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수 교총회장 "교사·학교 바로 서야 학생도 행복"

머니투데이 대담=오동희 사회부장(부국장), 정리=이해인 기자, 사진=홍봉진 기자 2019.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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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교육정책 불확실성이 학교 불신 촉발…신뢰도·안정성 높여야"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사진=홍봉진 기자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사진=홍봉진 기자


"교사는 교사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기본으로 돌아가야 모두 웃을 수 있습니다."

평생을 교육현장에서 보낸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교육통'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무너진 공교육 현장과 더욱 심각해지는 사교육 문제의 원인은 '교육의 신뢰성'에 있다고 강조한다.

교권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교육현장이 망가졌다는 것. 손바닥 뒤집듯 자주 바뀌는 교육정책 때문에 아이들이나 학부모 역시 공교육을 믿지 못하는 등 교육정책의 불확실성이 지금의 사태를 키웠다는 설명이다.



하 회장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baccalaureat)처럼 안정성 있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다만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가교육위원회의 경우 취지는 좋지만 위원 구성이나 기구의 지휘가 정치적 중립성이나 균형성, 현장성을 담보하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위원회가 아닌 독립된 초정권적 기구여야하고 합의제 심의·의결기구여야 한다는 얘기다. 구성면에서는 대통령과 여당 추천 수를 축소하고 학부모, 사학 등 다양한 교육당사자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또 교육계의 이념 싸움과 표싸움을 막기 위해 교육감선거의 '완전공영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 교육을 흔들고 교원의 사기를 꺾는 등 학교 현장을 황폐화시켰다고 진단했다.

체육계 미투부터 자사고 재지정평가 기준 상향, 학교폭력 예방 등 굵직한 교육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하 회장을 만나 교육계 현안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취임 이후 줄곧 '교권 회복'을 강조해왔다. 배경을 설명해 달라.
▶교권 회복이라고 하면 단순히 교원들의 권리 신장으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보다는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호하려는 진정성을 헤아려주길 바란다.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가 있다면 교사는 수업을 위해 말로 타이르고 꾸짖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선 붙잡아 앉히기도 한다. 그런데 싫은 소리 했다고, 몸을 붙잡았다고 아동학대, 성추행 등 체벌 운운한다.


일부 학부모는 늦은 밤 취중에 전화를 걸어 욕을 하거나 학생 자리 배치나 과제에 대한 불만 등 민원성 전화를 하고 녹취한 뒤 소송을 제기하는 등 도를 넘어선 사례들이 빈발하고 있다.

교사는 다른 뾰족한 생활지도 수단이 없다. 송사를 당해도 학부모 선처만 바라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학생지도를 기피하고 결국 피해는 학생에게 돌아간다. 교총이 교권 회복을 부르짖는 건 그것이 교실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교권 회복과 관련해 지금까지 어떤 성과가 있었나.
▶취임 후 1호 결재안이 '교원지위법 개정'일 만큼 교권 보호에 매진해 왔다. 그 결과 선생님들이 아이들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나씩 주춧돌을 놓고 있다. 교원지위법을 비롯해 아동복지법, 학교폭력예방법 등 이른바 '교권 3법' 개정안의 국회 발의를 이끌어내고 차례로 통과시켜 나가고 있다.

아동복지법은 지난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교원지위법과 학교폭력예방법은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다. 두 개 법안까지 통과시켜 교권 3법 개정을 완수함으로써 선생님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를 확립할 계획이다.

-법령도 법령이지만 학생들로부터 교사가 스스로 존경받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되는 것 아닌가.
▶폭력을 휘두르거나 아이들의 인권을 몰살하는 교사들은 일벌백계해야 한다. 선생님은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이다. 이제는 선생님들도 변해야 한다. 많은 연수를 받고 발전해야 아이들도 변할 수 있다.

교총에서는 단순히 교권 회복에만 나서지 않고 선생님들이 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있다. 온라인 연수를 통해 수업지도나 생활지도 방식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인문이나 교양 관련 강좌도 운영하고 있다. 수업의 질을 높이지 않고서는 아이와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갈 때도 교육 분야는 30%대에 그쳤다. 유아 공교육 강화, 교육비리 척결 등 긍정적인 부분도 많지만 정권이 바뀌어 교육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잦은 혼란과 갈등이 반영됐다고 본다. 실제로 대입개편 유예, 오락가락 방과 후 영어 금지, 자사고 존폐 논란, 최근의 유치원 사태까지 리더십과 갈등 조정 능력에 아쉬움이 많다.

-대입개편과 관련해 국민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어떻게 보나.
▶우리 교육의 많은 문제는 대학입시에 연계돼 있다. 대입제도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전형자료로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시험'을 기준으로 17번, 작은 개편까지 합하면 40여 차례 바뀌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의 대입제도인 바칼로레아와 비교해 볼 때 대입제도의 안정성은 고사하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에게 큰 부담과 피로감으로 작용해 왔다.

교육은 쇼가 아니라는 말은 특히나 입시제도를 고민할 때 곱씹어 볼 충고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옳든 그르든 숙려와 공론화를 통해 합의된 개편안을 안착시키며 학생들이 더 이상 혼란 없이 대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런데 벌써부터 국가교육회의 한 위원과 교육감협에서 개편안을 또 얘기하니 걱정이 앞선다.

하윤수 한국교원총연합회 회장./ 사진=홍봉진 기자하윤수 한국교원총연합회 회장./ 사진=홍봉진 기자
-대입개편을 어떤 식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지난 개편안을 착근시키면서 보완할 게 있으면 예측 가능한 선에서 조금씩 개선할 필요가 있다. '3년 예고제'를 지킨다고 해서 1년마다 다른 입시제도가 정당화되는 게 아니다. 지금처럼 고교 학년마다 수능과목이 다른 건 말이 안 된다.

정치이념에 바뀌지 않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입시가 가장 중요한 개선방향이라고 본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경감을 위해 한번 결정한 입시정책이나 제도는 쉽게 바꿀 수 없도록 교육법정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그러면서 긴 호흡으로 교육의 방향과 입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 미래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고,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떤 삶을 영위해야 하며 그러려면 교육은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최근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18에 따르면 한국 성인(25~64세)의 학력별 임금은 고교졸업자를 100으로 봤을 때 전문대 졸업자는 116, 대학 졸업자는 149, 대학원 졸업자는 198로 나타났다.

학벌이 좋은 직장을 좌우하고 학력 간 격차를 공고히 한다는 의미다. 너나없이 대학 진학과 사교육에 목메는 이유다. 결국 입시전쟁의 끝에는 학벌 위주의 사회, 학력 간 임금 격차가 있고 거기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대학입시에 매달리는 학생, 학부모의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건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학력 간 임금 격차, 차별을 해소하는 가칭 '임금차별금지법' 등 법·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국가적 차원에서 병행돼야 한다. 여기에 블라인드 채용, 고졸 채용 활성화 등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사회로의 이행과 인식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기성세대인 학부모들이 학벌사회를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자녀들의 입시경쟁을 한탄하고 공교육을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다. 여기에 교육계는 교육정책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직업교육을 강화토록 해야 한다.

-장기적인 교육 정책 수립을 위해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잘 되리라 보나.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의 근본 취지는 교육정책의 일관성, 안정성, 예측가능성 구현에 있다. 그런데 지난달 국회토론회에서 처음 꺼낸 국가교육위원회법안은 정치적 중립성, 균형성, 현장성에 문제가 있었다.

다행히 교총의 개선 요구로 위원들의 정당가입과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교원단체·대학협의체에 위원 추천권을 부여하는 수정 법률안이 발표된 것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여당에 기울어진 인적 구성과 대통령 소속인 국가교육위의 지위 등은 한계다. 법률안이 국가교육위의 법적 지위를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한 부분은 조정돼야 한다.

사실상 중앙행정기구로 분류돼 국무총리 통제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다. 국가교육위는 선관위처럼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초정권적 기구여야 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중앙행정기구가 아니라 교육비전과 중장기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합의제 심의·의결 기구여야 한다.

무엇보다 위원회 구성에 있어 편향성을 극복하고 중립성을 담보해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 추천 수를 축소하고 학부모, 사립학교 등 다양한 교육당사자의 참여를 늘려 균형성과 중립성을 확보해야 지속 가능한 국가교육위가 될 수 있다.

-시도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요구하는 이유는 뭔가.
▶교육감 직선제는 학교 현장을 황폐화시킨 책임이 크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이 교육을 흔들고 교원들의 사기를 꺾고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대다수 선진국에서조차 왜 교육감직선제를 하지 않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시도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교육감은 단순한 교육정책 집행자가 아니다. 지방교육정책을 결정, 집행하는 독임제 기관장이다. 따라서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교육감선거의 완전 공영제 도입, 교육감 후보 전문성 확보(교육경력 3→10년), 교육감 견제장치 마련(교육위원회 부활) 등 보완 논의가 지금부터 국회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자사고 폐지를 두고 교육계가 시끄럽다. 교육 평준화와 수월성 교육 사이 접점을 찾을 수는 없을까.
▶수월성과 평등성이라는 두 수레바퀴가 균형을 잡고 굴러가야 교육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기초기본교육(평준화 교육) 바탕 위에 잠재력을 극대화해주는 교육(수월성 교육)이 함께 가야지 대립되는 게 아니라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자사고, 외고, 과학고, 특성화고, 예고 등이 수월성 교육을 잘 할 수 있도록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현실은 교육수요자의 다양한 요구가 있는데 평준화의 프레임에 갇혀 '평둔화'(平鈍化)하는 정책만 펴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인재 양성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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