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치인의 언어, 선동과 막말 사이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2019.04.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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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40년간 국제정치학을 연구한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는 현실 정치의 다이내믹스를 평가할 때 줄곧 이 점을 강조했다. 정치가 순간의 피아 구별과 이해 득실로만 따져볼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슈에 매몰돼 아웅다웅하지만 종국에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곤두박질 쳐질 비루한 말의 정쟁이라는 냉정한 판단도 포함됐다.



“세월호 유가족, 징하게 해처먹는다”, “징글징글 하다”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의 ‘막말’이 세월호 5주기날 고개를 들었다.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내용인데 현실이다. 분통, 욕설, 막말은 논리적 설득 전에 사람들의 감정을 들끓게 만든다. 정치인의 언어는 선동적이다. 목적과 대상을 명확히 한다. 치밀하게 계산한 뒤 지독하게 파고든다. 언어의 메시지가 빈약할 때 ‘막말’이 더해진다. 정치인들은 마치 전술처럼 막말을 일삼는다.

문제는 그 수준이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잔인하고 너절하며 인간 혐오를 담고 있다. 5.18 순국자들, 세월호 희생자들을 희화화하는 누리꾼이 그랬고 아무렇지 않게 이를 인용한 정치인이 그랬다. 세상에 던져진 막말이 쌓일수록 사회의 수치심은 마비된다. 정치인들은 사과와 반성의 ‘기준’을 낮추며 더 강력한 막말로 감정 자극의 역치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시대 석학으로 꼽히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감정적인 흥분 또는 무의식에 쌓인 억압의 배설이 긴 관점에서 정치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잘못 헤아리는 일”이라고 나즈막히 조언한다.

사람의 마음을 진정 움직이는 것은 ‘막말’이 아닌 삶의 현실의 무게다.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해내는 언어가 우리 정치에도 필요하다. 총선을 1년 앞둔 4월. 국민들의 선택을 다시 받고싶다면 언어의 위엄을 지키고 그 수준을 높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정치인의 조건이자 의무다. 그리고 그 전제는 인간, 삶에 대한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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