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내내 치매 환자와…노인들의 불편한 동거

머니투데이 한민선 기자 2019.06.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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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곧 치매 걸릴 것 같다" 일반 환자 고통 호소…"개인의 특성에 따라 특별 보호 필요"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할머니 김옥순(가명)씨는 치매 환자와 2인실을 함께 쓴다. 손녀인 A씨(29)는 "처음엔 치매 환자의 증상이 심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신을 놓을 정도로 치매가 심해졌다"며 "정신이 또렷하신 할머니가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사회복지사에게 "일반 환자와 병실을 쓰게 해달라"고 항의했지만, "원장님이랑 상의해볼게요"라는 답변만 들었다. A씨는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바뀌지 않으면 강력하게 말할 것"이라면서도 "할머니가 정을 붙이셔서 섣불리 요양원을 옮기기도 쉽지 않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국내 치매환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치매 환자와 요양원에서 방을 함께 쓰는 일반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14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치매센터가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18'에 따르면 지난해 65세이상 노인인구 706만6201명 중 추정치매환자와 추정경도인지장애환자는 총 229만6175명이다.



치매는 정상적으로 생활해오던 사람에게 후천적으로 다양한 원인으로 인지기능의 장애가 나타나,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영향을 주는 상태를 뜻한다. 대표적인 초기 증상은 기억력 장애로 정상 노화와는 다르다.

이들이 갈 수 있는 요양원 등 시설급여 제공 기관은 전국에 5304개다. 이 시설을 치매 증상이 있는 노인들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요양급여수급자(노인성질환을 가진 65세 미만의 환자 포함), 65세 이상 기초수급자 등은 모두 입원 자격 기준이 있다.

시설을 이용하고자 하는 노인은 많은데, 가고 싶은 시설의 수는 한정돼 있다. 특히 치매 환자만 따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치매전담실이 제대로 갖춰진 노인요양시설은 더욱 부족한 상태다.


/사진=중앙치매센터 홈페이지 캡처/사진=중앙치매센터 홈페이지 캡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치매 환자와 치매가 없는 환자은 종종 같은 병실을 쓰게 된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노인의료복지시설은 치매노인은 치매의 정도에 따라 분리해 보호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임의로 칸막이를 설치하는 것은 불법이다.

치매전담실이 있는 경우 두 환자가 따로 생활한다. 전담실에 이용자가 1명이라도 있으면 일반 환자는 있을 수 없다. 반면 치매전담실이 없는 경우는 같은 병실에서 함께 지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서울 근교에 위치한 요양원에 문의를 해보니 "최대한 배려를 해드리고 있지만, 사정상 치매 환자와 한 방을 쓰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매는 다른 병에 비해 유독 보호자들의 스트레스가 큰 병으로 알려져 있다. 망상과 의심·공격성 등 정신행동 증상이 있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병의 특징 때문이다. 지난달 군산의 한 80대 노인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10년간 보살피다 아내를 흉기와 둔기를 이용해 살해하고 경찰에 자백한 바 있다.

타의로 방을 함께 써야 하는 일반 환자들은 고통을 호소한다. 서울 중구에 거주하는 김모씨(75)는 "거동이 불편한 친구가 요양원에 있는데, '나도 곧 치매에 걸릴 것 같다'고 하더라"며 "치매환자가 밤새 혼잣말을 하고, 눈을 떠보면 자기를 지켜보고 있을 때도 있어 무섭다고 했다"고 전했다

환자가 병원을 스스로 옮기는 것 외에는 다른 해결 방안은 없다.

국민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관계자는 "현재 장기요양 급여를 이용하는 것은 장기요양수급자 및 보호자의 선택권한으로 이용 중인 요양시설을 옮기는 것은 원하는 곳으로 선택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며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희망하시는 병, 의원을 선택해 이용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면 쉽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 비치매환자와 치매환자의 동일 병실 사용 등에 대해 항의할 수 있는 절차나 법적인 근거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일반환자와 그 보호자들은 "치매를 앓고 있지 않은 환자들의 인권이 지켜져야 한다"며 "정신적 안정은 물론 신체적 보호도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치매 환자도 차별화된 전문 관리·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임춘식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은 "원칙적으로 치매 환자와 일반 환자가 격리돼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초기 단계라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혼숙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들이 같이 있게 되면 서비스 질이 하락된다. 학대이자 인권유린"이라고 밝혔다.

이어 "환자들의 성별, 증상, 성격 등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사회복지에서는 이를 '개별화'라고 본다"며 "개인의 특성에 따라 특별 보호를 할 필요가 있다. 학교처럼 특별 보호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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