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잊힐 권리’ 잊은 서울시의 도시재생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19.10.28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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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직도 청량리에 (성매매) 업소가 있나요?”

최근 기자가 쓴 ‘청량리620 역사문화생활공간’ 조성 관련 기사(10월18일자 '서울시, 성매매업소를 생활유산으로? 청량리에 무슨 일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가 한 말이다.

서울시는 해명 자료에서 “청량리620 보존 구역 중 성매매업소로 쓰인 건물이 1동 포함됐지만 건물의 골조만 남기고 리모델링해 성매매업소 당시 모습과 이미지는 완전히 제거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서울시 해명과 달리 청량리620 바로 앞 한 업소는 여전히 운영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시는 애초 청량리620 사업의 출발점을 ‘역사의 보존’에 맞췄다.

2012년 청량리4구역 정비계획을 심의한 서울시는 당시 조건부 가결하면서 “과거 40년간 집창촌이었던만큼 그 형성 배경과 인문·물리적 현황 등을 포함한 역사를 기록화할 것”이란 단서를 달았다. 2016년 전문가들이 참여한 자문 회의에서도 ‘부정적 유산(집창촌)의 기록화 및 생활유물 보전’이란 방침을 세웠다.



주민들은 어떤 생각일까. 청량리4구역 재개발 추진위 관계자는 “청량리620이란 명칭부터 과거 집창촌을 의미한 청량리588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한 70대 주민은 “손주들 보기 부끄러워 이참에 다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50~60년대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서울 풍경과 정취를 남기겠다는 정책 의도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역별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에겐 추억이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픔이자 잊고 싶은 기억일 수 있다.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시리지만 후손을 위해 꼭 기억해야 하는 장소라면 이해가 가지만 그런 수긍도 어렵다. 결국 서울시의 공감능력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서울시가 이번 논란을 계기로 다른 재개발·재건축 지역에서도 공공기여나 기부채납으로 확보한 부지의 활용 방안에 대해 주민 의견을 경청했으면 한다. 반대가 심한 지역은 박원순 시장이 직접 설득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자수첩]‘잊힐 권리’ 잊은 서울시의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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