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70억' 물어줘야 하는 사외이사들, 뒤에서는 웃는 이유

머니투데이 황국상 , 최민경 기자 2019.05.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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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사외이사의 탈출구]'태백시 확약서'에 150억 '배임 우려' 기부 결정… 태백시에 구상권 소송 검토하는 사외이사들

편집자주 사외이사는 주식회사 경영의 조력자이자 감시자임에도 거수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적책임에도 불구하고, 거수기 역할의 면죄부가 늘고 있다. 사외이사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편법과 맹점을 들여다봤다.

[MT리포트]'70억' 물어줘야 하는 사외이사들, 뒤에서는 웃는 이유


강원랜드에 150억원대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약 70억원(이자 포함)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은 강원랜드 사외이사들이 강원 태백시를 상대로 구상권 행사에 나서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기업 운영을 돕고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가 회사경영 부실을 초래한 책임을 스스로 지지않고 외부에 떠넘겨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강원랜드가 태백시 산하 오투리조트에 2012~13년에 걸쳐 150억원을 부당한 방법으로 기부하도록 하는 데 관여한 사외이사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이는 최흥집 전 사장 등 전직 사내·사외이사 9명에게 150억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한 소송에서 사외이사 7명에게 총 30억원의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당초 2012년 3~7월의 강원랜드 이사회에서는 문제가 된 기부안이 '업무상 배임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결의가 보류됐었다.



이에 태백시장과 태백시의회 의장이 공동명의로 "'이사의 배임문제'가 발생할 때 민·형사상 책임을 대신 지겠다"고 확약서를 써준 것. 이같은 확약서가 나온 이후에서야 강원랜드 사외이사 7명이 전격적으로 찬성해 기부안이 통과됐다. 이를 바탕으로 강원랜드가 150억원을 기부했고 태백시는 강원랜드의 기부금을 오투리조트에 전액 투입했으나, 150억원을 날리고 2014년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이들 사외이사들은 태백시장 등의 확약서를 근거로 조만간 태백시에 구상권을 행사할 예정이다. A씨 등이 이 소송을 실제로 제기해 태백시 등을 상대로 승소할 경우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관여했음에도 사실상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셈이 된다. 나아가 태백시가 A씨 등에게 70억원 전액을 물어준다고 해도 강원랜드는 원금 150억원의 절반도 보전받지 못한다.

이 소송은 2014년에 처음 제기돼 1심에서도 같은 형을 선고받았다. 2015년 7월 1심 선고 이후 이자도 연 5~20%씩 붙어 이들 7명이 강원랜드에 돌려줘야 할 돈은 70억원에 이른다.


사건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랜드 지분 1.25%를 보유하고 있던 태백시는 당시 민간업체와 공동으로 태백관광공사를 설립하고 이 공사를 통해 오투리조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오투리조트의 경영난이 지속되자 태백시는 강원랜드에 오투리조트 운영자금을 대여 또는 기부 방식으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태백시의회 의원을 지낸 적이 있던 강원랜드 사외이사 A씨는 강원랜드 이사회에 폐광지역 협력사업비로 150억원을 기부하자는 안건을 발의했다. 이 안건은 "기부안을 가결할 때 업무상 배임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등 이유로 두 차례나 결의가 보류됐다.

이에 태백시장과 태백시의회 의장이 공동명의로 "이사의 배임문제가 발생할 때 태백시와 태백시 의회가 민·형사상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확약서를 써주고 나서야 강원랜드 이사회는 출석이사 12명 중 찬성 7명, 반대 3명, 기권 2명으로 기부안을 가결시켰다. 찬성표를 던진 7명은 모두 A씨와 같은 사외이사들이었다. 기권표는 최 전 사장과 B 전무 등 2명이 냈다.

태백시는 2012~13년에 걸쳐 150억원의 기부금을 태백관광공사에 전달해 공사의 인력운용비 등 운영자금으로 썼다. 그러나 공사는 2014년 8월 임금채권 미지급 등을 이유로 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150억원의 지원금이 공중으로 사라진 것이다.

강원랜드는 2014년 9월 최 전 사장과 B 전 전무 등 사내이사 2명과 A씨 등 당시 사외이사 7명에게 선관주의(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원심은 일단 "폐광지역 경제진흥을 통한 균형발전과 주민 생활향상이라는 공익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부금 결의가 이뤄졌고 기부의 액수가 강원랜드 재무상태에 비해 과다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기부가 폐광지역 전체의 공익증진에 기여한 정도와 강원랜드에 주는 이익이 크지 않고 기부의 대상 및 사용처에 비춰 공익달성에 상당한 방법으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외이사들인 피고들이 이사회에서 이같은 점에 대해 충분히 검토했다고도 보기 어려워 선관주의 의무를 위배했다"고 A씨 등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도 이같은 판단이 옳다고 했다. 다만 명시적으로 기권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된 최 전 사장과 B 전 전무에게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A씨는 전체 배상액 70억원(이자 포함) 중 절반인 35억원 가량을 단독으로 배상하게 됐다. 다른 6명의 전직 사외이사도도 연대해서 나머지 35억만큼을 물어야만 한다. 이렇게 되자 당초 이사회 결의를 조건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고 한 태백시에 구상권을 청구키로 한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률적으로 이사회 결의 사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외이사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태백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토록 한 면책 확약서는 모럴헤저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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