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반복되는 일제 불매운동의 역사…이번엔 '성공적(?)'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2019.08.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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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콧 재팬'의 진화][the L] 실패로 끝났던 일제 불매운동의 역사…이번엔 다른 이유

편집자주 '안사고, 안먹고, 안가고.'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에 맞선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50일째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주도의 자발적인 극일의 '열정'은 전산업분야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일부 일본투자기업에 대한 과도한 마녀사냥식 불매운동을 배격하고, '냉정'을 잃지 않는 성숙한 의식들도 표출되고 있다. 열정과 함께 냉정까지 품은 스마트한 불매운동을 들여다봤다.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제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 이후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은 경제력에 있어서 한국보다 우위에 있었다. 불매운동이 반복된 지난 100년이 넘는 기간, 일본제품은 우리 실생활에 필수품처럼 쓰이기도 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직전의 국채보상운동과 1920년대 초 조선물산장려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7년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불매운동은 아니었지만 일본의 식민지 정책인 '경제적 종속'을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그 취지는 지금의 불매운동과 같다. 2년에 걸쳐 국민들의 모금으로 차관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은 IMF시절 금모으기 운동의 원조격이다. 일본의 방해 속에 실패로 끝났지만 범국민적 열기와 단합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채보상운동·조선물산장려운동으로 시작된 반일 불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선 1920년대 초, 조선물산장려운동은 불매운동의 시초다. 3·1운동 직후 조만식 선생 주도로 시작된 물산장려운동은 전국 곳곳에 지부가 설립되며 확산됐다. 몇년간 지속됐지만 일본의 탄압과 민중의 외면으로 결국 실패했다.

해방 이후 단절된 국교로 불매운동은 한동안 뜸했다. 그러다 1965년 한일협정 비준문제가 한일관계 쟁점으로 떠올랐다. 학생들의 비준 반대시위와 더불어 일제 불매운동이 있었다. 격렬한 시위와 함께 화형식도 열렸다. 밀수품 단속도 동시에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비준안도 국회를 통과했고 불매운동도 종식됐다.

1974년은 여러 사건이 겹쳐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있었다. 다나카 전 일본 총리가 식민 통치를 미화하는 망언을 해 여성단체 중심으로 일제 불매운동이 있었다. 여기에 광복절 행사장에서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범인인 재일교포 문세광에 대한 일본 측 수사에 대한 불만도 불매운동으로 표출됐다. 가전업체인 히타치가 재일교포의 취업을 차별한다는 소식도 전해져 히타치 불매운동도 있었다.


1976년에는 일본의 한국산 비단제품 수입 규제를 비난하는 일제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MT리포트]반복되는 일제 불매운동의 역사…이번엔 '성공적(?)'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불매운동은 1990년대 들어 역사왜곡 문제로 다시 불붙었다.

◇반복된 일본 역사 왜곡에 반복되던 일제 불매

1990년대 초, 일본이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시도하자 군국주의 부활을 막자며 불매운동이 있었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불매운동이 일며 일본 담배 퇴출 운동으로 발전됐다. 대표적 일제 담배인 ‘마일드세븐’에 대해선 화형식도 거행됐다.

1996년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자 일제 불매운동과 더불어 일본 영화 안 보기 등 문화종속을 벗어나자는 캠페인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역사왜곡과 정치문제로 불매운동이 반복됐다. 2001년 후소샤 출판사의 역사 왜곡 교과서가 불매운동을 촉발시켰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독도 문제 등 왜곡된 내용에 대한 수정을 요구했지만 일본의 거부로 일제 불매운동에 불이 붙었다.

이후 독도를 둘러싼 갈등은 불매운동으로 여러 번 이어졌다.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이 2월 22일을 '다케시마(독도)의 날'로 정하는 조례를 제정해 불매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후소샤 교과서가 일본 문부성 검정을 통과해 시민단체 주도로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있었다.

2011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2013년 아베 정부의 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행사 정부 관료 파견은 불매운동이 반복된 계기였다.

◇2019년 일본 경제보복이 부른 불매운동, 성공의 조건은?

이어 올해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해 일본이 반발하며 불거진 한일 갈등은 역대 불매운동 중 가장 규모가 큰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과거 실패로 끝난 불매운동 사례들은 일시적이거나 보여주기식 요소가 많았다. 일본 정부나 기업에 실제 피해를 주기엔 미미한 정도로 종결되기 일쑤였다. 아울러 경제적으로도 일본에 타격을 주기엔 한국의 소비규모가 작았고 산업구조의 일본 의존도가 높았다.

일본 정부를 움직일 정도로 효과적인 결과가 도출됐다고 평가할 만한 사례는 없었다. 대부분 한국인 스스로 불매운동을 종결시켰다. 장기화될 경우 일본 의존도가 높았던 한국이 불리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불매운동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높은 참여도로 과거와 다르단 평가가 나온다. 일본에 대해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새로 시도되고 있는 '일본 여행자제'는 실질적으로 일본 지방자치단체에 위기의식을 높여 일본 정부의 태도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달 불거진 불매운동은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양측의 대립구도가 풀릴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불매운동의 성패는 한국 경제력과 소비자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치킨게임 양상으로 접어든 이상, 한국의 불매운동이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바꿔 놓을 수 있을지에 양국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에 놓였다.

장기화될 경우엔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나쁜 결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불매운동은 ‘성공’으로 끝내자는 목소리가 높은 만큼 과거와는 다른 모습의 종결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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