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일흔셋, '세계 1위 화장품 ODM' 회장은 목마르다

머니투데이 대담=송정렬 산업2부장, 정리=양성희 기자 2019.06.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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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이경수 코스맥스 회장, 도전은 계속 "건기식도 화장품 만큼"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사진제공=코스맥스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사진제공=코스맥스


1992년 여름, 소위 '잘 나가던' 제약사 마케팅 전무가 회사를 때려치웠다. 그의 나이 마흔일곱이었다. 거창한 꿈은 없었다. 회사를 다닌 20년의 세월만큼 앞으로의 20년은 회사를 차려 운영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분야는 화장품 생산이었다. 아내와 함께 낡은 쏘나타를 타고 충청도 일대를 무작정 누비며 공장 터부터 찾았고 생산라인을 직접 돌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회사는 나날이 창대해졌다. 2015년 글로벌 1위 화장품 ODM(제조자 개발생산) 기업으로 올라섰고, 지난해 업계 최초로 연매출 1조원을 넘기며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히 지켰다. 생산 가능한 수량은 17억7000만개에 달한다. 전 세계 70억 인구 4명 중 1명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화장품 본고장 미국, 프랑스에서도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의 명성을 쌓았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73)을 최근 경기 성남시 판교로 본사에서 만났다. 이 회장은 코스맥스가 이룬 성과에 대해 "꿈에도 생각 못 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은연 중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아직도 배고픔을 느낀다. 그리고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 미국에서 '넘버원'이 되는 것, 화장품뿐만 아니라 건강기능식품까지 아우르는 '헬스 앤드 뷰티' 1위 ODM 기업으로 올라서는 것이 바로 그의 꿈이다.

◇K뷰티 개념 없던 2000년대 초반 중국에 깃발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서 '코리아'가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부터다. 'K뷰티'란 말도 2010년대 들어 생겨났다. 화장품은 미국과 유럽 국가가 독점하던 영역이었다. ODM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까진 이탈리아 인터코스가 글로벌 1위 자리를 독식했다. 그런데 2015년 코스맥스가 그 자리를 빼앗았다. 이후 코스맥스는 해를 거듭할수록 격차를 벌렸고 지난해엔 매출 1조2597억원으로 2위 인터코스(8986억원)를 크게 따돌렸다. 올해 1분기에도 코스맥스 매출(3278억원)이 인터코스(2201억원)를 앞섰다.

K뷰티 열풍과 코스맥스 성장은 닭과 달걀처럼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르게 맞물려있다. 그럼에도 단연 코스맥스가 먼저한 것은 중국 진출이다. 중국 법인 코스맥스차이나를 세운 건 2004년. K뷰티란 개념이 없을 때다. 이 회장은 "중국에서 아직 화장품 시장이 열리지 않았는데 발빠르게 진출해 로컬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전략을 폈다"며 "현지화를 통한 세계화를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맥스가 차이나, 광저우 법인을 통해 중국에서 생산하는 양은 6억5000만개로 국내와 동일하다.

◇글로벌 고객사 600여곳, 고객 관리는 회장 몫


'글로벌 넘버원'의 자리는 그냥 유지되는 게 아니었다. 로레알, 유니레버, 존슨앤드존슨 등 600여곳의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지만 이 회장은 멈추지 않는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는 올해 들어서만 12차례의 해외 일정을 소화했다. 1년에 30번 정도 해외 출장길에 오른다. 이 회장은 비서실을 따로 운영하지 않고 일정을 직접 짠다. 인터뷰 내내 손에 쥐고 있던 수첩은 빽빽한 일정 탓에 흰색(종이)보다 검은색(글자)이 많았다.

이 회장은 틀에 박힌 시장 조사를 거부한다. 그 나라의 기후, 사람들의 피부 타입, 선호하는 제형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차선'에 주목했다. 그는 "일본은 워낙 내공이 보통 아니고 제품력 등 여러 면에서 경쟁력 있는 나라"라며 "시골 마을에도 차선이 뚜렷하고 반듯하게 잘 그려져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로가 포장이 잘 돼있고 페인트가 질이 좋은 데다 규격에 맞춰 잘 그렸다는 뜻"이라며 "더 나아가 하수구 등 도로 주변 관리가 잘 돼있는 데다 운전하는 사람이 차선을 자주 안 바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같이 이 회장은 한 나라를 여러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현지에 최적화한 전략을 편다.

◇영화 '기생충'으로 본 '종합예술', 화장품도 마찬가지

일각에서는 K뷰티를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로 표현하는데 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K뷰티의 저력을 믿는 그였다. 이 회장은 "나라 이름에 뷰티가 붙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나라 자체와 그곳에 사는 사람, 그 나라 사람이 만드는 상품이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 나라 사람이 아름다워야 뷰티 비법을 따라하고 싶은 것 아니겠느냐"며 "한국의 화장법이 인기고 한국에 와서 성형수술을 하려는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K뷰티의 저력을 강조하며 영화 '기생충'을 예로 들었다. 그는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집을 보고 어딘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세트장이었다"며 "각본에 맞는 세트장을 만든 건데 이건 봉준호 감독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종합예술이 더해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가 종합예술인 것처럼 화장품도 코스맥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종합예술인데 이제 K뷰티는 한류의 하나로, 한 종류의 문화상품으로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그 무엇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사진제공=코스맥스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사진제공=코스맥스
◇화장품의 A to Z 코스맥스만의 '원스톱' 서비스

이 회장은 창업 전 대웅제약, 동아제약 등을 거치며 마케팅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이 회장은 마케팅 전문가답게 ODM을 넘어 OBM(제조업자 브랜드 개발생산)이란 차별화한 사업 모델을 확대하고자 한다. 브랜드를 제안하고 신제품을 개발·생산하며 마케팅까지 원스톱 솔루션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코스맥스에 맡기기만 하면 화장품이 탄생하는 A부터 Z까지 다 해주는 셈이다. 이 회장은 "고객 중심을 최우선으로 하는 코스맥스의 철학이 담겼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해외에서 성과를 보인 OBM 서비스는 올해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흔히 '이름 없는', '얼굴 없는' ODM 사업에 대한 갈증이 없다고 했다. 이 회장은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면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엔 화장품이 생산, 판매가 분리되는 분야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하나의 화장품 회사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줄 알았는데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로도 이렇게 글로벌로 나아갈 수 있는데 구태여 브랜드 사업까지 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화장품만으론 목마르다…목표는 '글로벌 1위 헬스&뷰티'

이 회장은 '글로벌 1위 화장품 ODM' 그 다음을 꿈꾼다. 법인으로 직접 나가있는 곳은 중국, 미국, 인도네시아, 태국이다. 다음 기지로는 베트남을 염두에 뒀다. 수출로는 올해 2억 달러(한화 약 2371억원) 달성을 앞뒀다. 국내 법인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다. 전체 매출에서 글로벌 고객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62%다. 특히 이 회장은 미국에서 명실상부한 1위로 올라서고자 한다. 코스맥스는 미국에 코스맥스USA와 누월드 법인을 각각 두고 있다. 기초, 색조 제품 생산을 이원화해 경쟁력을 갖췄다.

또 화장품만큼 건강기능식품을 키우고자 한다. 건강기능식품, 의약품을 포함한 코스맥스 그룹 전체 매출 약 1조8000억원에서 화장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조2597억원으로 70%에 달한다. 언젠가는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의 비중이 5대5가 되는 날을 꿈꾼다. 이 회장은 "건강기능식품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넘버원 헬스 앤드 뷰티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화장품이 걸어간 길을 건강기능식품도 가고 있다"며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은 바르는지 먹는지 차이만 있지 연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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