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안 시키려 했는데, 뒤늦게 반성합니다"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2019.08.1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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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중1 수학 시험문제를 보고 충격 받은 사연…사교육 없이는 안되는 교육 현실의 높은 벽 실감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얼마 전 우연히 동네에 위치한 한 중학교 1학년 수학 기출시험 문제를 볼 기회가 있었다. '중1 시험인데 뭐 별거 있겠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학 시험 문제를 죽 훑어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첫 10여개의 문항들은 비교적 쉬었지만 뒤로 갈수록 복잡해지는 수식과 길어지는 문항의 설명을 보면서 얼굴이 굳어졌다.

결국 17개의 객관식 문제는 15개 정도 풀고 나머지는 포기했고, 서술형 문제는 겨우 2~3 문제 푼 뒤 '어렵네'라는 탄식과 함께 연필을 던져버렸다. 그리고나서 '도대체 이걸 애들이 어떻게 풀라는 거야?' 생각에 처음엔 화가 났고, 곧바로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인 첫째 아이에 대한 걱정이 불쑥 들었다.



필자는 사교육이 우리나라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과 아이들은 가급적 놀면서 키워야 한다는 나름대로 개인적인 교육관을 기초로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아이에게 사교육은 가급적 시키지 않으려 결심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거주하면서 변변한 놀이 공간조차 없는 통에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학원은 수영이나 태권도 정도만 보냈고, 교과목 관련한 부분은 학습지만으로 보충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이러한 소신(?)을 나름대로 지킬 수가 있었고, 아이도 성실하게 학습지만 풀어도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데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그런데 4학년에 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어 수업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수학 시험도 틀린 문제 갯수가 점차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걱정이 들었다.

결국 영어는 어린 시절 교육이 중요하고 제때 잡아주지 않으면 평생 고생한다는 말에 그동안 견지했던 소신을 꺾고 아이를 동네 가까운 영어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말이 학원이지 그냥 자습 형태로 공부하고 선생님이 잠깐씩 도와주는 교습소 비슷한 곳이다. 하지만 수학만큼은 소신을 지켜보려 학습지만으로 근근히 버텼다.

그런데 최근 학습지를 풀면서 아이는 문제가 어렵다고 고충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술형 문제에서 긴 문장을 이해하고 풀이과정까지 적어내야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족히 7~8줄이나 되는 문항을 이해하기 힘들고 또 설령 풀었다고 해도 풀이과정을 다시 논리적으로 써내는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옆에서 이런 아이를 지켜볼 때 답답한 마음이 들면서도 초등학생에게 이런 식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게 과연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고, 자칫하다가는 우리 아이도 조만간 ‘수포자’가 되는게 아닌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중1 수학 기출문제를 본 뒤론 필자는 그동안 지켜온 교육관과 소신이 부질없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필자도 나름 학창시절 수학 공부를 잘했고, 소위 사립명문대학을 다녔고 수학 관련 수업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불과 중1 수학 시험조차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하는 문제들이 널려있는데, 과연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아무런 사교육을 받지 않은 채 2년 후 중학교에 들어가서 이런 고난도의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중1 수학시험이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데, 수학은 점점 갈수록 어려워질 테고 문제 난이도도 훨씬 높아질 텐데 과연 부모의 교육 소신을 지키기 위해 학습지만으로 아이를 교육시키는 게 능사일까하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필자와 학교 동문인 아내에게도 시험지를 보여줬더니 아내의 반응 역시 필자와 사뭇 다르지 않았다. 결국 고민 끝에 학습지만으로 수업을 보충하고자 했던 필자의 순진한(?) 교육관을 내려놓고 조만간 아이를 수학 학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물론 아이의 의사도 물어봤다. 다행히 아이는 학습지나 학원이나 별로 상관이 없다고 답했다.

한편으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교육의 병폐를 오래 전부터 인식하고 교과목을 위한 사교육만큼은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5학년 학부모가 되고 보니 이같은 교육관이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서 아이를 방치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그리고 이제서야 왜 이 땅의 수많은 부모들이 사교육의 병폐를 알면서도 한달에 수십만원이 넘는 돈을 써가며 밤늦게까지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주면서 사교육에 매달리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2018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7세 이하 자녀가 있는 가구는 월평균 46만3000원을 학원 등 사교육비로 지출했고, 전체 학생 수로 나눈 1인당 사교육비는 월 29만원 수준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는 사교육을 받지 않는 가구나 학생까지 포함된 것으로 실제 가정에서 쓰는 사교육비는 이러한 통계보다 최소한 서너배는 더 많다는게 현실이다.

하기야 어떤 부모라고 사교육이 마냥 좋아서 이렇게 학원에 보내겠으며 많은 돈을 써가면서 과외를 시키겠는가? 대한민국 교실에서 자신의 아이가 뒤처지는 것이 걱정스럽고, 자칫 어려운 학과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수포자’가 될 것을 걱정해서 그러는 게 아니겠는가?

그나마 4년제, 그리고 나름 ‘인서울’(in-Seoul) 대학교에 들어가려면 상위권의 내신 성적과 일정 수준 이상의 수능 성적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포자’에겐 이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적으로 체득한 부모들이 대한민국 사교육 현장을 세계 불가사의에 소개될 만큼 병폐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SKY서성한중경외시...’(서울대·고려대·연세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를 지칭하는 은어)로 대변되는 이 땅의 서열화된 대학 체제와 입시위주의 교육시스템이 근본적으로 개혁되지 않는 한 아무리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을 한다고 해도 현실의 거대한 벽앞에서 그 결심이 산산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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