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만에 끝난 주주총회 "동의하십니까?"

머니투데이 김재현 이코노미스트 2019.03.2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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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보고 크게놀기]주주들의 신바람 축제가 아닌 의무적인 숙제로 여기는 세상

편집자주 멀리 보고 통 크게 노는 법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이상으로 주주총회 폐회를 선포합니다.”

지난 25일 9시 12분 사회자의 입에서 폐회라는 말이 나왔다. 9시 1분 주주총회 개회를 선포한 지, 정확히 11분만에 주주총회는 끝났다. 주식투자를 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주주총회에 참석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주총회가 형식적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말 그런지 보고 싶어서 주주총회에 참석해봤다.

주주총회를 개최한 기업은 코스닥 상장사인 A사. 2000년 1월 설립됐으며 인터넷 네트워크 구축 및 시스템 구축 같은 네트워크 솔류션이 주요 사업인 회사다. 시총이 약 400억원 밖에 안 되는 중소기업이지만, 재무구조는 부채비율이 33%에 불과할 정도로 건실한 편이다.



◇생전 처음 참석한 주주총회
8시 46분 건물 1층에 도착했다. A사 주주총회라는 안내 입간판이 보이고 직원 2명이 출입증으로 게이트를 열어주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가 있는 12층으로 올라 갔다. 입구에 있는 직원이 신분증을 받아 주주명부를 확인한 후 주주총회 참석장을 발급해줬다.

기대반 설렘반으로 주주총회가 개최되는 대회의실로 향했다. 막상 가서 보니 의자 6개가 세 줄로 놓여있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의자에는 정기주주총회 회순 및 의안, 영업보고서 그리고 생수 한 병이 놓여 있었다.



두 명이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고 개최시간인 9시가 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사회자는 9시 1분에 개회를 선포했고 국민의례는 생략한 후 출석주주 및 주식수 보고를 했다.

발행주식은 1460만주, 전체 주주 수는 2838명에 달했는데, 위임장을 포함해서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 수는 29명에 불과했다. 전체 주주의 1%만 참석한 셈이다. 하지만 참석한 의결권 수는 439만 주, 의결권 있는 주식의 33.5%로 주주총회 정족수를 넘었다.

상법 제368조 제1항에 따르면, 주주총회 의결을 위해서는 총 발행주식의 4분의 1 이상이 참석해야 하고 출석 주주 의결권의 절반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총회성립을 선언하는 데 걸린 시간이 약 4분,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대표이사가 나와서 간단히 인사하고 지난해 영업보고서 및 감사보고서를 보고한 후, 총 4개의 의안에 대한 동의여부를 확인했다.

1호 의안은 지난해 재무제표 승인이었고 나머지는 이사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감사 보수한도 승인이었다.

◇“동의합니다”…초스피드로 진행되는 주주총회
이때부터가 압권이다. 처음 참석한 주주총회에서 가장 놀란 건 의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형식이었다. 대표이사가 “동의하십니까”라고 묻자 주변에 앉아있던 참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의합니다”를 외쳤다. 그러면 사회자는 “원안대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를 외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18개의 의자 중 6개의 의자가 비어있고 12명이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대부분이 회사직원들로 보였다. 4개의 의안에 대한 동의여부를 묻는 데 걸린 시간은 총 4분. 결국 마지막에 대표이사가 마무리 발언을 1분 정도 하고도 11분 만인 9시 12분에 주주총회가 폐회됐다.

주주총회장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이 1시간 30분인데, 11분 만에 주주총회가 끝났다. 당연히 주주들의 질의응답 시간은 없었다. 나가는 길에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오늘 참석한 소액주주가 몇 명이냐고 물어보니 다섯 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다섯 명도 안돼 보였다.

'이래서 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안 오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의하십니까”라고 구두로 찬반을 확인하는 것도 너무 허술해 보였다. 초등학교 학급어린이회도 최소한 거수를 통해서 찬반여부를 확인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주주총회도 오십보 백보다. 지난 20일 개최된 삼성전자 주주총회에는 1000명이 넘는 주주가 참석했는데, 주총 시작 후 1시간 넘게 지나서야 입장이 완료됐다. 게다가 상정된 안건을 결의할 때, 동의를 얻어 박수로 통과시키는 방식에 대한 항의도 쏟아졌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기업들에 주주총회는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숙제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자본시장이 잘 발달한 미국에서 주주총회는 다른 의미로 작용한다. 특히 매년 5월 오마하에서 개최되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는 5만여명이 참여하는 주주들의 신바람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2박3일동안 주주총회를 개최하면서 주주들과 소통하고 즐기는 워런 버핏. 우리나라에서도 주주를 동반자로 생각하는 기업이 하나씩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기업의 규모나 이익은 세계 일류라고 뽐내면서도 주주총회는 여전히 삼류,사류에 머물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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