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물밑서 김정은에 '통큰 조치' 설득…韓중재역 도울 수도"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19.04.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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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장세호 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북핵 러시아 안보이익에 반해"..."북러 회담 중국과도 교감"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 부연구위원/사진=권다희 기자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 부연구위원/사진=권다희 기자


"러시아가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 입장을 지지해주면서 물밑에서는 북한에도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러시아가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한국의 역할을 도울 수 있다."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3일 머니투데이 더300과 인터뷰에서 25일로 예상되는 북러 정상회담에서 '중재자'로서 러시아의 역할이 부각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장 연구위원은 지난 17~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세미나에서 러시아 학자와 전직 관료들을 만나 북러 정상회담에 대한 생각을 직접 청취했다.

장 연구위원은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싶어했고 개입의 때를 기다려 왔는데 하노이 회담 결렬로 관여의 기회가 생겼다고 기대하고 있다"며 "이 기회를 잘 활용하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오랜 기간 원해 왔다. 다자체제 구축이 북핵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동북아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위상을 키우기 위한 장기 전략이다. 러시아는 극동 시베리아 지역 개발 등을 위해 동북아 지역에서 경제뿐 아니라 안보적으로 안정적인 구조적 틀을 필요로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구축되는 다자체제를 통해 틀을 만들 수 있다고 구상할 수 있다.

-대북제재 하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회의론도 있다.
▶애초에 획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바라고 여는 회담이 아니다. 회담이 열리는 맥락이 중요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결렬 후 '판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다 열세를 최소화하기 위해 택한 선택이 북러 정상회담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 입장에선 '혼자가 아니다'는 걸 보여주고 '우군'들로부터 지지를 끌어 내는 상징적인 성과가 필요하다.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와 관련한 어떤 메시지가 공표될까.
▶러시아가 북한이 주장해 온 '단계적·동시적 해법'에 대한 지지를 표할 수 있다. 비핵화 진전에 따른 제재완화 등 상응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낼 수 있다. 지금까지 꾸준히 주장해 온 내용들이어서 러시아 입장에서 부담스럽지 않다. 북한에 힘도 실어 줄 수 있다.


다만 러시아가 독자적으로 제재완화를 추진하는 건 어렵다. 제재때문에 경제협력과 관련한 큰 돌파구를 열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송환 연기도 '노력'은 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이 향후의비핵화 프로세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러시아는 북한의 핵개발을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자국의 안보 이익과 경제적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극동 시베리아 지역 개발을 위한 역내 국가들과 협력에 북핵 문제가 늘 걸림돌이 돼 왔다. 안보적으로도 달갑지 않다. 북한의 핵개발을 명확히 반대하면서 해결방법에 있어선 외교적, 정치적 해결을 주장하고 군사적 해결에 반대해 왔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을 때마다 '대화로 풀자'고 한 게 러시아다.

하노이 이후 상황이 최악까지는 아니지만 위험요소가 잠복해 있으므로 북한에 '도발을 자제하고 대화를 이어가라'고 명확히 얘기할 것이다. 북한이 대화 트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긍정적 요인이다. 북미 중재에 있어서도 러시아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한도 '통 큰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득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역할을 돕는 격이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우리 정부가 공식화 했다. 북러 회담이 변수가 될 수 있을까.
▶북한은 의도적으로 올해 상반기까지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러시아·중국과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정상회담은 그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제재해제에 목말라 있다거나 조급해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국, 미국과의 만남을 최대한 늦출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강조해 발신한 '서두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러시아가 희망하는 다자체제 구축의 실현 가능성은.
▶비핵화가 진전되는 어느 시점부터는 필연적으로 다자체제가 구성될 것이다. 비핵화를 기술적으로 종결짓는 문제와 경제적 보상 문제는 북미 양자가 해결하기 어렵다. 예컨대 북한의 핵무기를 미국 영토로 반출하는 데 북한의 거부감이 상당할 수 있다. 북한 내부에서 검증단 입회 하에 해체하거나 제3국으로 반출하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경제적 보상도 미국이 혼자 부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제네바 합의 후 만들어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만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이 개입했다. 당장의 굵직한 문제는 북미가 풀어야 하지만, 비핵화의 어느 단계에 진입하면 결국 역내 이해당사국들이 필연적으로 개입하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자틀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러시아도 이 부분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우선권을 늘 인정해 왔고 현재도 그렇다. 2017년 북핵 문제에 대한 '포괄적·단계적 로드맵'을 중러가 함께 발표한 것처럼 공조를 하는 동시에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한다. 북러 정상회담도 러시아의 단독행동이 아니라 중러의 교감 속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이미 4차례나 북한과 정상회담을 한 데다 미국과의 관계로 전면에 서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번에는 러시아가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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