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일제 강제징용, 첫 소송부터 결론까지 '18년'…재판 과정 어땠나

머니투데이 이미호 기자 2019.07.02 15:46
글자크기

[the L]2012년 대법원 '개인청구권' 효력 인정…2018년 원고 승소 판결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에서 이춘식씨(94)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착석하고 있다. 2018.10.30/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에서 이춘식씨(94)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착석하고 있다. 2018.10.30/뉴스1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은 대체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소송과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소송으로 나뉜다.

1944년 9~10월 일본 히로시마 구(舊) 미쓰비시중공업 기계제작소와 조선소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한 고(故) 박창환 할아버지 등 6명은 강제노역을 하며 지급받지 못한 임금과 손해배상금 각 1억100만원을 배상해달라며 2000년 5월 부산지법에 소송을 냈다.



피해자들이 모두 고령이라는 점에서 시간이 촉박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더뎠다. 1심 재판부는 2007년 2월 "불법행위가 있던 날로부터는 물론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가 이뤄진 1965년부터 따지더라도 이미 10년이 지나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 완성으로 소멸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듬해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뒤늦게 대법원이 2012년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되지 않는다"며 원심을 서울·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면서 승소 가능성이 열렸다.



당시 대법원은 '외국법원 확정판결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민사소송법 217조 3항을 근거로 일본 법원의 확정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일본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면서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 명백해 일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한일협정에는 개인청구권 소멸에 관해 양국 정부의 의사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한 근거가 없다"면서 개인청구권이 유지된다고 결론냈다.


이듬해 7월 다시 열린 2심에서 결국 미쓰비시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지만 정창희(96) 할아버지만 제외하고 피해자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후 대법원은 2018년 11월 29일 "피해자에게 각 8000만원씩 배상하라"며 원소 승소를 확정했다. 소송을 제기한지 18년만이다. 이 과정에서 한일 양국관계를 의식한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사법부의 이른바 '재판거래'로 재판이 지연됐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와는 별개로 같은 날 일제시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에게 미쓰비시중공업이 1인당 1억~1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소송은 피해자들이 1997년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2000년대 초반 일본 법원이 소송을 기각했고, 피해자들이 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같은 소송을 냈다.

이후 2008~2009년 1·2심은 "배상 시효가 지났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했고, 2013년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은 피해자 손을 들어줬다.

신일철주금은 이에 불복해 곧바로 대법원에 재상고했지만, 지난해 10월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그대로 선고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