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승계목적' 명목회사에 지분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는 위법?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19.04.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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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법원, 삼양식품 회장 장남 증여세 불복소송서 과세당국 패소 판결

[단독] '승계목적' 명목회사에 지분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는 위법?


지난해 횡령 혐의에 유죄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의 장남이 과세당국을 상대로 낸 14억원 규모의 증여세 불복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1인이 100%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 헐값에 자산을 사들였다더라도 그 기업의 주주에게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5부(부장판사 박양준)는 전 회장의 장남 전병우씨가 과세당국을 상대로 2015년 1월에 내린 14억1200만원 상당의 증여세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낸 소송에서 전씨의 청구를 모두 인용하는 원고승소 판결을 지난 2월에 내렸다. 이 사건은 현재 당국의 항소로 서울고법에 접수돼 진행 중이다.



쟁점은 1인 주주기업에 헐값에 자산을 몰아줬을 때 그 기업의 주주에게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2008년 5월 당시 만 14세였던 전씨는 외할머니인 이모씨가 설립한 비글스 주식 100%를 5000만원에 취득했다. 비글스는 삼양식품 라면포장지 사업부문이 분리돼 설립된 한 계열사 A사의 지분을 50% 보유하고 있었다.

별도의 매출실적도 없던 비글스는 2008년말 기준으로 자산총계가 1억900만원에 자기자본은 5800만원에 불과했다. 이렇다 할 사업실적도 없었다. 그런데 비글스는 2009년 6월 A사가 제공한 정기예금 채권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28억1900만원을 빌려 삼양식품 그룹의 계열사들이 보유한 삼양농수산 주식 1만8300주를 주당 12만5000원씩에 매입했다. 이 가격은 과세당국이 적정한 가격이라고 봤던 17만5200원보다 29% 가량 낮은 가격이었다.



삼양농수산(현재 사명은 삼양내츄럴스)은 국내 라면시장의 10~12%를 점유하는 삼양식품의 최대주주로 삼양식품 그룹의 지주사다. 이 거래로 전씨의 비글스는 단숨에 삼양농수산 2대 주주 지위에 올랐다. 삼양농수산 1대주주는 전인장 회장의 부인이자 전씨의 모친인 김정수 대표다.

과세당국이 문제로 삼은 점은 하나 더 있었다. 신주인수권을 대량 인수해서 삼양식품 주식을 늘렸다는 부분이다. 삼양식품은 2009년 6월 150억원 규모의 사모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다. 1961년 창사 이래 삼양식품이 BW를 발행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BW란 채권에 신주인수권, 즉 미리 정해진 가격에 신규발행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이 BW는 당시 5개 기관투자자가 20억~50억원씩 사들였다. 발행 후 두달여가 지난 2009년 8월 전씨가 이 BW에서 발생한 신주인수권 물량 50%를 4억5000만원에 되사들였다. 전씨가 15세였을 때의 일이다.

전씨는 당시 사들인 신주인수권을 자신이 100% 보유한 비글스에 13억원에 매각했다. 비글스는 2011년 6월부터 12월까지 4차례에 걸쳐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47만여주 상당의 삼양식품 주식을 재차 보유하게 됐다.


2015년 1월 과세당국은 "형식적으로는 비글스가 삼양농수산 주식을 저가로 양수하고 신주인수권을 행사했으나 세법적인 실질은 전씨가 각 거래를 통해 이익을 받은 것"이라며 2009년의 삼양농수산 주식 취득 당시와 2011년 신주인수권 행사 당시를 기준으로 총 14억1100여만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이에 전씨 측이 "삼양농수산 주식을 저가로 사들이고 신주인수권을 행사한 주체는 원고와 별개의 법인격 주체인 비글스"라며 "거래 주체가 아닌 원고가 직접 이익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법원은 전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일단 "비글스의 설립경위, 사업활동 내역, 주식·신주인수권 양수대금 및 신주인수권 행사대금 조달방식 등을 종합하면 비글스는 삼양식품 계열사 주식을 통해 비글스의 1인 주주인 전씨로 하여금 삼양식품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시키고자 설립·운영된 명목회사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비글스가 비록 명목회사에 불과하더라도 적법하게 설립된 법인으로 법인격을 가진다"며 "비글스가 삼양농수산, 삼양식품 주식을 취득한 것의 실질이 곧 전씨가 이 주식을 취득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된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삼양식품 그룹 지배구조와 관련해 전씨가 자연인의 지위에서 삼양그룹 관련회사들을 지배할지, 전씨가 비글스만을 중점적으로 지배할 것인지는 실질적인 사업의 영위 못지 않게 중요한 경영상 선택으로 봐야할 것"이라며 "당사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해 비글스를 별개의 독립된 권리의무의 주체로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했다.

1인회사가 사업을 영위하지 않는, 승계만을 목적으로 한 명목회사에 불과하다는 점이 인정됐음에도 주주에 대한 증여세 부과는 위법하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세무담당 회계사는 "법에 의해서만 과세할 수 있다는 조세법률주의와, 경제적 실질에 맞게 조세정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은 항상 부딪히는 양대 원칙"이라며 "당국의 과세권 행사는 국민 권익을 침해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엄격한 조세법률주의 원칙이 강조되곤 한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에서 조세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도 "1인 주주 기업에 대한 과세 부분은 자칫 법인에 대한 법인세와 개인에 대한 증여세가 중복 과세될 수 있는 이슈를 항상 안고 있다"며 "추후 배당소득 발생시 이에 대한 과세가 또 중첩될 수 있기 때문에 재판부가 과세요건을 엄격히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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