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 재등장-13만명 인간띠 시위…긴장감 커지는 홍콩

머니투데이 홍콩=이태성 기자, 유희석 기자 2019.08.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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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시위 10여일만에 다시 시위대·경찰 물리적 충돌…현지인 "시위대 요구 들어주기 쉽지 않다"

【홍콩=AP/뉴시스】24일(현지시간) 홍콩 거리에서 시위대가 시위 중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시위대는 쿤통 등지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했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며 진압을 시도했다.  홍콩 중고생들은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2주 동안 수업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2019.08.24.【홍콩=AP/뉴시스】24일(현지시간) 홍콩 거리에서 시위대가 시위 중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시위대는 쿤통 등지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했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며 진압을 시도했다. 홍콩 중고생들은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2주 동안 수업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2019.08.24.


홍콩 경찰이 10여 일 만에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하며 비폭력 국면으로 전환됐던 시위가 다시 변곡점을 맞았다. '시위대 여성이 경찰에서 알몸으로 조사를 받았다' '베이징행 비행기 안에서 홍콩인이 체포됐다'는 등의 소식마저 연이어 들려오면서 양측의 긴장이 커지는 모양새다.

시위대는 요구사항을 관철할 때까지 장기전을 생각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 사항 중 무엇하나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12주째 이어지는 시위는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갈등을 키우며 공전하고 있다.



24일 홍콩 쿤퉁 지역에서 시위대가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이태성24일 홍콩 쿤퉁 지역에서 시위대가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이태성
◇다시 시작된 무력 충돌, 커지는 불안감=지난 24일 정오부터 정부는 쿤퉁 지역의 시위가 시작되기에 앞서 시위대가 모이기로 한 주변의 지하철역 4곳의 지하철 운행을 중단시켰다. 시위대가 지나치게 많이 모일 것을 우려한 선제 조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에도 이날 시위대의 행진이 시작되기로 한 작은 공원에는 정오를 조금 지난 시점부터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위 시작 시점인 오후 1시에는 이미 수천 명이 모인 상태였다.



시위대는 곧 거리를 따라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홍콩 힘내라' '5대 요구 사항을 들어달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범죄인 인도 협약'(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시행 등이다. 행진은 통제된 도로 안에서 평화롭게 이뤄졌다.

시위대 안에는 5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도 있었고, 70이 넘어 보이는 노인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행진 인파 속에서 만난 룽씨(Leung)는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평화로운 방법으로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 시간 뒤 아우타우콕(牛頭角) 경찰서 바깥에서 상황은 돌변했다. 홍콩 현지 경찰에 따르면 시위에 참석한 사람 중 일부 과격파들이 경찰에 2개의 화염병을 던졌고, 경찰은 이에 대응해 곧바로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포했다. 지난 12~13일 시위대가 공항을 점거하며 대규모 충돌이 벌어진 이후 10여 일 만에 다시 최루탄이 시위대를 향했다.


23일 홍콩 차터가든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태성23일 홍콩 차터가든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태성
23일까지만 해도 홍콩 시위대는 평화로운 방법을 고수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해왔다. 강경한 방법을 사용했을 때 중국이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3일 낮 현지에서는 대형 쇼핑몰에서 재계를 압박하기 위한 불매운동과 회계사와 기독교계의 평화 집회가 있었고, 저녁에는 '홍콩의 길'이 이어졌다. 이는 홍콩 내 3개 지하철 노선을 잇는 인간 띠를 만드는 것이었다.

지난 1989년 8월 23일 당시 소련 입법 공화국이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 발트해 주민 200만명이 전 세계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열망을 국제사회에 보여주고자 발트 3국을 가로지르는 총연장 680㎞의 인간 띠를 만들었던 것에서 착안했다.

【홍콩=AP/뉴시스】23일(현지시간) 홍콩 거리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손을 잡고 한 줄로 서서 인간 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대는 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의 국민이 손을 맞잡고 670km에 이르는 ‘발트의 길’을 만들어 소련에 저항한 역사적 사건에 영감을 받아 시내와 항구 등에서 60km에 달하는 인간 띠를 형성해 이른바 '홍콩의 길' 시위를 벌였다. 2019.08.24.【홍콩=AP/뉴시스】23일(현지시간) 홍콩 거리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손을 잡고 한 줄로 서서 인간 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대는 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의 국민이 손을 맞잡고 670km에 이르는 ‘발트의 길’을 만들어 소련에 저항한 역사적 사건에 영감을 받아 시내와 항구 등에서 60km에 달하는 인간 띠를 형성해 이른바 '홍콩의 길' 시위를 벌였다. 2019.08.24.
시민들은 오후 7시부터 센트럴, 완차이 등에 모여 인간 띠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최 측이 발표한 바로는 총 13만5000명이 이 인간 띠 만들기에 동참했다. 길이도 기존 계획인 45km에서 60km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교통 불편을 일으키거나 경찰과 충돌하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일부 시위대가 지하철에 낙서했다는 등의 가벼운 소식만이 들려왔다.

시위대는 각자의 자리에서 '홍콩을 해방하라' '5대 요구사항을 들어달라'는 구호를 외쳤고, 최대한 행인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나의 중국'을 요구하는 친중 시위대가 차를 타고 인간 띠 앞을 지나가며 "중국 만세"를 외쳤을 때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오후 9시 일제히 해산했다. 한 시간 뒤 거리는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흔적이 없었다.

◇단호한 시위대, 해결할 수 없는 정부=시위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정부가 5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위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밤 인간 띠 만들기에 참여하던 스티브씨(가명·20)는 "모든 책임은 홍콩 정부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는 홍콩을 지키기 위해 모였다"며 "항상 불안한 홍콩이 아닌 안전한 홍콩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옆자리를 지키던 여성도 "벌써 많은 시간 동안 홍콩 시민이 하나가 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정부에서 응답이 없으면 이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모를 따라나온 10살 내외로 보이는 아이마저도 '5대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구호를 먼저 외치는 상황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를 들어주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홍콩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한 한국인은 익명을 조건으로 "5대 요구사항 중 경찰에 관한 조사를 제외하면 홍콩 정부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인다"며 "중국 눈치를 봐야 하는 홍콩 정부가 과연 이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있겠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중국이 홍콩에서 한발 물러나야 시위가 마무리될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현지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크다"고 덧붙였다.

홍콩 시위는 오는 10월 1일 중국의 건국 7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가장 민감한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시진핑 정부가 건국기념일 전에 홍콩 사태를 해결하려 무장 병력 투입 등 강수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위대는 오는 31일 홍콩섬에서 또 다른 대규모 시위를 계획 중이다. 중국 정부가 홍콩 행정장관 간접선거제를 결정한 지 5년째 되는 날로, 도심 행진이 진행되는 만큼 경찰과의 충돌 우려가 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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