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회 정개특위, 'VR 회의'로 한다면?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2019.05.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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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의원들이 의안과에서 법안 접수를 막을 것 같습니다. 가보셔야 됩니다.”

후배의 다급한 전화에 화를 냈다. 몸으로 법안 제출을 막는다는 우려에 코웃음이 나왔다. 수개월 전까지 취재했던 중소벤처기업계가 떠올랐다. 팩스는, 이메일은, 전자입법은. 무슨 수로 막겠느냐며 핀잔을 줬다. 새삼 5G(5세대 이동통신) 시대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국회를 무시하지 말라”고 했다.

후배가 옳았다는 게 입증되기까지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안과를 점거하고 팩스로 전달된 법안 일부를 가로챘다. 의안과 직원들 옆에 서서 ‘이메일 법안’ 처리도 막았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법안이 동봉된 서류를 손수 들고 의안과를 찾았다. 밤새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21세기 대한민국 국회의 실상이다.



세상은 변하는데 국회는 제자리다. 비대면 회의가 화상 의회를 넘어 VR(가상현실), 홀로그램 회의로 무한 진화하는 데 ‘딴 세상’ 이야기다. 시장의 주요 의사 결정권자들이 스마트폰, 태블릿PC를 움켜쥐고 전세계를 누비는 데도 관심 없다. 회의는 회의실에서, 의사 결정은 문서를 고집한다. 국내 벤처업계의 ‘디지털 노마드(유목민)’ 성공 사례를 듣고서야 “국회가 제일 느린 것 같다”며 고개를 떨군다.

비대면 회의가 자리 잡으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저지를 위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회의실을 점거하는 촌극은 사라진다. 데스크톱에서 해방되면 지역 행사를 핑계로 국회 회의에 불참하는 일도 없다. 선진 국회를 위해 혁신 기술이 ‘국회 선진화법’보다 더욱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셈이다.



의안과를 둘러싼 민주당과 한국당의 대치는 ‘전자입법 발의 시스템’으로 해소됐다. 2005년 도입된 후 14년이 지나서야 처음 사용됐다. 기술력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생존을 위해 혁신에 사활을 건 시장을 보면서, 국회는 어떤 노력을 하는지 돌아볼 때다.
[기자수첩]국회 정개특위, 'VR 회의'로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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