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Eat]중국도 울고갈 '짝퉁 왕국'된 나라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06.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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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되는 '먹는(Eat)' 이야기]
마약 대신 음식 제조 이탈리아 마피아
'가짜' 트러플·치즈·와인으로 연 32조원
"이탈리아 수출 음식 10개 중 6개 가짜"

[인싸Eat]중국도 울고갈 '짝퉁 왕국'된 나라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식품 트러플(송로버섯)이 최근 부쩍 찾아보기 쉬운 식재료가 됐습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가면 트러플이 들어간 파스타나 피자 메뉴가 없는 곳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입니다. 땅속에서 자라 육안으로는 찾기가 힘들고, 채취에 성공한다 해도 보관기간이 5일밖에 되지 않아 유통이 어려워 1kg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이 희귀한 식재료가 어떻게 이제는 누구나 맛볼 수 있게 된 것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유력한 건 이탈리아에서 '가짜 트러플'을 만들어 팔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이탈리아에선 마피아가 트러플뿐 아니라 올리브오일, 치즈, 와인 등 닥치는 대로 가짜를 만들어 수십~수천배의 이익을 챙기며 전세계 식탁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짝퉁 왕국' 중국도 울고갈 정도인 듯합니다.



흙에 문지르고 화학향 첨가하니 '트러플'로 둔갑
라이언 제이콥스의 책 '트러플 언더그라운드'를 보면 가짜 트러플이 어떻게 이탈리아 식품업계를 점령하고 있는지 잘 드러납니다.

이탈리아 북부의 피에몬테, 그중에서도 알바와 아스티에서 나는 화이트트러플은 세계적으로 값비싸고 귀하기로 유명합니다. 프랑스에서 주로 나는 블랙트러플보다 채취되는 양도 적고 향이 뛰어나 가격이 몇 배는 더 비쌉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농림부 산하 산림경찰에 따르면 피에몬테에서 화이트트러플을 생산한다고 하는 업체 100개 중 75%는 피에몬테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트러플을 밀수해 진짜로 둔갑시켜 팝니다. 이들 대부분은 동유럽에서 수입한 냉동 버섯들로, 업체들은 이를 가져다가 마치 땅에서 채취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흙을 문지른 뒤 트러플 향이 나는 화학원료를 첨가해 유통합니다. 처음 이 가짜 트러플을 만지면 특유의 향이 코를 찌르지만 수분 내로 이 향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집니다.

이탈리아 헌병대인 '까라비니에리'는 전국 38개 사무소, 1000여명의 수사관을 둔 식품 및 건강 관련 범죄 수사대 나스(NAS)를 운영할 정도로 가짜 트러플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가짜 식품을 보관하는 창고를 급습할 때는 총격전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농장이나 창고가 마피아를 통해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어에서는 '농업(agricoltura)'과 '마피아'를 합친 '아그로 마피아'란 신조어도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전직 나스 수사관인 세르지오 티로는 이탈리아 남부의 한 창고를 급습했더니 10여명의 마피아가 총을 쏴 총격전을 펼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티로는 "그들은 경찰을 마주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올리브유·치즈·와인까지…"이탈리아 식품 10개 중 6개는 가짜"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마피아는 트러플 외에도 올리브유, 치즈, 와인까지 닥치는 대로 가짜를 만들고 있습니다. 가짜 올리브유는 저렴한 해바라기유를 구입해 엽록소, 카로틴, 식용색소 등을 더해 진짜처럼 보이게 한 후 원래 값어치의 12배 이상의 가격으로 판다고 합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산 가짜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이너를 고용해 라벨을 정교하게 베끼고, 맛과 향만 흉내낸 가짜를 전세계에 수출합니다. '모엣 샹동'처럼 유명하고 인기있는 샴페인이 주요 타깃입니다. 이탈리아의 이탤릭스 매거진은 "전세계 식탁에 오르는 이탈리아 식품 10개 중 6개는 가짜"라면서 "이 때문에 이탈리아는 연간 600억달러(약 71조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피아가 식품업에 뛰어든 이유는 과거처럼 코카인이나 헤로인 같은 마약류 단속이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전세계적으로 농업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자 돈냄새를 맡고 주요 농장을 매입해 짝퉁 식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피아가 보유한 1000헥타르에 달하는 땅을 임대할 경우 연간 3만7000유로(약 5000만원)를 벌 수 있는 데 비해 농장을 운영하면 유럽연합(EU)으로부터 연간 100만유로(약 13억300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는 데다가 각종 수익까지 더해 마진율이 최대 2000%에 달한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마피아 입장에선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총기와 마약류를 밀수하거나 절도 등의 강력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분석입니다.

이중에서도 마피아가 짝퉁 트러플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다른 식품처럼 라벨을 위조하는 등의 수고가 덜 드는 데다가 정부에서도 사실상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등 통관이 쉽기 때문입니다. 트러플은 보통 채취일자나 생산지 등의 서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그거 플라스틱 봉투에 담겨서 간단한 통관만 걸치면 됩니다. 게다가 전문가가 아니면 진짜인지 구분조차 쉽지 않습니다.


마피아가 짝풍 팔아 버는 돈, 연간 32조원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이탈리아 식품협회는 마피아들이 이렇게 짝퉁 식품을 팔아 지난해 270억달러(약 32조원) 규모의 이익을 챙겼다고 추정합니다. 2011년만 해도 125억유로 규모였는데 몸집이 7년새 2배 넘게 커졌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는 마피아의 연간 매출의 15%를 넘는 수준이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적발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2012년 이탈리아 당국은 30톤 규모의 가짜 토마토 소스, 77톤 규모의 가짜 치즈, 3만개의 가짜 캔디바 등을 적발했고, 이밖에 2톤 가량의 가짜 캐비어와 트러플를 압수했습니다. 2015년에는 7000톤 규모의 가짜 올리브유를 유통한 농장이 적발됐고, 2017년 이탈리아 금융당국이 가짜 트러플을 이용한 세금 탈루액이 6600만유로(약 880억원)가 넘는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 경제개발부는 2016년부터 '짝퉁 식품'과 싸우겠다며 전세계에서 '진짜 이탈리아 식재료를 쓴 음식'을 홍보하는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원인을 뿌리뽑는 데는 주저하고 있습니다. 마피아들이 브로커들을 동원해 막강한 로비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대로라면 명품으로 유명한 이탈리아가 중국을 넘어서는 '짝퉁 왕국'의 오명을 쓰는 건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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