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라고 밤마다 경찰서·학부모 전화... "교사도 직장인"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05.15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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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직업적 페르소나와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 지수 높아… "꼭 주어진 의무만 다하는 방식 필요"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그동안 스승에게는 무거운 사명감과 책임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교사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누군가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지고 이끄는 '스승'이 아닌, 단순히 '교육 전문가'로 대우해달라는 것이다.

◇'스승'이란 단어 무게… "밤 늦게 경찰서 그만 불려가고 싶어"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이 2013년 12월 전국 교사 50명을 대상으로 '교사로서 겪는 심리적 어려움'에 대해 조사한 결과 교사들은 직업적 페르소나(사회적 가면)와 책임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교사들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폭언 등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맥락 없는 학부모 민원이 들어와도 참고 견뎌야 했다고 답했다. 스승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대구시내 한 중학교 국어교사 A씨는 "학생들 때문에 밤 늦게 경찰서에 불려 가기도 하고, 갑자기 부모와 연락하는 일도 있다. 이런 업무가 당연시되보니 담임을 맡는 게 부담된다"고 말했다.



질병·부상으로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우면 휴가를 쓸 수 있지만 '그림의 떡'이다. 수업을 비우지 않는 게 교사의 책임감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서울시내 한 중학교 교사 B씨는 "건강검진을 하니 당장 수술해서 혹을 떼내야 한다더라"며 "교사는 연차를 쓰기 어려운 분위기라 방학까지 몇달을 더 참고 버텼더니 혹이 더 커졌다"고 하소연했다.

당연히 스트레스도 많다. 마인드프리즘 조사 결과 교사들의 스트레스 평균 점수는 '주의 단계'였다. 적절히 관리하지 않을 경우 의학적 경고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 단계다.

교사의 '우울한 감정' 평균 점수(49.8)와 '비관적 사고' 평균 점수(47.6)는 일반 직장인 1000명 집단의 '우울한 감정' 평균 점수(45.9)와 '비관적 사고' 평균 점수(45.5)보다 높았다.


◇"많은 걸 요구 마세요… 교사도 직업 중 하나"
이 때문에 일부 교사들은 본인을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일종의 교육 서비스 제공자로서 대해달라고 요청했다. 스승에게 드리워진 무거운 굴레를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삽화=김현정 디자인 기자/삽화=김현정 디자인 기자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박모씨는 "정말 급할 때 연락하라고 학부모들에게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려줬는데, 퇴근 후 오는 카톡 세례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후회했다. 그는 "교사도 그냥 직업인데,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는 느낌이 든다"며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걸로 역할이 충분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오모씨는 "아이를 맡길 땐 스승이라며 많은 걸 바라고, 아이가 잘못되면 서비스직 대하듯 한다"며 "퇴근 후 매일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도 벅찬데 더 많은 걸 요구하니 힘들다"고 호소했다.

이런 중압감은 직업 만족도도 낮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3년 34개 회원국 교사들을 대상으로 만족도와 근무 환경 등을 조사한 결과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을 후회한다"는 응답은 한국(20.1%)이 OECD 평균(9.5%)에 비해 두 배 정도 많았다. "다시 선택해도 교사가 되겠다"는 응답도 한국(63.4%)이 OECD 평균(77.5%)보다 낮았다.

사기도 저하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 13일 제38회 스승의 날을 앞두고 발표한 '교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 최근 1~2년간 교원들의 사기가 떨어졌는지 묻는 문항에 전체의 87.4%가 '떨어졌다'고 답했다. 이는 2009년 이후 해마다 같은 문항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가운데 역대 최고치다. 2009년에는 55.3%였다.

전문가들은 교사들 스스로 부담감을 낮춰야 한다고 조언하는 한편 학부모들도 교사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은 "스승으로서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이에 적응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이 같은 의무에 부담감을 느끼고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를 분리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이들은 교사로서 꼭 해야하는 의무만 다하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줄여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마인드프리즘 관계자는 "교사 중 많은 수는 직업적 소명감 때문에 외부에 직업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토로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쉽게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직업이니 당연히 무엇쯤은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요구할 수 있지만, 교사들은 그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곪아간다. 우리가 '스승'이라며 교사들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게 아닌지 되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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