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괜찮아"…'연금술사 프로젝트' 착수

머니투데이 세종=권혜민 기자 2019.03.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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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당 7년간 300억원 지원, 최종 성공·실패 여부 판정 않아…"도전적 R&D 문화 만들 것"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정부가 성공 가능성은 낮지만 산업적 파급력이 높은 고난도 기술 연구개발(R&D)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한다.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난제'를 발굴해 개발 성공과 실패 여부를 묻지 않고 과제당 7년간 300억원을 지원한다. 올해 100억원을 시작으로 6000억원까지 예산 투입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6일 서울 중구 소공로 더플라자 호텔에서 '그랜드챌린지 발굴위원회' 출범행사를 개최하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에 본격 착수한다고 밝혔다.



◇산업판 바꿀 고난도 R&D…'연금술사' 프로젝트=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성공 가능성이 낮은 산업 난제에 도전하는 기술개발 과제를 말한다. '연금술사'를 의미하는 알키미스트(Alchemist)에서 이름을 따 왔다. 철로 금을 만들려던 그리스 연금술사들의 실패한 노력이 현대 화학의 시초가 됐듯, 어렵지만 시장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대도전 과제에 투자하겠다는 취지다.

지금까지 정부 R&D 과제 성과는 성공 여부가 평가의 척도가 돼 왔다. 그러다보니 R&D가 정부 평가와 예산 배정이 유리한 단기 성과 과제에 치중되고, 시장이 필요로 하는 창의적·도전적 연구는 이뤄지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26일 제1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서 "매년 5만개 넘는 정부 R&D 과제의 성공률이 무려 98%에 달한다"고 지적하며 "착오와 실패가 용인되고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수행이 가능하도록 R&D 지원체계를 개편해 달라"고 당부했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도전적 기술 확보를 위한 중장기·대규모 R&D 과제를 중심으로 추진된다.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새 시장을 창출하는 '와해성 기술', 현재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해 산업의 도약을 이끄는 '돌파형 기술' 등이 지원 대상이다. 의약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류 최초 항생제 '페니실린', 다양한 위치정보서비스 산업의 기반이 된 '위성항법시스템(GPS)'이 대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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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당 300억원 지원…연구자 경쟁 '토너먼트형 R&D'=연구는 크게 두 단계에 거쳐 진행된다. 우선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그랜드챌린지 발굴위원회'에서 해결이 필요한 산업계 난제를 발굴한다. 위원회는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거쳐 토론을 통해 최종 기술개발 과제를 공고할 예정이다. 과제를 공고할 때는 구체적인 연구 조건 없이 난제의 개념과 해결 목표 중심의 개념정의서 형태로 제시하기로 했다.

연구 단계에서는 경쟁형식의 '토너먼트형 R&D'를 도입한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기획국(DARPA)이 도전적 R&D 과제에 적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1단계로 3개 내외의 복수 기관을 선발해 선행연구를 지원하고, 이 가운데 연구 성과가 우수한 1개 기관을 최종 선발해 2단계 본연구를 맡긴다. 1단계 연구기관에는 2년간 연 3억~5억원, 2단계 본연구 수행기관에는 5년간 연 50억원을 투입한다. 한 과제당 7년간 총 300억원이 지원되는 식이다.


본연구 기관 선정 절차는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 대상 포럼 형태의 '공개 평가' 방식으로 이뤄진다. 또 '기업 멤버십' 제도를 도입해 개발될 기술에 관심 있는 기업이 소정의 참여비용을 지불하고 멤버십 회원으로 등록한 뒤, 연구 결과물을 활용해 공동 기술개발과 기술이전 등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최종 평가는 실패에 대한 부담을 없애기 위해 최종 성공·실패 여부를 판정하거나 평가 등급을 부여하지 않고 성과발표회 형태로 진행한다.

산업부는 우선 올해 시범 사업에 예산 1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자동차 △로봇 △첨단장비 △신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향상 등 5개 분야에서 시범과제 약 10개를 발굴할 방침이다. 올해 이날 출범한 그랜드챌린지 발굴위원회는 다음달 12일까지 국민 수요조사를 거쳐 올해 상반기 중 산업계 난제를 발굴하고, 6월부터 시범과제를 공고해 7월 중 수행기관을 최종 선정할 예정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정부 "R&D 문화 바꾼다"=산업부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본격화하기 위해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공동으로 과학계·산업계의 난제에 도전하는 6000억원 규모의 중장기 사업을 기획 중이다. 상반기 중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할 계획이다. 최근 도전적 R&D에 대한 중요성이 커진 만큼 통과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산업부 판단이다.

정부는 실패를 용인하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가 국가 전체적인 R&D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밑빠진 독에 물 붓는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지만, 도전적 R&D 문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굴위원회 킥오프 행사에 참석한 정승일 산업부 차관도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미래 산업의 근본적 혁신을 위해 산업의 난제에 도전하는 새로운 기술개발 전략"이라며 "장기적으로 우리 기술개발 사업 전반에 걸쳐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R&D 활동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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