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길냥이 아빠'가 돼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9.09.1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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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들 밥자리 채우며 보낸 하루…'길냥이' 아닌 '동네 고양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어디 있다가 왔니". 폭우가 퍼붓던 날, 풀숲을 헤치고 간식 먹으러 나타난 길냥이 하양이. 온몸이 젖어 있었고, 많이 배가 고파 보였다./사진=남형도 기자"어디 있다가 왔니". 폭우가 퍼붓던 날, 풀숲을 헤치고 간식 먹으러 나타난 길냥이 하양이. 온몸이 젖어 있었고, 많이 배가 고파 보였다./사진=남형도 기자


폭우 속 '길냥이 아빠'가 돼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하양아, 이리와. 맘마 먹자."


"냐오옹, 냐옹."

우거진 풀숲은 후드득 떨어지는 비에 짙푸른 빛을 띠었다. 그 사이로 작은 길고양이(이하 길냥이)가 살며시 걸어 나왔다. 등과 귀는 까맣고, 발은 새하얀 녀석이었다. 그래서 하양이라고 했다. 퍼붓는 비에 녀석은 털이 쫄딱 젖어있었다. 발끝까지 다가온 하양이는 '야옹, 야옹'하고 나지막이 소리를 냈다. "그래, 알았어. 빨리 줄게." 그릇에 간식을 담는 '길냥이 엄마' A씨의 손이 덩달아 바빠졌다. 녀석은 뒷목이 빠져라 고갤 들고,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까만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빛났다.



그릇이 땅에 닿자마자 하양이는 풀숲에 주저앉아 고개를 박았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간식을 먹어치웠다. 꽤 굶주린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이따금씩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살아남기 위한 경계가 몸에 밴 듯했다. 20초 만에 간식 그릇 하나를 깨끗이 비운 하양이는, 옆 그릇으로 가 또다시 배를 채웠다. A씨는 "비 맞겠다, 얼른 먹고 빨리 가"라며 녀석을 재촉했다. 그러는 동안 빈 그릇에 사료를 채우고, 물도 넉넉히 채워 넣었다. 이렇게 하면 수시로 와서 먹는단다.

그날 하루 '길냥이 아빠(길고양이를 돌봐주는 남성들)'가 돼 봤다. 보통 '캣대디'라 하는데, 한글날을 앞두고 굳이 영어로 쓰고 싶진 않았다. 어쨌거나 처음이었다. 길냥이를 제대로 돌봐보는 건. 그동안에는 동네를 오가며 길냥이가 눈에 띄면 간식 통조림을 사서 주는 정도였다. 지난 6월쯤, 어미 길냥이와 구석에 웅크린 새끼 네 마리에게 먹이를 준 게 마지막이었다. 그 후론 그늘서 더위를 피하는 길냥이들과 눈인사 정도만 했었다. 더운데 조금만 참으라고.



동네에서 발견한 길냥이의 마지막 장면. 머리가 분홍빛 판자에 덮힌 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걸 보고 길 위의 고단한 삶을 짐작하고 싶어졌다./사진=남형도 기자동네에서 발견한 길냥이의 마지막 장면. 머리가 분홍빛 판자에 덮힌 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걸 보고 길 위의 고단한 삶을 짐작하고 싶어졌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다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무더웠던 날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그 끝에 자그마한 형체의 뭔가가 있었다. 그건 커다란 판자에 덮여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물건은 아녔다. 다가가 판자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동물이었다. 자세히 보니 새끼 고양이었다. 많아야 2개월쯤 됐을까. 녀석은 네 다리를 옆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누워 있었다. 아니 죽어 있었다. 차도 인근에서, 쌩쌩 지나가는 차들의 굉음을 들으며. 계속 볼 자신이 없어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명복을 빌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지만 편히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고.

짧은 순간의 잔상은 종일 이어졌다. 길냥이들 삶을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길 위에서 보내는 하루가 어떤지, 알고 싶었다. 짐작하고자 했다. 고단한지, 위험한지, 아니면 외로운지. 잘 모르기에 오랜 시간 이들을 돌봤던 이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강동냥이행복조합의 길냥이 엄마 두 명과 함께 다녀봤다.


무너진 아파트, 길냥이 100마리의 삶
"천천히 많이 먹어." 시선을 두고 마음을 쓰는 것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단 걸 왜 몰랐을지./사진=길냥이 엄마 A씨"천천히 많이 먹어." 시선을 두고 마음을 쓰는 것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단 걸 왜 몰랐을지./사진=길냥이 엄마 A씨
가을장마로 폭우가 퍼붓던 5일 오후, 강동구 한 재건축 단지를 찾았다. 규모가 6000세대나 되는 이곳은, 2017년 중반부터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아파트가 무너지기 전, 함께 어우러져 살던 길냥이만 모두 220~230마리 정도 됐다. 그중 몇몇은 이주하고, 얼마는 입양을 가고, 일부는 외부 프로젝트를 한다는 이들이 데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길냥이 100여마리가 남았다.

아파트를 모두 무너뜨리고 다시 짓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 동네 주민들은 다 떠났다. 길냥이 엄마들도 떠나야 했지만, 또 떠나지 못했다. 오래 돌보던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하나하나 특징을 외우고, 이름까지 손수 지어준 녀석들이었다. 매일 인사를 하고, 먹이를 주고, 다가와 몸을 기대면 쓰다듬었다. 어디 숨어 있었는지, 부르면 하나둘씩 나타나곤 했다. 오래 돌본 이들은 10년이 넘었고, 나이 많은 길냥이는 12~13살이나 됐다. 오래 쌓은 정(情)이었다. 식구나 다름없는 아이들을 무너지는 폐허에 둘 순 없었다.

그래서 길냥이 엄마 9명이 뭉쳤다. 동네에서 길냥이들을 돌보다 알게 된 이들이었다. 각자 보살펴 온 시간도, 사는 곳도 조금씩 달랐지만 길 위의 작은 생명이 스러지지 않게 버팀목이 돼 왔다. 그 뜻 하나만큼은 같았다. 그래서 이들은 연대하기로 했다. 길냥이들을 살려보기로 했다. 언제 할지, 어디를 돌지 서로 역할을 나눴다. 한 명 빼고는 모두 직장인이라, 대부분 퇴근하고 나서 돌봐야 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멀게는 강북구에서, 더 멀게는 의정부에서 돌보겠다며 오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이들 중 두 명을 만났다. 길냥이 엄마 A씨와 B씨였다. A씨는 길냥이를 돌본지 6년, B씨는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둘은 "폭우를 뚫고 오느라 고생했다"며 반갑게 첫인사를 건넸다. 고양이를 오래 돌봐서인지, 첫인상이 고양이를 닮았다 느꼈다. 이들은 갈 길이 바쁘다며, 부지런히 따라오라고 했다. 우비를 챙겨 입으니 다리 쪽에 모기 기피제를 뿌려줬다. 안 뿌리면 모기에 많이 뜯길 거라며(모기들이 내 피를 좋아라 하긴 한다).

길냥이들의 '밥자리'
길냥이들의 밥자리. 수시로 와서 먹기 때문에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주면 된다./사진=남형도 기자길냥이들의 밥자리. 수시로 와서 먹기 때문에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주면 된다./사진=남형도 기자
가장 먼저 해야할 건, 더 많이 번식하지 않도록 '중성화'를 시키는 것이다. 그건 이미 예전에 다 마쳤다고 했다. 구청 지원이 된단다.

그 다음엔 길냥이들이 와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해야 한단다. 길냥이 엄마들은 이걸 '밥자리'라고 불렀다. 말에서 느껴지는 질감이 따뜻했다.

첫 번째 밥자리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 잔디가 우거져 있었는데, 더 자라지 못하도록 아예 비닐을 덮어놓았단다. 무슨 뜻인고 짐작하니, "고양이들을 챙기러 자주 가겠다"는 의미였다. 가는 길이 늘상 불편하면 안 되니까. 그런 것 하나에도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B씨는 길목에 놓인 물그릇을 "뭐가 이렇게 묻었어"하고 혼잣말을 하며 빗물에 시원스레 씻어냈다. 그걸 본 A씨가 "내일도 비가 많이 온다"며 닦을 필요가 없다고 나무랐다.

사료를 그릇에 채워주는 길냥이 엄마들./사진=남형도 기자사료를 그릇에 채워주는 길냥이 엄마들./사진=남형도 기자
재건축 단지 펜스 앞쪽, 수풀 속 널따란 공간에 밥자리가 있었다. 군데군데 길냥이들 밥그릇과 물그릇이 놓여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길냥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길냥이 엄마들은 분주히 가방에서 사료통을 꺼내, 빈 그릇을 인심 좋게 채웠다. 그러면서 "이렇게 두면 필요할 때마다 애들이 와서 먹는다"고 했다. A씨가 사료 그릇을 테이블 밑으로 내려놓았다. 길냥이들이 먹기도 전에 사료가 비에 젖지 않도록. 두 손이 모자란 그가, 비를 맞지 않게 우산을 씌워주는 게 내 몫이었다. 아직은 뭘 해야 할지 더 파악해야 했다.

사람이 밥과 물을 삼시세끼 챙겨 먹듯, 길냥이들 밥자리도 늘상 돌봐야 한다고. 일주일에 네 번은 와야 한단다. 9명 중 할머니 한 분 빼고는 모두 직장인이다. 퇴근한 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이들을 기다리는 길냥이에게로 오는 것이다. 보통 오후 3시부터 시작해 늦을 땐 밤 10시까지 할 때도 있단다. 그래서 밥과 물을 챙겨주고, 아이들이 다 잘 있는지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공유한다. 어지간한 정성으론 할 수 없는 일이란 짐작이 갔다.

길냥이와 첫 만남, "맘마먹자"
풀숲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노란 길냥이.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사진=남형도 기자풀숲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노란 길냥이.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사진=남형도 기자
밥자리를 다니다 보니, 우비가 벗겨지고 찢어지는 것도 몰랐다. 비에 서서히 젖어갈 때쯤, 나처럼 비에 흠뻑 젖은 길냥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반가울 거라 여겼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비가 오면 알아서 피할 줄만 알았지, 이렇게 맞고 다닐 줄은 또 몰랐다.

대여섯 걸음쯤 떨어진 풀숩에서 '냐옹냐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딨는지 모습은 안 보이고, 소리만 들렸다. 길냥이들이었다. 두 마리쯤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녀석들은 떼를 쓰듯이 계속해서 '야옹야옹' 소리를 냈다. A씨에게 고양이들이 왜 그러냐 묻자 "오라고 부르는 것"이라며 "뭐 좀 달라고 부르는 것"이라 답했다. 그는 그런 아이들에게 "샤샤야, 나리야. 맘마 먹자"고 어르고 달랬다. 문득 어렸을 때 부엌에서 엄마가 "밥 먹어라"하고 부르던 생각이 났다. 길냥이들은 살금살금 경계하며 다가왔다. 낯선 사람(나)이 있어 그렇단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하양이가 먼저 나왔다. 이미 비를 잔뜩 맞은 채였다. 테이블 밑으로 온 녀석은 간식을 담은 그릇 앞에 오더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불편할까 싶어 한 발자국 떨어져 그 모습을 바라봤다. 길냥이 엄마들도 그걸 대견스레 보다가 "고양이들도 비 맞는 걸 싫어하는데, 그래도 나온 녀석들은 먹성이 좋은 아이들"이라고 웃었다. 화창한 날엔, 바깥에 더 많이 나온단다. 널브러져 누워 있단다. 재건축 전엔 시크하게 굴었던 길냥이들도 이젠 사람을 그리워한단다. 오래 못 봐서 그렇다고 했다.

더 우거진 풀숲에선 노오란 길냥이가 나왔다. 그래서 '노랑이'란다. 특성 따라 지은 거라서 여기 노랑이, 저기 노랑이가 다 따로 있다. 이 녀석은 밥자리까지 다가오진 않았다. "노랑이 왔구나"라며 반긴 길냥이 엄마들이 참치캔 하나를 더 꺼내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노랑이가 편히 먹을 수 있도록, 풀숲 안쪽에 그걸 놓아줬다. 녀석은 그릇에 코를 박고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등이 빠르게 들썩이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배가 많이 고팠다는 것이.

비를 맞으면서도 사료를 먹으러 나온 길냥이는 식욕이 무척 좋은 거라고 했다. 아플 때도 삼시세끼 식욕이 좋은 기자와 비슷한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비를 맞으면서도 사료를 먹으러 나온 길냥이는 식욕이 무척 좋은 거라고 했다. 아플 때도 삼시세끼 식욕이 좋은 기자와 비슷한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동산에 있는 또 다른 밥자리에선, 눈빛이 따뜻한 회색 길냥이를 만났다. 녀석은 밥을 다 먹고도, 자릴 떠나지 않았다. 인근 나무 위에 올라가더니, 물끄러미 날 바라봤다. 그러자 A씨가 "야, 빨리 집에 가. 비 오는데 왜 안 가고 있어"라고 했다. 겉으로 드러난 건 핀잔이고, 사실은 걱정이었다.

12차선을 건너온, 아기 길냥이
뚱뚱한 갈색 길냥이는 갈 곳 없는 새끼 길냥이들을 잘 키워주는 좋은 녀석이다./사진=남형도 기자뚱뚱한 갈색 길냥이는 갈 곳 없는 새끼 길냥이들을 잘 키워주는 좋은 녀석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밥자리가 필요한 건 재건축 단지 내에 있던 길냥이들 뿐만이 아녔다. 다른 동네에서 오는 고양이도 있고, 오가며 만나는 유기견들도 있었다. 이 녀석들도 함께 품어 돌본다고 했다.

한 재건축 단지 펜스 옆 밥자리엔, 뚱뚱한 갈색 길냥이가 있었다. 밥그릇을 놓아주니, 펜스 아래 구멍으로 넘어와 밥을 먹었다. 뱃살이 포동포동 오른 게,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밥도 아주 맛나게 먹었다. 살짝 배가 고파졌다. 그걸 보던 A씨가 "요 커다란 녀석(갈색 뚱뚱이)이 아기 길냥이들을 돌본다"고 했다. 암컷이냐 물었더니 수컷이라고.

사연은 이랬다. 재건축 단지 건너편에 또 다른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밥자리를 찾아 엄마 길냥이 한 마리와 아기 길냥이 두 마리가 넘어왔단다. 단지와 단지 사이에 12차선 도로가 있는데, 생존을 걸고 기어코 건너왔단다. 어미는 아기들을 그 자리에 놔두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A씨는 "독립할 때가 된 어미가 밥자리가 여기 있으니, 살라고 두고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길냥이 엄마들이 카메라를 설치했지만, 엄마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작은 녀석들을 갈색 뚱뚱이가 돌보기 시작했단다. 자기가 먹을 것도 양보해가면서. 그건 정말 사랑하는 이에게만 할 수 있는 일이다(적어도 내 기준에선). A씨는 "새끼를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녀석"이라고 기특해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아기 길냥이들에겐 보름이, 여름이란 예쁜 이름도 생겼다. 그래도 자그마한 녀석들은 저리 두면 안 된다고 했다. 잡아서 좋은 주인 만날 수 있도록 입양도 보내고 해야 한다고.

길냥이 뿐 아니라 밥자리를 오가며 누렁이도 함께 돌본단다. 뜬장에 있다 비로소 살게된 누렁이./사진=남형도 기자길냥이 뿐 아니라 밥자리를 오가며 누렁이도 함께 돌본단다. 뜬장에 있다 비로소 살게된 누렁이./사진=남형도 기자
밥자리를 돌보느라 오가는 길에 만난 누렁이도 만났다. 날 보자마자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빗물에 젖은 이마를 가만히 어루만져 주며 "그렇게 좋아?"하고 인사를 했다. 그릇에 사료를 채워 내려놓으니, 부리나케 허기를 채웠다. 이 녀석은 뜬장(밑면에 구멍이 뚫려있는 철창)에서 8~9년씩 살던 걸 구조했단다. 병원 검진을 해보니 이미 자궁축농증과 심장사상충이 있었다. 다행히 치료했다. 좁다란 공간서 살던 녀석은, 이젠 집도 생겼다. B씨는 "우리가 드나들 때까지만 살아"라며 혼잣말을 했다.

혹독한 '겨울'이 온다
길냥이들의 혹독한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마련한 겨울집. 그래두 춥겠지만, 얼어죽진 말라는 마음이다./사진=남형도 기자길냥이들의 혹독한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마련한 겨울집. 그래두 춥겠지만, 얼어죽진 말라는 마음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다시 차로 이동했다가, 또 다른 밥자리로 갔다. B씨 손에 뭔가가 들렸기에, 뭐냐고 물었더니 '길냥이들 겨울집'이라 했다. 마음이 벌써 분주하단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스티로폼에 보온재를 넣고 만들었다. 앞쪽엔 길냥이들이 드나들 수 있게 작은 구멍을 뚫었다. B씨는 "100% 추위를 피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얼어 죽지 않을 정도는 된다"고 했다. 겨울집은 밥자리 옆 곳곳에 놓였다. 길냥이들이 거기에 쏙 들어가 있는 모습이 상상됐다.

길냥이들에게 가장 혹독한 계절이 다가온단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모두 얼어붙는 겨울이다. 생존식량인 음식물 쓰레기마저 꽁꽁 언다. 먹고 마시는 건 길냥이 엄마들이 챙겨준다 해도, 추위를 피할 집은 어떻게 할지. A씨는 "가을이 되니 아침저녁으로 벌써 꽤 선선해졌다"며 녀석들 걱정부터 했다.

모두가 떠난 곳에서도 누군가는 길 위의 작은 생명을 돌봤다. 그렇게 길냥이들은 살아갈 수 있었다. 콘크리트가 무너진 폐허 속에서 그리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될 줄 몰랐다./사진=남형도 기자모두가 떠난 곳에서도 누군가는 길 위의 작은 생명을 돌봤다. 그렇게 길냥이들은 살아갈 수 있었다. 콘크리트가 무너진 폐허 속에서 그리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될 줄 몰랐다./사진=남형도 기자
재건축 단지의 겨울은 더 차갑다. 길냥이들은 그나마 아파트 지하로 피해 추위를 달랬는데, 이젠 상가 건물을 제외하고는 다 무너져버렸다. 폐허로 변한 단지 내엔, 콘크리트 조각과 유리 조각, 철골 등만이 굴러다니게 됐다. 냉골이다. 길냥이들의 체온을 기대기엔, 영하 10도가 넘는 칼바람을 피하기엔 역부족이다. 나이 든 녀석들은 가지고 있던 병이 나빠져 아프고, 밥자리까지 나왔다가 죽기도 한단다.

그러다 보니 길냥이들은 서로 붙어서 온기를 나누기도 하고, 자동차 아래 들어가기도 한단다. 체구가 작은 아기 길냥이들은 자동차 보닛(차량 앞쪽 엔진룸이나 뒤쪽 트렁크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덮개)에 들어가 남은 열기에 몸을 녹이기도 한다. 이를 못 본 운전자들이 출발했다간 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보닛을 노크하거나, 경적을 울리거나, 차량을 앞뒤로 10cm 정도만 움직여도 빠져나온단다. 생명을 살리는 일엔 귀찮음이 없으리라 믿으면서.

비가 그치고, 젖은 몸을 어루만졌다
그치지 않을 것 같았던 비가 그치자 길냥이들이 하나 둘씩 걸어나왔다. 그리고 해가 비쳤다. 너희들 삶도 그러하길./사진=남형도 기자그치지 않을 것 같았던 비가 그치자 길냥이들이 하나 둘씩 걸어나왔다. 그리고 해가 비쳤다. 너희들 삶도 그러하길./사진=남형도 기자
야속했던 빗줄기도 가늘어졌다. 어느새 저녁 6시30분, 해가 짧아졌는지 벌써 지평선이 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제법 시원해진 바람에 땀을 식히며 걸었다. 몸은 축축해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고양이처럼 가벼웠다.

다니며 물그릇을 채우는 사이, 길냥이 엄마들이 가져온, 2리터짜리 생수 8통이 모두 동이 났다. 그 전엔 중간에 물 구하기가 곤란했는데, 다행히 인근에 지하철역 하나가 생겨 좋단다. 밑으로 내려가 화장실에 들르고, 생수통에 물을 다시 가득 채웠다. A씨는 "겨울엔 날이 추워서 따뜻한 물이 필수인데, 그 또한 챙길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길냥이 아빠들이 밥자리 언저리에 만들어 놓은 창고에, 일주일에 한 번씩 생수통을 한꺼번에 올려놓기도 한단다.

그리고 이제 밥자리 두 개만 남겨뒀다. 단지와 단지 사이에 있는 널따란 밥자리부터 갔다.

비는 완전히 그쳐 길냥이들이 바깥에 제법 나와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대여섯 마리쯤 됐다. 그날 본 녀석들 중 가장 많았다. 반가웠다. "나까무라야!" A씨가 얼룩덜룩한 길냥이 한 마리를 보며 반가운 비명을 질렀다. 이름이 왜 나까무라냐 물었더니, "원래 이름은 점순이였는데, 왠지 나까무라처럼 생겨서 그렇게 바꿨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 녀석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밥을 먹고, 단짝인 오렌지의 꼬리를 갖고 노는 해리. 그들에겐 모처럼 평화로운 저녁이다, 아마도./사진=남형도 기자밥을 먹고, 단짝인 오렌지의 꼬리를 갖고 노는 해리. 그들에겐 모처럼 평화로운 저녁이다, 아마도./사진=남형도 기자
"오렌지야, 오카야, 회오리야, 앵돌아." 연달아 부르는 소리에 곳곳에서 녀석들이 튀어나왔다. 몇몇은 소방차 밑에서, 몇몇은 재건축 단지 안에서. 저마다 비를 피하던 녀석들은, 누군가 자길 찾으며, 저녁 먹으라 부르는 소리가 좋은지 천천히 다가왔다. '화'라는 이름의 하얗고 까만 고양이는 내 다리 옆에 가만히 몸을 부볐다. 그걸 본 A씨가 "아우 이 X끼, 다 젖었네, 응? 닦자"며 수건으로 몸을 보송보송하게 어루만졌다.

등에 동그란 무늬가 있는 회오리는 느긋하게 사료를 먹고, 산에서 산다는 '잘생긴 고등어'는 작은 몸짓에도 흠칫 놀라 피하면서도, 다시 다가와 간식을 먹었다. 까만 오렌지는 기분이 좋은지 꼬릴 흔들었고, 단짝인 해리는 뒤에서 그 꼬릴 붙잡으며 놀았다. 밥을 다 먹은 나까무라는 빗물에 앞발을 찍어 물을 홀짝거리며 마시고, 길냥이 엄마들은 유리에 다친 녀석 약을 먹이겠다며 분주히 약봉지를 뒤졌다.

우린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단지 시야가 좁아서 보이지 않았을 뿐. 눈을 크게 뜨면 찾을 수 있다. 이 사진 속에도 길냥이가 있다./사진=남형도 기자우린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단지 시야가 좁아서 보이지 않았을 뿐. 눈을 크게 뜨면 찾을 수 있다. 이 사진 속에도 길냥이가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 광경을 멀리서 한눈에 보는데, 뒤편으론 노을이 예쁘게 졌다. 따뜻한 잔상이 눈길에 물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냥 쉽게 외면할 수도, 귀찮아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걸 기꺼이 감수하고 돌본 이들 덕분에, 이 많은 길냥이들이 폐허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었다. 그게 조금 고단할지언정 생명이 꺼지지 않도록 했다. 그런 생각으로 천천히 바라봤다. 어느 여행지에서 본 절경보다도, 이 한 폭의 그림이 더 아름다웠다. 정말 그랬다.

'길냥이 엄마'가 된다는 것
길냥이 엄마가 된다는 건 "평생 이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길냥이 엄마가 된다는 건 "평생 이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길 끝에 있는, 마지막 밥자리로 향할 무렵엔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어둑어둑한 탓에 스마트폰 손전등을 켜고 다녀야 했다. 해가 짧아진 탓에 요즘엔 동산에 있는, 인적이 드문 밥자리부터 간단다. 그래야 덜 무섭다며. 그러면서도 A씨는 "혼자 밤길을 가면 무섭다가도, 막상 가서 고양이들이 나와 있는 걸 보면 두렵지 않다"고 했다.

아마도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 앞에서, 단단해지는 책임감 같은 것일까. 그런 것 같았다. 길냥이 엄마가 된다는 건.

B씨는 허리가 아프다며, 몇 번씩 부여잡고 통증을 참으며 걸었다. 그는 "남편과 애들이 이렇게까지 돌보는 줄은 모를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밥자리에 도착해선 곰팡이에 걸린 녀석들에게 약을 준다며, 허리를 몇 번이고 숙였다.

아픔을 까먹고 더 연약한 아픔을 챙겨주는 것, 그게 이들이 길 위의 존재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녹록지 않다고 했다. 힘겨운 일이었다. 돕지는 못할망정, 누군가는 아이들이 살아야 할 밥자리에 쥐약을 놓는다. 상상만으로 몸서리가 쳐졌다. 밥을 준다고 뭐라 하고, 눈치를 줘서 죄지은 사람처럼 다닌 적도 많았다. 길냥이들 밥자리를 재건축 단지서 안전한 곳으로 옮기겠다며, 한여름 땡볕에 동분서주했다. 밥자리를 옮기는 와중에, 재건축 단지서 계속 밥을 주는 한 길냥이 아빠 때문에, 옮겼다 돌아갔다를 몇 번씩 반복하기도 했다.

불빛을 비추며 마지막 밥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길냥이 엄마들./사진=남형도 기자불빛을 비추며 마지막 밥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길냥이 엄마들./사진=남형도 기자
허탈하고, 때론 화가 나도 포기하면 안 되는,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재건축 단지를 더는 왔다 갔다 하지 못하도록, 높다란 철제 펜스가 들어서도 말이다. 펜스 사이에 난 작은 틈을 최대한 벌려서, 몸을 끼워 넣어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단다. 비가 올 땐 첨벙첨벙 젖은 채로 기어서 들어가기도 한단다. 거기에 길냥이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직접 해보니 몸을 최대한 웅크리거나 낮추고, 조심조심 들어가야 했다. 그 모습이 마치 고양이 같다 여겼다. 고양이를 돌본다는 건, 고양이 같은 모습을 하는 거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내염' 앞에선 길냥이 엄마들도…
구내염에 걸린 고양이.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하다고 한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구내염에 걸린 고양이.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하다고 한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그런 길냥이 엄마들도 감당하기 힘든 게 있단다. 아픈 길냥이들, 그중에서도 '구내염'에 걸린 아이들이다.

어떤 질병인지 궁금해, 목동 필동물병원을 통해 설명을 들었다. 얼핏 보면 대수롭잖게 여길 수 있겠으나, 생명까지 앗아가는 무서운 병이란다. '칼리시'라는 바이러스가 주요 원인인데, 일단 걸리면 입안이 다 헐어버린다. 그러니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 엄청나게 아파서 잘 먹지도 못하고, 심하면 입안에 빨간 종양이 자라나 피까지 흘린단다.

그러니 결국 굶주리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몸을 핥지도 못하니 좋아하는 꽃단장도 못한다. 다니는 곳마다 정글인데, 무기인 이빨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죽어간단다. 그것도 극심한 통증을 5년 이상 견디면서, 서서히 도태되고 말라간다고 했다. 잔인한 질병이었다. 길냥이들은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쉽고, 칫솔질도 못하니 집고양이보다 구내염에 더 걸리기 쉽단다. 한 마리가 걸리면, 다른 고양이에게 감염되기 쉬운 것도 문제다.

치료비도 비싸다. 치료하려면 염증에 걸린 치아를 뽑아야 하는데, 고양이들 치아 뿌리가 가늘어 하나씩 뽑는 게 쉽지 않다고. 그래서 한 마리당 평균 15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 치료비가 든다. 치아를 뽑는다고 다 치료되는 것도 아니다. 70% 정도는 완치되지만, 30%는 그렇게 해도 효과를 볼 수 없단다.

길냥이 엄마들은 애간장이 탄다. 비용은 쉬이 감당하기 힘들고, 보고 있자니 침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는 탓에 맘이 아파서다. 그래서 약이라도 지어다가 길냥이들에게 먹여보지만, 일시적인 고통을 줄여줄 뿐 근본적인 치료가 안 된다.

그래서 유기견을 구조하는 '팅커벨프로젝트'와 '동네고양이 서울연대'서 최근 길고양이 구내염 치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7마리에 대한 치료를 시작했는데, 비용이 1000만원이 넘는다고. 그런데 모금은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황동열 대표는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진 모르지만, 길 위의 고단한 삶을 사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힘이 되겠다"고 했다.

길냥이가 아닌 '동네 고양이', 함께 사는 삶이길
동네를 배회하는 길냥이가 이제야 눈에 띄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동네를 배회하는 길냥이가 이제야 눈에 띄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 돼서야 체험을 마쳤다. 녀석들 밥을 챙기느라 끼니도 잊었다. 사방이 고요해지자 녀석들은 맘이 더 편안한지, 사뿐사뿐 돌아다녔다. 몇몇 길냥이들이 뒤늦게 나타난 덕분에, 사료와 간식을 몇 차례씩 다시 꺼내곤 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라"하고 홀로 조용히 작별인사를 하자, 하얀 길냥이 한 마리가 옆에 다가와 가만히 앉았다. 아직 비에 젖은 머리를 가만히 쓸어내렸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익숙한 동네에 들어섰다. 그리고 길냥이들 눈높이로 길을 걸어봤다. 곳곳이 따뜻하고 정겨운 줄 알았는데, 어쩐지 걸음마다 텅 빈 느낌이었다. 당연히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었다. 가끔 스치며 봤었던, 얼룩 길냥이, 까만 길냥이, 갈색 길냥이 생각이 났다. '내가 편히 다녔던 이 길은, 네겐 많이 고단한 길이었겠구나' 싶었다. 여름엔 많이 더웠겠구나, 겨울엔 많이 추웠겠구나, 비 올 땐 머물 곳이 마땅찮았겠구나 했다. 매일매일 생존이 사투였겠구나 싶었다. 산 지 그리 오래됐건만, 이제야 그런 게 보였다.

길냥이 아빠로 하루를 보내며,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고양이들은 영역 동물이라, 자기가 사는 자리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상당히 강하다고 했다. 그래서 재건축 단지 길냥이를 옮길 때도, 잘 모르는 이들은 "그냥 잡아다 옮기면 되지 않냐" 쉽게 말하는데, 그게 아니라고. 무려 30km를 하루 내내 걸어서라도 자기 집으로 돌아간단다.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곳으로, 그리고 밥자리로, 그렇게 어떻게서든 간다고 했다.

그러니 단지 떠도는 게 아니라, 녀석들은 '자기 동네'에서 살아가는 거라고. 길 위에서 태어나 다시 길 위에서 그 삶이 마른 꽃잎처럼 스러지더라도. 굶주리고 위험하고 그 삶이 많이 고단할지라도. 여기서 태어나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먹이를 구하러 멀리 갔다가도 다시 자기 동네로 돌아온다고. 우리가 출근했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것처럼. 그런 녀석들을 한때는 '도둑고양이'라 비하했었고, 지금은 '길고양이'라 부른다. 멀리 어디선가 살아가는 것처럼.

그런데 생각해보니 앞으론 이렇게 불러야 할 것 같다. '동네 고양이'라고. 왜냐면 이 녀석들은 우리 동네에서, 매일매일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 우리 눈에 띄지 않는 순간에도 말이다. 그런 맘으로 약간의 마음이라도 내어서, 시선을 보내주면 어떨지. 같이 살잔 맘으로 돌봐주면 어떨지.

날씨가 벌써 선선해지고 있다. 추운 겨울이 온다. 당신의 동네 고양이는, 지금 어느 구석을, 어느 험한 곳을 헤매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자주 오갔던 곳에 너도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내가 자주 오갔던 곳에 너도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가을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지던 어느 날 밤이었다. 운동한 뒤 허기가 져서 동네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초코바 하나와 과자 하나를 샀다. 잠자기 전에 배고픔을 급히 달랠 요량이었다.

유리문을 열고 바깥에 나왔다. 우산을 펼치는 순간 동네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는 까맣고, 입은 하얗고, 등은 밤색인 녀석이었다. 비를 많이 맞았는지, 온몸이 젖어있었다. 녀석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쪼그려 앉더니, 물끄러미 날 바라봤다.

편의점 안에 다시 들어갔다. 길냥이 간식 하나를 샀다. 바깥에 나와 동네 고양이 앞에 사뿐히 내려놓았다. 편히 먹을 수 있도록, 출입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놨다. 맛있게 먹는 모습에 비 맞는 것도 잠시 잊었다.

내가 자주 다녔던 곳에 너도 늘 있었다는 것. 내가 배고픈 것처럼 너도 배고팠을 거란 것. 넌 내가 무서워서, 난 네게 무심해서 그저 잘 몰랐을 뿐이었단 걸.

비가 퍼부은 덕에 어렵게 마주친 뒤에야, 새삼 깨달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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