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SK-LG, 왜 미국서 싸우나

머니투데이 황시영 기자 2019.10.2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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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 소송시대]상대방 자료 다보는 '디스커버리' 미국에만 있어…"영업비밀 침해 입증 미국이 유리"

[MT리포트]SK-LG, 왜 미국서 싸우나


올해 4월 LG화학 (391,500원 ▼6,500 -1.63%)은 왜 '영업비밀(trade secret)' 침해 소송을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걸었을까. 답은 "영업비밀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는 쪽이 국내보다 미국에서 제소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로 SK 모든 자료 볼 수 있다"=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와 연방법원은 '증거개시(Discovery, 이하 디스커버리) 절차'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적용한다.



디스커버리는 상대방이 가진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가 의도적 목적으로 불법행위를 행한 경우 피해자가 실제 손해에 더해 형벌적인 요소로서의 금액을 추가적으로 받는 제도다. 둘 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도다.

한 변호사는 "LG화학 입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자료를 봐야해 미국에서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며 "디스커버리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를 내야 한다. 만약 디스커버리 명령에 불응해 자료를 안냈는데 특정 자료 미제출 사실이 법원에 알려지면 이 자료는 '영업비밀 침해가 있었던 증거'로 간주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디스커버리에서는 갖고 있는 하드, 서류, 자료를 '다 긁어서' 내야 하므로 자료의 양이 방대하다. 영업비밀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미국으로 가는 것이 볼 수 있는 증거가 많으므로 훨씬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합의로 끝나도 상대방에 큰 피해 줄 수 있어"=만약 고의적인 영업비밀 침해라면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따라 손해배상액수가 높아질 수 있다.

한국법원은 손해의 개념을 '현실 손해'로 본다.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액만 따진다는 것이다. 가령 손해액이 당장 5억원 발생했는데, 고객을 뺏기면서 입은 잠재적인 손해액이 100억원이라고 하면 한국법원은 이를 너무 지나치게 손해액을 적용한 것으로 보고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법원은 잠재적인 손해금액까지 감안해준다.


실제로 영업비밀 침해를 한국법원에서 인정받는 것은 어렵다. 판례를 찾아보면 이긴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커버리를 국내에 도입하는 방안도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이 경우 모든 자료를 다 봐야하므로 변호사 비용이 크게 올라가게 된다. 디스커버리에서는 자료가 워낙 방대해 변호사 수십명이 들어가 증거만 봐주는 '도급 로펌'이 있을 정도다.

또 다른 변호사는 "지금도 법률비용이 높아 변호사 쓰기가 어렵다고 하는 한국 상황에서는 디스커버리를 도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미국 역시 결국 디스커버리에다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변호사 비용이 너무 올라가면서 '합의'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도 "소송을 하면 상대방을 엄청 괴롭힐 수 있고 상대방의 자료를 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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