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카르텔│‘YG전자’ 다시보기

이예지(칼럼니스트) ize 기자 2019.03.2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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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게이트’ 이후, 우리는 과연 YG가 제작한 코미디 시트콤 ‘YG전자’를 보면서 웃을 수 있을까. 지금 이 시점에 우리는 무엇을 보고 웃어야 하는가. 대신에 이 시트콤을 통해 YG엔터테인먼트와 그들이 유머라고 주장하는 것들에 관해서만큼은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굳이 ‘YG전자’를 다시 보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승리 카르텔│‘YG전자’ 다시보기


# “승리 씨 자는 얼굴 좀 보세요. 너무 평화롭지 않습니까?”
‘YG전자’에서 승리가 과거 일본 여성에게 잠든 모습을 찍혀 대서특필됐던 사진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치다. 이 시트콤은 승리가 ‘몰카’에 찍히는 걸로 착각해 폭력을 휘두르다 좌천되면서 시작한다. 이후에도 패러디는 계속된다. 잘 때 찍히지 말라고 가짜 눈을 선물 받고, 아나운서는 말한다. “승리 씨는 종종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고 잠이 들면 사진을 찍히곤 했습니다. 승리 씨 자는 얼굴 좀 보세요. 너무 평화롭지 않습니까?” 그 뿐 아니다. 자는 맨몸을 찍는 라이브 방송을 중계하고, 남자 아이돌 멤버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발기한 모습에 몰래 ‘폰카’를 들이댄다.
여기서 한 가지 기묘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시트콤에서 ‘몰카’를 당하는 대상은 대부분 남자다. 코미디는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일 혹은 권력관계를 전복했을 때 발생한다. 남성이 여성을 ‘불법촬영’하는 건 일상적인 범죄이며 웃음기가 싹 가시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전복해 여성이 남성을 ‘불법촬영’하는 건 개그의 소재가 된다. 불법촬영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인데다, 남성이 피해자가 될 때도 피해 정도가 여성이 당하는 것보다는 적기 때문이다. 한 여성 아이돌은 제발 유출만은 말아달라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 승리가 여성 아이돌이었다면, 자신이 자고 있는 모습이 찍힌 ‘몰카’를 코미디 요소로 활용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거니 괜찮지 않냐고? 괜찮지 않다. 이건 남자는 불법촬영을 당해도 고작 ‘우스운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나아가, 오히려 자신의 화려한 성생활을 전시하며 본인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행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승리가 속한 채팅방에서 정준영은 사냥감을 전시하듯 수시로 불법촬영물을 올렸다. 그건 전혀 웃기지 않다.

# “팬티 내리기 전에 이 여자랑 사귈 건지 한 번 더 생각하라.”
‘YG전자’에 첫 출근한 모델은 투자자와의 ‘몸캠’을 강요받으며 억지로 옷이 벗겨진다. 그리고 울면서 회사를 뛰쳐나간다. 이게 정말 재미있나? 승리는 재미있었나보다. 문제의 ‘단톡방’ 발언들을 보면, 승리는 투자자의 테이블에 “잘 주는 애들로” 여성들을 앉히라고 지시했고 사업관계자에게는 성매매를 알선한다. 노출한 각국의 여성들 가운데 서서 자랑스럽게 잔을 들어 올리는 사진을 찍고, 섬을 빌려 성매매 여성들을 불러 파티를 하고, ‘개츠비’ 타령을 하던 그에게 자본에 여성의 몸을 연계하는 일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터다. 뭐, 이미 사람들은 YG의 ‘돈 자랑’하는 남성 아티스트 뮤직비디오에서 헐벗은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 충분히 보지 않았었나? 여성을 재화로 여기는 게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한 예능프로에서는 여성 아이돌에게 “마음에 드는 남자의 잔에 술을 따라라”고해 해당 방송이 징계를 받았다. 성매매 알선이 “일종의 소개팅”이었다며 에 항변하는 걸 보면 승리에겐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티끌조차 없는, 눈처럼 새하얀 백지 같은 상태였으리라. 물론 멍청한 게 면죄부라는 소린 아니다. 후배에게 “팬티 내리기 전에 이 여자랑 사귈 건지 한 번 더 생각하라”고 충고하는 ‘YG전자’의 승리에게 말해주고 싶다. 팬티를 챙겨 입어야 할 건 후배의 하반신보단 그의 백치 같은 마음이라는 걸.



# “저 여자, ‘기모찌’라고 하는데요?”
‘YG전자’는 모든 에피소드 시작 전 밑밥을 깐다. “YG전자는 허구의 코미디이며, 특정 아티스트, 민족, 국가 및 종교를 비하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비하할 의도가 없다고 못을 박는 건 의도가 없되 행했다는 뜻이다. ‘YG전자’에서는 시시때때로 여성, 노인, 중국인, 일본인 여성, 저신장증 장애인 등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며 조롱을 일삼는다. 이 이야기 속 일본 여성팬들은 멍청하고 케이팝스타에 미쳐있다. 뿐만 아니다. ‘SM 체험’이라며 YG 아티스트를 채찍질하게 하는 장면에서 한 남자 출연자는 “‘기모찌’라고 하는데요?”라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한국 남성의 세계에서 일본 여성이란 곧 ‘기모찌’고, ‘YG전자’는 일본 여성들의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희롱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한편 중국인들은 변발을 하고 뚱뚱하며, 신인을 찾는데 나이든 여성이 온 것을 개그 코드로 삼는다. 장애인에 대한 조롱도 본격적이다. 저신장증 장애인은 “YG에도 유리천장은 있다. 제가 능력발휘를 할 수 있느냐는 저들에게 달려있다”고 말하지만 ‘YG전자’는 조롱이라도 하듯 저신장증 장애인 동상을 선물로 주며 그를 전근시킨다. 지금은 21세기다. 이게 웃긴가? 정말로?

# “YG는 진짜 가족입니다.”
일찍이 ‘와이지 패밀리’가 있었다. 컴퍼니도, 크루도, 프렌즈도 아닌 패밀리 말이다. ‘YG전자’ 첫 화에서는 승리에게 “YG는 진짜 가족입니다”라는 문구를 혈서를 쓸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빅뱅이 더 큰일이죠. 지디는 군대 갔고 태양도 결혼하고 군대 갔고, 대성이도 군대 갔고, 승리는 필요 없고.”, “꼬다리 빅뱅 말고.” 같은 대사들로 승리의 빅뱅 내의 입지를 놀린다. 자기 희화화지만 웃을 수 없는 건 그들의 ‘가족됨’이 어떤 방식인지 충분히 보여준 상태였기 때문이다. 승리와 관련된 사건들이 드러난 뒤, 지드래곤이 멤버에게 쓴 롤링페이퍼와 대성의 인터뷰 등이 화제가 됐다. 대성의 말에 따르면 빅뱅은 계급제고, 지드래곤과 태양 등이 귀족, 자신이 평민, 승리가 천민이다. 그만큼 빅뱅은 수직적인 질서의 그룹이라는 것이 여러차례 드러난바 있다. 빅뱅으로 부와 명예를 얻었고, 그 안에서 잘 나가는 수컷의 지위란 어떤 것인지 황홀하게 배웠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리 인정투쟁을 벌여도 타고난 신분을 바꿀 수 없다면,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 승리는 기이할 정도로 돈과 사업, 성공에 욕심을 냈고 그 욕망들은 음지로 뻗어갔다. 가장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룹의 일원임에도 말이다. 그리고 자기만의 왕국에서 그는 ‘형’ 소리를 들으며 군림했다. 물론, 이 파국은 온전히 승리 본인의 성정과 성향이 가져온 말로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단지 그것 때문일까? 빅뱅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YG의 ‘패밀리 문화’는 아버지와 형과 동생의 질서를 나누는 지극히 한국적인 가부장에 기반한 회사라는 것이고, 그 구조 안에서 잘못된 권력 선망이 가질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간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YG는 깨끗합니다.”
승리가 자다 찍힌 사진만큼이나 자주 패러디 되는 게 잦은 마약 사건으로 생긴 YG의 ‘약국’ 이미지다. ‘YG전자’는 2화에 정기 캠페인이라며 처방된 약품 의외 모든 약을 금지하는 ‘클린YG’ 주간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승리는 누군가에게 “어 형, 오늘 회사 안 나와도 될 것 같아. 쉬어”라고 전화하고, 후배에게 “약이나 대마 좀 하지 말라”며 단속하고, YG 내부에서 기르는 봉숭아를 대마로, 밀가루를 마약 가루로 착각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어쨌든 ‘YG전자’는 이미지를 가지고 노는 것이 대단히 ‘쿨’한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승리 본인도 약 문제에 대해선 얼마든지 검사를 받겠다는 등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누가 승리 본인이 약했는지 물어봤나? 승리의 클럽 VIP룸에서 이른바 ‘물뽕’으로 정신을 잃은 여성들에 대해 성폭행과 불법촬영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약에 대하여, 누구도 승리의 건강 상태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다. 단지 그 약을 먹고 정신을 잃어야 했던 여성들에 대해, 그들을 정신 잃게 한 클럽의 암묵적인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있을 뿐이다.

# “프로란 어떤 상황이 닥칠 지 예견해야 한다.”
‘YG전자’ 오프닝에서 양현석의 명언으로 등장하는 이 말을 되묻고 싶다. 정말 이 상황이 닥칠지 몰랐나? 카톡방에서 불법촬영물이 돌아다니고, 성매매 알선, 탈세, ‘물뽕’, 성폭력, 경찰과의 유착, 그 숱한 혐의를 받는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보통 사람들보다 미디어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된 연예인으로서, 그게 정말 문제가 될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나? 본인도, 소속사도 그 누구도?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경외스러운 수준의 확신에 대해 말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 정도로 방심하고 내키는 대로 범법 행위들을 저질러도 괜찮은 사회다. 승리가 개츠비 놀이에 심취해 있는 동안, 사회는 그의 잔치를 묵인했고 일정 부분 지원하기까지 했다. 이젠 승리가 아닌 풋내기 사업가의 범법이 이만큼 용인될 수 있었던 사회에 대해 말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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