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그림의 떡' 안되려면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2019.07.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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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성 우려 목소리 있지만 '갑질 감수성' 높이는 인식 변화 계기 되기를

"신고할 줄 알았으면 몇 대 더 때릴 걸…"

두 달 전 중소기업에 다니는 A씨를 갑자기 폭행한 상사는 목격자가 많은 것을 보더니 "내가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인력이 부족한 회사 측은 A씨를 방관했고, A씨는 지속적인 폭언·폭행과 괴롭힘 속에서도 직장을 떠나지 못했다.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법을 포함한 새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 '직장 내 괴롭힘'을 법에 규정하고 금지한 점은 큰 의의가 있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사내 신고 방식, 가해자 처벌 조항 부재, 익명 신고의 어려움 등 한계로 인해 '갑질신고'가 어려운 건 변함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 대학병원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관련 교육에 초빙한 노무사가 "업무 부적응자나 저성과자가 주로 괴롭힘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괴롭힘의 원인이 업무미숙이라는 것으로 전형적인 가해자 시각이 묻어난다.

신고자를 골칫거리로 여기는 것은 이 병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직장에서 괴롭힘으로 회사에 도움을 청했다가 보복갑질을 당했다는 제보는 늘고 있다.



이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 조직 내 갈등 유발자로 낙인 찍힐까봐 위축되고 신고 시도조차 못할 수도 있다.

현장에선 법보다 직장 문화 변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법으로 금지해도 사용자와 직장 내 '갑질 감수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괴롭힘은 계속될 것이다.

중요한 건 인식 변화다. 법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지만 갑질 감수성을 높이는 인식 전환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하루의 3분의 1을 보내는 직장에서 괴로움을 참아야 했던 나쁜 시절이 끝나고, 인간다운 일터를 요구할 수 있는 좋은 시절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
[기자수첩]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그림의 떡' 안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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