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시장개혁 촉발 신외감법…진통 불구 '가야할 길'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배규민 기자, 김명룡 기자, 박계현 기자 2019.04.0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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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회계발 시장 개혁 시작됐다]②기존 체제와의 결별, 초기 갈등 불가피

감사인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한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인 ‘신(新)외부감사법’ 도입은 우리 경제 전반에 걸쳐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만큼 갈등과 진통, 그리고 초기 혼란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분식회계 등 회계와 관련한 큰 사건들이 많이 있었지만, 시장 개혁을 이끌 정도의 파동은 없었다. 이번 신외감법 도입은 기업과 회계법인 모두 '회계 투명성' 문제에 엄중한 책임감을 갖고 접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는 우리 사회에 회계 투명성에 눈을 뜨게 했고, 이에 마련된 신외감법은 2017년 9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민·관이 합동 회계개혁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세부안을 만들고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됐다.

[MT리포트]시장개혁 촉발 신외감법…진통 불구 '가야할 길'


신외감법은 △표준감사시간 도입 △회계 부정 및 부실감사에 대한 제재 강화 △상장사 주기적 감사인 지정 △외부 감사대상 회사 확대 △회사의 내부회계관리제도 실효성 강화 등을 담고 있다. 모두 우리 경제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제도들이다.



표준감사시간은 적절한 감사품질 확보를 위해 감사인이 최소한 투입해야 할 표준시간을 보장해 주는 제도다. 수차례 공청회 등을 거쳐 최종안이 확정됐지만, 감사비용 상승을 우려하는 기업들의 반대에 갈등은 컸다.

실제로 시가총액 1000억원대 코스닥 상장사인 A기업은 올해 기존 회계법인과 감사인 선임 계약을 체결하면서 기존 4000만원이던 감사비용을 7000만원으로 1년만에 75% 인상해야 했다.

통상 기업과 회계법인은 통상 3년 단위로 감사인을 재지정하고 연 단위로 보수 협상을 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회계법인을 변경하지 않기 때문에 1년 차보다 2년 차, 2년 차보다 3년 차에 감사 보수를 소폭 인상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올해부터 표준감사시간이 도입되면서 회계법인들이 보수를 최소 120~200%까지 높여 부르고 있다.


A 기업 대표는 "기존에는 양측이 보수가 협의가 되지 않으면 감사인을 다른 회계법인으로 바꿀 수 있었는데 최근엔 업계 전체가 이 같은 상황이라 보수 협상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회계업계는 정당한 보수책정이라고 맞선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그동안 감사시간 부족에 따른 애로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감사보수 증가는 감사투입 시간이 늘어난 결과이지 단가를 올린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회계업계 내에도 불만은 있다. 일부 중소형 회계법인들은 표준감사시간 산출에 활용되는 감사인숙련도의 경력별 가중치에 불만을 나타냈다. 경력 15년 이상 회계사의 가중치가 경력 2년 이상 6년 미만의 회계사 대비 불과 1.2배로 설정됐기 때문. '빅4' 회계법인들은 회계사 시험 합격자들을 대부분 채용해 연차가 낮은 회계사가 많은 반면, 중소형 회계법인들은 경력이 많은 회계사 비중이 높은 편이다.

금융당국도 불안하다. 과도하게 감사보수 인상을 요구하는 회계법인은 신고 받고 제재하기로 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 시행된다. 그동안은 기업과 회계법인은 일감을 주고 받는 ‘갑을관계’로 사실상 제대로 된 외부감사가 이뤄지기 힘든 구조였다. 실제로 주요 대기업들의 감사인은 상당수가 수십 년째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 기업은 6년 연속으로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하고 이후 3년 동안은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감사인을 선임해야 한다. 감사인이 바뀌면 과거 감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깐깐하게 감사 잣대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회계처리 방식 및 책임 등을 놓고 법적 공방도 벌어질 수 있다.

과도한 회계처리로 인한 갈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정감사인의 요구로 뒤늦게 잠정실적은 바꾼 B사의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지정감사인이 전(前)기 감사인이 했던 감사보고서 상의 실적을 바꾸라는 요구도 했다"며 "기존 내용을 다 뒤집어야하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법인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회계와 관련해 너무 많은 요구를 하고 있다"며 "지정감사인의 요구를 물리적으로 다 맞출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회사는 최근 회계 관련 이슈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회사가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는데, 이후 감사인의 의견에 따라 적자로 실적이 바뀌었다. 회사가 수익으로 잡은 부분을 감사인이 인정하지 않아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못해서다. 그는 "기존에 해오던 회계 방식을 모조리 뒤집으면 기업이 대응할 시간이 없다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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