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구안 '퇴짜'맞은 금호그룹…'대안' 아시아나 매각뿐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권화순 기자, 이학렬 기자, 기성훈 기자 2019.04.1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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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채권단 "금호그룹 자구안 미흡"…새 자구안 '데드라인 1개월' 내놓을 대안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사진=홍봉진 기자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사진=홍봉진 기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구안이 채권단과 금융당국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시장 반응을 보겠다'고 한지 만 하루도 안 돼 "미흡하다"는 평가를 공식화했다. "그룹의 모든 것을 걸었다"던 금호그룹으로서는 내달 6일 MOU(재무약정) 마감까지 더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한다. 시장에선 아시아나항공 매각 외 뾰족한 수가 없다고 보지만, 금호그룹도 쉽게 포기할 수 없어 당분간 벼랑 끝 혈투가 이어질 전망이다.

KDB산업은행(산은)은 지난 10일 아시아나항공 채권단 회의를 소집해 금호그룹이 제시한 자구안에 대해 논의한 결과 "사재출연 또는 유상증자 등 실질적 방안이 없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11일 밝혔다.



금호그룹은 채권단에 △박삼구 전 회장 부인과 딸의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고 △박 전 회장의 경영 복귀는 없으며 △채권단에 5000억원 지원을 요청하고 △앞으로 3년간 이행 여부를 평가받고 △미달 시 아시아나항공 M&A(인수·합병)를 반대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자구안을 제출했다.

◇채권단 "금호 자구안 '미흡'…금융위원장 "3년 더 달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산은은 "금호그룹이 요청한 5000억원을 채권단이 지원한다 해도 시장 조달의 불확실성으로 앞으로 채권단의 추가 자금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며 거듭 부정적 견해를 표명했다. 산은은 지난 9일 금호그룹이 자구안을 제출한 지 하루 만에 내용을 공개하더니, 또 하루 만에 거부 견해를 밝히면서 강경 대응에 나섰다.



금융당국도 자구안을 혹평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박 전 회장은) 다 내려놓고 퇴진하겠다면서, 3년을 더 달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라며 그동안 아시아나 경영진에게 시간이 없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박 전 회장이 복귀하지 않아도) 아들(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경영한다면 지금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채권단 지원은 대주주 재기가 아닌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억원+α 내놓고 5000억원 요청…채권단 '터무니없어'=채권단과 금융당국의 입장은 금호그룹의 자구안이 기대 이하라는 공감대에서 비롯됐다. 우선 금호그룹은 박 전 회장 일가의 지분 전량을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새 담보는 박 전 회장 부인과 딸의 지분 4.8%뿐이다. 시장에선 자산가치와 앞으로 3년간 수익가치를 고려할 때 약 2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박 전 회장과 아들의 금호고속 지분 42.7%는 이미 산은에 담보로 잡혀 있다. 금호 측 관계자는 "산은이 금호타이어 운영을 위해 쓴 돈인 데다 금호타이어가 이미 매각된 만큼 과거 담보를 해소해 주면, 새로운 담보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 전 회장이 과거 담보였던 금호타이어 지분을 금호고속 지분으로 대체한 이유가 금호산업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서였던 만큼 '담보권을 해소해 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게 산은 입장이다.


요청 자금 규모도 '터무니없다'는 평가다. 아시아나항공의 채권은행 차입금은 4050억원 규모로 알려졌는데, 200억원 규모 지분과 시작도 안 된 자산 매각을 이유로 기존 차입금을 뛰어넘는 5000억원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게 채권단의 중론이다. 보유자산 매각 방안도 불분명하다. 빠르게 매각 가능한 아시아나항공 자회사는 에어서울(지분 100%)와 에어부산(44.17%) 정도인데, 현 주가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도 3000억원을 넘기는 어렵다. 신규 요청한 자금 규모에도 못 미치는 데다 기존 차입금 상환 방안은 아예 빠진 셈이다.

1년 단위로 맺는 MOU를 3년으로 늘리면서 이 기간 내 경영정상화가 되지 않으면 채권단의 아시아나항공 M&A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시간끌기용'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내년 총선 이후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대표 '호남' 기업인 금호그룹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 개입을 기대한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강경한 입장의 현 금융당국, 산은 수장을 일단 피한 뒤 정치권에 기댈 것이란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데드라인 1개월'…아시아나 매각 외 선택지 없어=채권단과 금호그룹은 각각 "상대방과 긴밀히 협의해 향후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호그룹의 선택지는 매우 좁다. 기존 MOU 마감이 내달 6일이며, 이달 내 아시아나항공에 만기 도래하는 차입금 규모만 해도 5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달 내 채권단을 만족시킬 새로운 자구안을 내놓지 못할 경우 파국을 면하기 어렵다.

시장에선 아시아나항공 매각 외 마땅한 대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호그룹이 자체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매각 외 선택지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SK그룹, 한화그룹 등 잠재적 인수 후보군까지 거론되고 있다.

반면 박 전 회장의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애착이 강해 쉽게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그룹 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아시아나항공을 내놓으면, 금호산업·금호고속 외 내세울 만한 회사가 없어 그룹 위상도 크게 추락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호그룹에는 돈이 될 만한 자산도 많지 않고 총수 역시 출연할 사재가 부족하다"며 "남은 한 달여 동안 채권단과 금호그룹 간의 벼랑 끝 혈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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