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다급한 전화에 화를 냈다. 몸으로 법안 제출을 막는다는 우려에 코웃음이 나왔다. 수개월 전까지 취재했던 중소벤처기업계가 떠올랐다. 팩스는, 이메일은, 전자입법은. 무슨 수로 막겠느냐며 핀잔을 줬다. 새삼 5G(5세대 이동통신) 시대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국회를 무시하지 말라”고 했다.
후배가 옳았다는 게 입증되기까지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안과를 점거하고 팩스로 전달된 법안 일부를 가로챘다. 의안과 직원들 옆에 서서 ‘이메일 법안’ 처리도 막았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법안이 동봉된 서류를 손수 들고 의안과를 찾았다. 밤새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21세기 대한민국 국회의 실상이다.
비대면 회의가 자리 잡으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저지를 위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회의실을 점거하는 촌극은 사라진다. 데스크톱에서 해방되면 지역 행사를 핑계로 국회 회의에 불참하는 일도 없다. 선진 국회를 위해 혁신 기술이 ‘국회 선진화법’보다 더욱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