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도입 20년…잔혹(?)한 낙마의 역사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2019.04.0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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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과거 박근혜 정부 10명 낙마 '최다'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3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를 발표하고 있다. 2019.03.31.  pak7130@newsis.com / 사진=박진희【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3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를 발표하고 있다. 2019.03.31. [email protected] / 사진=박진희


2000년 6월. 15대 국회는 고위공직자의 능력과 자질, 도덕성 등 적격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인사청문회법 제정을 통해서다. 청문회 대상은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대법관 등으로 한정지었다.

2005년, 참여정부와 17대 국회는 인사청문 대상을 적극 확대했다.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은 물론이고 장관 등 모든 국무위원이 인사청문을 거치도록 했다. 다만, 청문회는 개최할 뿐 임명동의안 표결의무나 국회의 적격여부 보고서를 대통령이 따를 의무는 없도록 했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 정부마다 고위직의 낙마 잔혹사는 끊이지 않았다. 이유도 부동산 투기부터 탈세, 자녀의 병역기피, 위장전입, 음주운전 등 다양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과 함께 '7대 인사 배제 기준'으로 △병역기피 △세금탈루 △불법적 재산증식 △위장전입 △연구 부정행위 △음주운전 △성 범죄 등을 세운 배경이다.



◇고위직 낙마 잔혹사…이명박정부 8명·박근혜정부 10명= 김대중 정부에서 2명, 노무현 정부에서는 3명, 이명박 정부에서는 8명이 각각 낙마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10명이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장상 전 총리 지명자 겸 2010년 민주당 서울은평을 후보 / 사진제공=민주당장상 전 총리 지명자 겸 2010년 민주당 서울은평을 후보 / 사진제공=민주당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2년,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는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코드 인사'라는 이유로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병준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낙마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부동산 투기와 탈세, 위장 전입 등 도덕성과 자질 등이 논란이 됐다.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의 총리지명은 박연차 게이트 연루, 도지사 직권남용, 세금신고 누락 등이 논란이 됐다.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더욱 여론이 악화하자 청문회 이후 자진 사퇴 했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스폰서 검사' 의혹으로 인사청문회 뒤 사퇴했고,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남주홍 통일부장관 후보자, 이춘호 여가부장관 후보자, 박은경 환경부장관 후보자 등도 장관 지명 뒤 물러났다.
문창극 국무총리후보자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별관으로 출근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문창극 국무총리후보자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별관으로 출근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역대 정부 중 낙마자가 10명으로 가장 많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 등 총리 후보자들이 청문회를 해보지도 못하고 줄줄이 낙마했다. 2016년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을 당시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내세웠지만, 탄핵 정국 속에서 국회 인사청문특위도 구성되지 않아 인사청문회도 열리지 못했다.

이밖에 김종훈 미래부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정성근 문체부장관후보자,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등도 각각 낙마했다.


◇文정부 내각 1기 잔혹사…안경환(법무)·조대엽(노동)·박상진(중소벤처)=첫 번째 자진사퇴 사례는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지명된 안 후보자는 지명 닷새만인 2017년 6월16일 밤 전격 사퇴의사를 밝혔다.

안 후보자는 교제하던 여성이 결혼을 망설이자 도장을 위조해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가 이듬해 법원에서 혼인무효 판결을 받은 기록으로 논란을 빚었다. 이밖에 아들의 하나고 재학 당시 퇴학 결정에 대한 안 후보자의 압력, 본인의 저술에서 드러난 왜곡된 여성관 의혹 등으로 야당의 집중 공격 대상으로 시달렸다. 그는 "문재인정부 개혁 추진의 걸림돌이 될 수 없어 직을 내려놓는다"는 입장 발표와 함께 물러났다.
'여성비하·허위 혼인신고' 등의 추문에 휩싸인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에서 자처한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여성비하·허위 혼인신고' 등의 추문에 휩싸인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에서 자처한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가 뒤를 이었다. 조 후보자는 이례적으로 '1박2일'간 이뤄진 인사청문회까지 마치며 33일을 버텼다. 하지만 음주운전 등 본인의 신상 오점과 사외이사를 맡았던 한국여론방송의 임금체불이 가장 크게 문제가 됐다. 야권은 이밖에도 임야 불법 용도 변경, 직계존속 재산신고 누락, 모친을 부양하지 않았는데도 소득 공제를 받은 의혹 등도 제기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결국 조 후보자는 고용노동부를 통한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본인의 임명 여부가 정국 타개의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 사퇴의 길을 택하겠다"며 물러났다.

세 번째 낙마는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다. 청와대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적임자를 찾지 못해 8월24일에서야 당시 포항공대 산학처장 겸 포스텍 기술지주대표이사를 지명했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박 후보자는 창조과학회 활동과 뉴라이트 역사관 등으로 논란을 빚었다. 여기에 부동산 다운계약서, 주식 무상 증여 등에 시달리며 사퇴 압력을 받았다. 박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거쳤으나 종교관, 역사관 논란을 오히려 키웠다.

특히 사전 기자회견에서 "창조론자가 아니라 창조신앙"이라고 해명했던 것과 달리, 청문회장에서 '지구의 나이'를 묻는 여당 의원의 질문에 "지구 나이는 신앙적으로 6000년"이라고 답하면서 자질 논란이 확산됐다.

결국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민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박성진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부적격하다"는 청문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로부터 이틀 뒤 박 후보자는 "제가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한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여 자신 사퇴를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성과 집중' 한다던 文정부 2기 개각서 첫 지명철회= 청와대는 31일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현정부 들어 처음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고도 수그러 들지 않는 비판여론을 의식한 판단이다.

청와대는 조 후보자가 인사검증 과정에서 "부실학회에 참석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는데 인사청문과정에서 참석한 것이 밝혀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사실(조 후보자의 오믹스 학회 참석)을 알게 된 이후 지명철회를 심각하게 생각했다"며 "부실학회 참석은 지명철회의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조 후보자는 대표적 해적 학술단체로 꼽히는 인도계 학술단체 오믹스(OMICS International) 관련 학회에 참석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을 빚어왔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
또 청와대는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 의사도 받아들였다. 최 후보자는 자진 사퇴의 모양새를 취했지만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여론이 안좋은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경기도 분당과 서울 강남에 아파트 한 채씩을 보유하고, 세종시에 아파트 분양권을 가져 사실상 3주택자인 전력으로 국토부 장관 자질 논란을 겪었다. 최 후보자 본인도 지난 25일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며 사과한 바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청와대 측에 조동호·최정호 후보자를 끝까지 안고 가기에는 국민 여론이 좋지 않다는 뜻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뒤늦게 부동산 투자 및 투기 문제의 경우 7대 배제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부동산 보유 사실을 알고서도 지명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집이 여러 채이기 때문에 장관을 할 수 없다 이런 원칙이 있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민의 눈높이'를 의식해 향후 부동산 투기도 인사검증 기준으로 추가할 수 있음을 거론했다. 윤 수석은 "7대 인사 배제기준의 강화를 논의할 시점이 온 것 같다"며 "부동산 투기 등을 포함시킬 지 여부는 검토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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