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5년' MS 부활의 비결

머니투데이 홍재의 기자, 배소진 기자 2019.09.06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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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즈 BTS(Biz & Tech Story)]
2000년대 쇄락했던 MS, 1위 IT업체로 부활
사티야 나델라 "조직문화가 문제다"
상대평가 없애고, 평가통보 대신 상호 소통
회의문화에도 3가지 원칙 제시

'잃어버린 15년' MS 부활의 비결


IT시장에서 내리막길만 남은 것 같았던 MS(마이크로소프트)가 완벽하게 부활했다. 지난 8월 30일 MS종가는 137.86달러(약 16만7000원). 지난해 마지막날 종가(101.57달러) 대비 35.7%나 올랐다.

MS의 부활은 2014년 사티아 나델라가 CEO로 취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취임 후 5년간 주가는 265% 상승했고, 지난해 말 기점으로 미국 시가총액 1위에 복귀했다.



만약 그에게 어떻게 5년 만에 MS를 재창조했는지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미국 경제매체 쿼츠는 나델라가 결코 '링크드인'과 '깃허브'를 인수한 경영진의 판단력 혹은 클라우드 컴퓨팅에 집중한 경영진의 전략 능력을 1순위로 꼽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MS 재건의 핵심은 외부 업체와의 경쟁이나 사업전략이 아닌 13만명의 직원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만드는 '사내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다.



'잃어버린 15년' MS 부활의 비결
◇야만적이었던 내부 평가 제도

윈도우와 익스플로러로 공고한 성을 쌓았던 MS는 2000년대 들어 모바일 혁명과 함께 추락했다. 모바일 시장에서 윈도우는 안드로이드와 iOS에 밀렸고, 클라우드 중심으로 재편되던 IT시장 트렌드도 따라가지 못했다. 빌 게이츠 이후 스티브 발머가 CEO로 재직하던 2000~2014년은 MS에 잃어버린 15년이었다.

스티브 발머 시절의 MS는 사내정치와 관료주의적인 조직문화가 문제라는 지적을 받았다. MS부사장까지 역임한 딕 브레스가 "MS는 기득권 조직이 창조적 인재를 등지고 그들의 노력을 하찮게 만들어 쫓아내 버린다"며 뉴욕타임스에 기고할 정도였다.


노후한 조직문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스택랭킹'(stack ranking)이라고 하는 평가 시스템이었다. GE의 잭 웰치가 1980년대 고안한 시스템인데 직원들을 정해진 비율에 따라 '최고' '양호' '평균' '빈약' 등급으로 줄세우고 고성과자에게는 포상을, 저성과자는 해고하는 방식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내부조직 문화를 꼬집은 삽화/사진=flickr마이크로소프트의 내부조직 문화를 꼬집은 삽화/사진=flickr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팀이 똘똘 뭉쳐 성과를 내도 누군가는 최하위 순위가 돼야 했다. 자신의 등급이 떨어질까 우려해 뛰어난 엔지니어일수록 공동 작업을 기피했다. 2012년 미국 월간지 '배니티 페어'(Vanity Fair)는 이런 MS의 문화를 비판했는데 '재능 있는 젊은 직원들은 나태한 관료주의 직원으로 변해갔고 직원들은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동료가 실패했기 때문에 보상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익명의 전직 MS 엔지니어는 "내가 MS에서 배운 것은 동료들이 내 등급을 앞지르지 못할 만큼의 정보만 제공하면서도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는 것처럼 예의바르게 보이는 방법이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연간 성과목표를 설정하고 각 직원별 연초 목표가 얼마나 달성됐는지를 평가하는 스택랭킹 시스템은 짧은 주기의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실험해야하는 기술발전의 시대와 맞지 않았다.

직원을 평가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낭비된다는 것도 문제였다. HR 컨설팅회사 CEB 조사에 따르면 관리자들이 평가에 들이는 시간은 연간 210시간(5주)에 달했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사진=MS사티아 나델라 MS CEO/사진=MS
◇상대평가 대신 '자율평가', 개인성과보다 '팀워크'

사티아 나델라는 2014년 CEO로 취임하면서 평가시스템을 싹 뜯어고쳤다. 상대평가의 스택랭킹을 폐지하고 절대평가로 바꿨다. 평가에 따른 보상도 관리자에게 맡겼다. 팀원이 모두 뛰어났다면 보상을 똑같이 분배할 수 있다.

평가의 중요 요소에 '동료와의 관계'도 포함시켰다. 직원들은 자신의 성과를 얘기할 때 '팀원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동료의 업무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말해야 한다. 협업을 독려하기 위해 2014년부터 매년 사내 해커톤도 열고 있다.

리더가 팀원들에게 평가를 통보하는 방식도 뜯어고쳤다. 팀 리더와 팀원이 1년에 최소 3~4회 만나 상담을 하는데, 업무의 우선순위와 목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과거 설정했던 목표에 대해서는 리더가 결과 평가를 하는 게 아니라 업무가 잘 수행되고 있는지,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피드백 해주는 방식으로 바꿨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대표/사진=MS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대표/사진=MS
나델라는 기회 있을 때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관리자에게 말하라. 그의 조언이 불만족스럽다면 다른 관리자를 찾으라"고 말하며 상호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델라 자신도 최고 평가자로서 변화를 예고했는데, 단기성과에 집착하지 않도록 숫자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성공지표라 믿으며 MS가 질질 끌려왔던 매출, 이익과 같은 단어를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다"며 "이제 성공의 지표는 고객들의 사랑(Customer love)이다.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사랑한다면 나머지는 따라온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는 직원들 사이 피드백을 독려하기 위해 '피드백'이라는 단어 사용 자체를 금지했다. 이 단어가 오히려 평가와 관련된 것 같은 부정적 인식을 주기 때문이다. 대신 '관점'(Perspectives)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관리자가 직원들의 평가를 수집해 당사자에게 전달해주는 방식이었다면 관점 시스템에서는 직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이 결과를 관리자와 공유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직원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덜 공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평가가 아니라 코칭으로 인식하게 됐다.

사진=MS사진=MS
◇회의에 낭비되는 시간마저 잡아라

"내가 회의를 하자고 하면 적어도 5개의 보고서가 내 앞에 놓인다. 그 보고서가 작성되는 단계를 생각해보라. 실무자가 만들고, 선임자가 검토한다. 때론 이런 과정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기하학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나델라는 스테판 더브너 팟캐스트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꼭 필요하지 않은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MS의 관료주의적인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회의 주제를 분명히하고, 회의를 위한 사전 회의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회의를 준비하는데 쓸데없이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라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회의 자체를 줄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부서 간 협업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회의 수가 적지는 않은지 회의 빈도 등을 모니터링하기도 했다.

나델라는 "상품이 잘 설계되려면 영업과 엔지니어 부서의 협업이 중요하다. 그런데 둘 사이 회의가 거의 열리지 않는다면 상호 피드백 사이클이 깨졌다는 뜻"이라며 "리더는 어느 곳과 어느 곳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하는지, 얼마나 자주 만나야 좋은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회의가 효율적으로 진행되려면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었는데, 그는 리더가 지켜야 하는 회의의 법칙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사진=MS사티아 나델라 MS CEO/사진=MS
더 듣고(Listen more), 적게 말하고(Talk less), 때가 되면 결단력 있게 결정하라(Be decisive when the time comes)는 것.

리더가 경청하지 않으면 팀원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없다. 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나델라는 종종 예고 없이 아무 사무실에 들어가 팀원들의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델라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가끔씩 예고 없이 찾아가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그 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나면 리더는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소통이 된다는 의미다.

3가지 법칙 중 가장 중요한 항목은 바로 마지막, 결단력 있게 결정하라는 부분이다. 리더는 더 듣고 더 적게 말하되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릴 때는 그에 대한 결과를 리더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 리더가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그동안의 소통도 결국 의미 없는 일이 된다.

나델라는 취임 이후 중간 관리자 수를 과감하게 줄였다. 대신 신속한 제품 출시를 위해 검수 인력을 줄이는 대신 데이터과학자와 디자이너를 엔지니어 팀에 보강해 더 빠르고 정확한 테스트가 이뤄지도록 했다. 조직 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청해 결단을 내린 좋은 예였다.

나델라는 "대부분 조직은 판매 데이터를 다양한 각도로 수집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그런 데이터를 얻기 위해 쏟아 붓는 노력을 조직원들의 시간 관리에 투자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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