석, 가장 적합한 특성의 반도체 소재 후보물질도 발굴했습니다.

최희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사진=김창현 기자 최희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사진=김창현 기자
-지난달 구글이 슈퍼컴퓨터로 1만년에 걸쳐 수행해야 하는 연산을 자신들이 개발한 양자컴퓨터칩 '시카모어'로 200초 만에 해결했다는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실어 주목을 받았다. 양자컴퓨터 분야도 다루고 있나.


▶양자컴퓨터는 빠르지만 암호 해독 등 특정 문제 해결에 특화돼 있습니다. 슈퍼컴퓨터는 양자컴퓨터보다는 느리지만, 보다 많은 문제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를 대처한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개념입니다. KISTI는 연구데이터망을 고도화하기 위해 양자암호통신을 적용하는 연구를 내년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경제지표로 ‘데이터 총생산’ 지표를 활용하자고 제안하셨는데.

▶스마트폰이 제 일상을 기록해 '라이프 로그' 데이터가 생성됩니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하루는 ‘데일리 로그’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이를 활용해 더 편리하고 나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데이터를 누구나 편리하게 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이른바 ‘데이터경제’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데이터 경제란 데이터가 경제활동의 중요한 생산요소로 사용되는 경제 구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즘 학자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경제지표도 데이터로 측정하자고. 데이터총생산 개념은 지난 1월 하버드 비지니스리뷰에서 처음 발표된 개념입니다. 그동안 국가 경제의 생산성 지표인 국내총생산량(Gross Domestic Product)를 대신해 4차 산업혁명시대 국가 데이터 경제의 생산성을 대표할 새로운 경제활동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총생산은 데이터 생산량, 데이터 접근 용이성, 1인당 데이터 소비량, 인터넷 이용자 수 등 네 가지로 평가합니다.

-데이터총생산 지표를 도입해 얻을 효과는.

▶정부가 주창하는 데이터 경제와 4차 산업혁명의 활동에 대해 계량하는 지표가 됩니다. 이를 통해 국가 정책 현황의 효과성을 살펴보고, 이를 검증하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일본 수출 규제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 핵심기술 국산화가 출연연에 최대 화두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며,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면.

▶소재·부품·장비 분야가 양적 성장에 치우치지 말고 질적으로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KISTI는 불화수소, 폴리이미드필름, 포토레지스트 등 3대 핵심소재에 대한 국가 R&D투자 현황, 선진국 대비 기술수준, 국산화 가능성 및 예상 소요기간, 규제완화, 인력 양성 등을 분석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제공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다양한 시사점을 얻기도 했습니다. 국산화라는 것은 기업 매출에 영향을 주기 전까지 일종의 리스크로 관리되는 개념이고, 누군가 강요한다고 해서 실현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수출규제로 현실화된 이번 기회를 살려 많은 분야의 핵심 소재 국산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단, 해당 분야에서의 원천기술 개발은 긴 호흡으로 이뤄져야 하고 공공성이 높은 개발 영역이 많아 출연연 역할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가 차원에서는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전략적 투자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고, 이런 부문에서 국가연구개발 투자의사결정 플랫폼을 구축·운영하고 있는 KISTI의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또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소재 후보물질의 탐색과 유효성에 대한 시뮬레이션 등에 우리 기관이 보유한 기술 역량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역 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지역 R&D혁신을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출연연의 사회적 책임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인천시, 대전시, 부산시, 창원시, 김해시 등 지역자치단체와 MOU(업무협약)를 많이 맺었습니다. 자매결연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MOU를 맺고 있습니다. 주로 KISTI의 연구데이터, 지자체의 지역데이터를 결합해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형태입니다. 인천시의 경우 침수·교통문제를 함께 풀었습니다. 인천시청 내에 우리와 함께 일하는 부서가 별도로 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고, 시장님께 감사패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산부산대학교병원과는 후두암 조기진단 플랫폼을 함께 개발하는 등 지역에 다양한 주체들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최희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은 누구
최희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 / 사진제공=1최희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 / 사진제공=1
최희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은 KISTI의 전신인 산업연구원(KIET)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다. 1984년 입사한 이후 국내 최초로 온라인 정보관리시스템을 개설하는 일을 하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유학을 선택하게 된다. 귀국 후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1994~2004년)으로 일할 땐 당시 경영화두로 제시됐던 ‘지식경영’ 시스템을 도입해 기업과 연구소를 연결하는 프로세스 기반 지식관리 체계를 구축해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첫 직장인 KISTI에 다시 돌아와 지식정보센터장(2007년) 정보유통본부장(2009년), 과학기술정보센터장(2014년) 등 주요 보직을 맡다 지난해 1월 KISTI 7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최 원장은 취임 후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실(室)을 없애고 센터 중심의 ‘조직 슬림화’를 단행했다. 또 다양한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수평적 조직 문화로 변화를 꾀했다. 창립기념일 행사에 이음상, 주춧돌상 등으로 시상 제도를 바꾼 게 대표적이다. 상의 의미만 약간씩 다를 뿐, 공로의 경중을 없도록 해 모두가 똑같이 축하받을 수 있게 했다. 그는 ‘KISTI 투게더 토크(Together Talk)’ 등을 통해 기관 내 소소한 이슈를 전직원과 공유하는 등 감성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최 원장은 지난 6일 여성과학기술인 성장지원, 가족 친화적 제도 신설을 통한 젠더 혁신, 대국민 과학 소통 및 지역사회 공헌 활동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출연연 중에선 올해 유일하게 ‘2019 대한민국 봉사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원장 임명 전 KISTI 여직원 모임에서 봉사활동을 주도해왔다.

△1958년 전남 목포 출생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학·석·박사(정보학) △ 산업연구원(KIET)책임연구원 △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KISTI 정보유통본부장 △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 △ 세계과학기술정보위원회(ICSTI)부회장 △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정책조정위원, ICT융합조정위원 △ 국회도서관, 공군 자문위원 △ KISTI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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