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영구정지' 고리 1호기가 분주한 이유?

머니투데이 부산=권혜민 기자 2019.10.3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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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영구정지 후 해체계획서 작성, 기술확보 등 첫 해체 준비 중…사용후핵연료 처리방법 결정시기가 변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전경,/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전경,/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대한민국 원전의 자존심 고리 제1발전소.'

지난 29일 찾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사전출입허가를 받고도 두 차례 신분 확인과 보안검색 등 까다로운 출입절차를 거쳐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부지 내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입구 앞 파란색 크레인에 적힌 선명한 노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한강의 기적' 실현을 가능케했던 고리 1호기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국내 첫 상업용 원전이자 최초의 '영구정지' 원전인 고리 1호기의 지난 40년은 한국 원전사(史)와도 같다. 고리 1호기 건설로 한국은 세계에서 21번째 원전 보유국이 됐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은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7년 6월19일 자정 영구정지돼 국내 원전 최초로 해체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생산한 전력은 1560억kWh, 부산 지역 전체가 8년간 사용 가능한 양이다.



먼저 도착한 곳은 터빈룸이었다. 원전은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통해 발생한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리고 같은 축에 맞물려 있는 발전기를 함께 가동시켜 전기를 생산한다. 터빈과 발전기, 주급수펌프와 복수기 등 각종 배관과 설비가 있는 곳이 바로 이 터빈룸이다.

영구정지로 현재 가동을 멈춘 터빈룸은 고요한 상태였다. 들리는 것은 옆쪽에서 '쌍둥이 원전'인 고리 2호기가 가동되는 소음 뿐이었다. 정상운전 중이라면 귀마개 착용이 필요할 정도로 소음이 크다고 한다. 각종 설비는 40년된 시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고리 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이 만료된 2007년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10년을 더 운영했다. 이후 한 차례 더 수명연장에 대비해 시설을 모두 최신식으로 교체했다.



직원들 사이에선 이러한 설비가 더이상 가동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도 묻어났다. 약 30년간 고리 1호기에서 근무한 권양택 고리 1발전소장은 "고리 1호기는 한국 원전 엔지니어들을 양성한 사관학교였다"며 "40년간 대단한 기록을 남기고 은퇴하는 것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고리 원전 3호기 습식저장시설에 핵분열을 마치고 남은 폐연료봉인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돼 있다.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고리 원전 3호기 습식저장시설에 핵분열을 마치고 남은 폐연료봉인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돼 있다.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이어 들어선 주제어실(MCR)도 상황은 비슷했다. 주제어실은 원전 운전과 관련한 모든 일을 실시간 감시하고 제어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곳으로 '원전의 두뇌'라고도 한다. 원전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제어판에는 '원자로 출력 0%, 발전기 출력 0㎿h(메가와트시)'가 표시돼 있었다. 많은 조작 설비는 '영구정지'라 쓰인 스티커로 봉인돼 있었고, 곳곳엔 경보등도 켜져 있었다. 현재 원자로 가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발전소는 멈췄지만 주제어실에는 여전히 5조 3교대로 5명씩 직원들이 근무 중이다. 운전 중단 이후 원자로 안의 핵연료는 모두 제거됐지만, 핵분열을 마치고 남은 폐연료봉인 사용후핵연료 485다발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냉각설비, 전력설비, 방사선 감시설비 등은 그대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 운전일 때 10명씩 6개조가 교대근무를 했던 것에서 인원이 일부 줄었을 뿐이다.


이밖에도 고리본부 약 70명의 직원이 고리 1호기를 위해 분주히 일하고 있다. 해체 준비를 위해서다. 한수원은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향후 100년간 549조원에 달할 전세계 해체시장 선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리1호기는 즉시해체 방식으로, 해체에 최소 15년 6개월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한수원은 현재 해체계획서 초안을 작성했고 주민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2022년 6월쯤 원안위 승인을 받으면 본격 해체 작업이 시작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기술 58개 중 올해 말까지 51개, 2021년까지 나머지 7개를 확보할 예정이다. 해체 전문인력도 함께 양성하고 있다.

변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다. 원전 내부 습식저장시설에 임시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모두 반출해야 본격적으로 원자로를 절단·제염하고 건물과 시설을 철거하는 공정이 가능한데, 아직까지 이를 처리할 방안이 확정되지 못했다. 한수원으로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건식저장시설 건설에 7년이 걸리는 만큼 아무리 빨라도 2027년은 돼야 핵연료 반출이 가능할 것"이라며 "해체 일정을 차질 없이 수행하려면 위원회가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을 빨리 결정해줘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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