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경기 일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 속 J선배와 마주했다. 따로 또 같이, 17년여를 현장에서 함께 뛴 사이였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선배가 무엇인지 가르쳐준 그였다. 나이나 경력을 떠나 ‘인간’으로서 존경하던 선배였다. 불과 보름여 전 함께 술잔을 기울인 선배는 영정사진 속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다시는 그 남해바다 같은 정겨운 웃음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새벽녘 조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무심코 스마트폰으로 선배 이름을 검색했다. 마지막으로 선배가 쓴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기득권 눈치보기에 급급해 원격진료 도입을 차일피일 미루는 정부와 국회를 비판하는 글이었다. 실제 국내 원격진료 도입 논의는 2000년 시범사업을 통해 물꼬를 텄지만 동네 병원 붕괴, 의료 질 저하 등을 우려하는 의료계 반발에 부딪쳐 19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가정의 가정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미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국가에서도 스마트 의료기기를 활용한 원격진료가 활발히 이뤄진다. 지난해 애플이 출시한 애플워치4 가 대표적이다. 애플워치4의 심전도 측정 기능으로 심방세동 증세를 미리 알고 목숨을 구했다는 사례들도 나온다.
사실 이 기술은 국내 스타트업 휴이노가 애플보다 3년 빠른 2015년 개발했지만 원격진료를 금지하는 해묵은 의료법에 막혀 출시되지 못했다. 국민건강권을 강화하고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혁신기술을 개발하고도 규제로 인해 상용화하지 못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스마트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대다수 기업은 규제를 피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게 현실이다. 해묵은 의료법에 환자와 시장만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선배는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정부는 여전히 당사자인 국민보다 격렬하게 반대하는 다른 당사자들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19년째 허송세월 보낸 원격진료를 20년으로 미룰 것인가. 손 놓고 몸 사리고 있는 공무원이나 가만히 있으면서 인식이 개선되길 바라는 대통령이 답답하기만 하다.” 혁신성장을 기치로 내걸고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문재인정부와 국회에 대한 한탄이자 질문이다. 언제까지 가보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며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선한 기술들을 사장시킬 셈인가. 이제 정부가, 국회가, 우리가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