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쪽' 삭제 후 텅빈 합의문 보낸 中, '관세폭탄' 불렀다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05.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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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이달초 무역합의문 30% 삭제 후 美에 통보...트럼프 며칠 뒤 "2000억 관세폭탄" 분노의 트윗

/사진=로이터통신./사진=로이터통신.


무역합의 기대감을 끌어올리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중국에 2000억달러(약 238조원)어치 관세를 물리고, 추가로 3250억달러(약 386조원)규모에도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데에는 중국이 무역합의문 초안을 일방적으로 45페이지나 삭제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이달초 미중 무역회담에서 합의한 7개분야 150페이지에 달하는 합의문 초안을 105페이지로 수정 및 축소한 뒤 일방적으로 미국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분량으로만 보면 전체 합의의 30%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그러면서 지난 5개월간 쌓아올린 무역회담이 파탄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일 중국에 관세 폭탄 트윗을 날렸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이 합의안을 삭제한 뒤 미국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시점에 이미 결정돼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4월말까지만 해도 미중 무역협상은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류허 중국 부총리 등 양국 협상단은 워싱턴과 베이징을 오가며 11차례에 거친 만남을 통해 대부분의 합의를 마쳤다. 양측은 "나머지 10%만 남았다"며 최종 조율만을 남겨놓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시점부터 중국 공산당 강경파들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대미협상 정책을 바꾸라는 목소리를 거세게 내기 시작했다. 원만한 타협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중국 지도부 내에서 일임한 범위 그 이상으로 양보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결국 중국은 미국측이 요구한 중국 구조 개혁 실행을 담보하는 법적조치 등 양국이 합의한 내용을 어길 경우 행해지는 다양한 패널티를 모두 삭제한 텅빈 합의문을 보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남은 "105페이지 합의문은 단순한 문자의 나열에 불과할 정도"라면서 "일부러 트럼프를 화나게 행동한 것처럼까지 보일 정도"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올 신중국 창립 70주년을 맞아 애국주의 물결이 높아지면서 보수 강경파인 '잉파이(鷹派)'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티베트 봉기 60주년과 톈안먼 사태 30주년 등 내부적으로 민감한 사안도 산적해 있다는 점도 이번 합의문 삭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니혼게이자이는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이번 무역합의안을 "내정 간섭을 법률로 명문화토록 하는 불평등 조약"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를 아편전쟁 종결 후 청나라와 영국이 맺은 난징조약(1842년), 청일 전쟁의 시모노세키 조약(1895년) 등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과 동일선상에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에 내달 1일부터 600억 달러어치 미국산 수입품에 최대 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것도 이러한 기조에서 나온 강경한 태도라는 분석이다.

지난 9일 워싱턴에 나타난 류허 부총리는 시 주석의 '특사(special envoy)'라는 공식직함이 빠졌다. 그동안 협상을 주도했던 류 부총리의 양보와 타협 자율권이 그만큼 줄어든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3250억달러어치 관세 리스트를 공개하며 6월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서 보자고 예고했다. 미국은 중국의 합의문 실행력에 의문을 품고 있고, 중국은 강경파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어 양측 협상이 장기전으로 돌입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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