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가 만난 인천…청년 김창수와 거인 백범에게 인천이란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19.03.3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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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환 박사 ‘청년 김구가 만난 인천, 사람들' 펴내…인천서 사형당할 뻔 했다 새 사상에 눈뜨고 개명해

김구가 만난 인천…청년 김창수와 거인 백범에게 인천이란


해방공간과 독립운동의 거인 백범 김구에게는 대한민국 국토 어느 한곳도 눈에 밟히지 않는 곳이 없다. 그중 한곳 개항과 문물 유입의 거점이었던 인천이라면 어떨까.

인천의 역사학자이자 시민운동가인 이희환 박사(황해문화 편집위원)의 ‘청년 김구가 만난 인천, 사람들'(명문미디어아트팩 펴냄)을 보면 인천과 김구의 인연을 읽을 수 있다. 올해는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백범 서거 70주년이다.



김구는 백범일지를 통해 ‘1946년(민국 28년)을 맞이하자 나는 38선 이남 지방 순회를 시작하였다. 제1차로 인천을 순시하였는데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라 할 수 있다’고 썼다.

서거 70주년이 올해지만 백범은 본래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국모(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겠다며 쓰치다라는 일본인을 죽인 후, 인천감리서에 복역하며 사형 선고(당시는 김창수)를 받았었다. 이후 고종의 특사로 감형돼 복역 중 1898년 탈옥하여 승려가 되었다가 이듬해 환속, 1903년 기독교에 입교했다. 이희환 박사는 청년 김구가 겪었던 인천, 백범 김구가 만났던 인천 사람들을 새롭게 조명했다.



인천은 그에게 죽음과 삶의 경계에 해당하는 접점일 수 있는 것. 백범의 눈에 비친 인천 뿐만 아니라 청년 김창수에게 김구라는 이름을 지어준 민족운동가 백초 유완무 선생 외에도 김창수에게 책을 전해준 감리서의 간수부터 김창수가 글을 가르쳐준 죄수들을 비롯해, 김창수의 재판에 참석했던 숱한 인천 사람들을 두루 그렸다.

백범의 행적 외에도 그가 활동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인천이 어떻게 연결돼 있었는지를 만오 홍진 선생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만오 홍진은 훗날 국내외 임시정부(상해임시정부, 한성임시정부, 노령임시정부) 통합의 기초가 되는 한성임시정부 수립의 주역이다.

인천 출신의 소설가인 이원규는 추천사를 통해 “이희환 박사의 저술은 인천인의 집단 기억 속에 있는 백범과 유완무 선생의 관계를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고 나아가 인천 근대사의 부족했던 한 부분을 채우고 있다”고 했다.


저자는 인천이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 개항된 식민도시로만 기억되는 시각을 조금이나마 교정하고 인천 시민들이 이 땅에서 살았던 의로운 사람들의 역사를 기억해준다면 감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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