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규제자유'라 쓰고 '자유규제'라 읽나

머니투데이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2019.07.16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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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에서 날아온 고약한 이슈에 묻혀 큰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정부는 이달 말 또하나의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다. 수천억원의 혈세가 투입될 ‘제1차 규제자유특구’ 지정이다.

규제자유특구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신기술 기반 신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패키지로 완화해주는 제도다. 재정·금융·세제지원 등 파격적인 혜택도 주어질 예정이다.



올해 초 도입된 규제샌드박스가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면 규제자유특구는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규제를 유예·면제해준다는 점이 다르다. 특구 내에서는 관련기업들이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신기술·신제품을 개발·출시할 수 있다.

규제샌드박스가 기업들의 혁신 ‘놀이터’라면 규제자유특구는 ‘놀이공원’쯤 되는 셈이다. 제도 도입 취지대로 특구가 본격 가동되면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혁신의 요람이 되는 것은 물론 지역균형발전의 지렛대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는 영 딴판이다. 벌써부터 지자체들 사이에선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부처간 핑퐁행정, 님비행정, 짬짜미행정으로 핵심규제 완화가 진척이 없는 탓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특구 추진의 애로사항을 묻자 “부처간 칸막이를 쳐놓고 서로 피해를 보지 않으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 특구 지정 시한을 앞두고 원격진료(보건복지부) 개인정보보호(행정안전부) 등 핵심규제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일부 지자체는 사업계획서에서 문제가 될 만한 관련 사업들은 빼고 특구를 추진 중이다. 예산 한 푼이 아쉬운 지자체들이 ‘일단 특구부터 만들고 보자’ 식으로 사업계획을 수정한다는 얘기다. 규제가 이미 풀렸거나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은 사업들로만 특구를 추진하는 것으로 ‘팥소 빠진 특구’가 돼가는 것이다.

특구가 취지와 다르게 흘러가자 바빠진 건 주무부처이자 심의·조율기관인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 장관이다. 쟁점규제 제도개선 포럼 등 시간이 날 때마다 규제완화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것은 물론 부처간 조율에도 애쓰는 모습이다.


얼마 전에는 참다못한 박 장관이 지자체들이 제출한 특구 사업계획서를 원본 그대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문제가 되는 규제가 무엇인지 검토하고 직접 담당부처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박 장관의 고군분투에도 지자체와 기업들은 핵심규제 완화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권한을 가진 담당부처들이 예나 지금이나 마이동풍, 우이탄금 식으로 대응해서다.

여기에는 코앞에 다가온 개각과 총선도 한몫한다는 지적이다. 해당 부처 장관들이 개각과 총선으로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데 공무원들이 제대로 움직이겠느냐는 것이다.

특구 입주를 검토 중인 스타트업 한 관계자는 “원격진료만 해도 정부는 매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렇게 십수 년을 허송세월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호소처럼 이제 놓아줄 때도 된 것 아니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규제자유특구가 성공하려면 이름 그대로 규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족쇄가 풀려야 특구에 기업과 자본, 인재가 유입되고 혁신성장과 지역균형발전이 싹을 틔울 수 있다. 볼 것도, 놀 것도 없는 놀이공원을 누가 찾겠는가. 이러다 규제자유특구가 아무도 찾지 않고 혈세만 잡아먹는 그저 그런 놀이공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광화문]'규제자유'라 쓰고 '자유규제'라 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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