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2019.03.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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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최서진 시인 ‘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

[시인의 집]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2004년 ‘심상’으로 등단한 최서진(1974~ )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는 어두운 방에서 혼자 고독과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시인의 통증이 여실히 드러난다. 시인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촉발된 상처로 인해 창문 하나 달린 방에 스스로 유폐된다. 그 방에서 창밖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떠도는 구름, 빛과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아직도 죽지 못한 채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다는 자괴감과 안 좋은 기억으로 괴로워하던 시인은 창문 밖 허공(공중)이나 허공을 마음대로 떠돌 수 있는 풍선과 풍등을 동경한다.

파수꾼이 사라진 캄캄한 호밀밭에서
절벽으로 떨어진다



어떤 기억은 칼로 새겨진다

가벼운 입 그리고 커다란 귀를 단 사람들
밀밭에 돌을 던진다



높은 구두를 신고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며
회전목마가 도착하는 곳은 어디일까

인간의 방향으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지난다
파랗게 또는 빨갛게

나무에 올라
구름 위에 귀와 입을 걸어 놓는다


‘밤새도록 호밀밭’ 전문


시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 ‘밤새도록 호밀밭’에서 그 단서를 찾아보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성장소설이다. 소설에서는 파수꾼이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지만 시에서는 “절벽으로 떨어”지고 만다. 소설의 주인공 홀든의 주위에 위선자들이 많은 것처럼 시인의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위험에 처해도 주변에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성장 과정에서 흔히 겪은 어떤 일이 주홍 글씨처럼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해로부터”(‘자정의 심리학자’) 시작된 일이 “가벼운 입 그리고 커다란 귀를 단 사람들”로 인해 확산된다. 소문을 낸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행위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 거짓말을 할 때, “소설 쓰지 마라”고 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높은 구두를 신”은 사람들이 던진 돌은 “회전목마가 도착하는 곳”, 즉 떠난 자리로 다시 돌아오므로 결국 자신에게 돌을 던진 셈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면서 죄가 없다고 돌을 던졌지만 ‘당신들도 다 죄인이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무에 올라/ 구름 위에 귀와 입을 걸어 놓는” 것은 효시(梟示)를 연상시킨다. 그만큼 당시의 일과 기억이 끔찍했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양파를 이해한다

아무도 오지 않는 저녁에 여러 겹으로 된 몸을 만진다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양파를 열고 들어가 방에 가 앉는다 매일 질문하는 얼굴이 창문에 있다

뿌리가 들떴던 둥근 모양을 이해해

만일 사이가 있다면 그건 영원히 붙어 있는 거겠지

사람의 얼굴로 피라미드를 쌓는다

혼잣말이 먼 곳에 도착한다

층층이 겹쳐지며 매운맛이 나는 동행 먼 후일의 일요일처럼

양파는 양파를 속이는 데 능숙하다

- ‘양파의 방’ 전문


까면 깔수록 눈을 자극하는 양파는 여러 겹의 거짓말과 소문, 슬픔을 상징한다. 끔찍한 기억으로 인해 “나는 여러 번 죽었다 태어”(‘시인의 말’)났지만 “천장이 높”(이하 ‘벽과 문은 같은 색이다’)은 어두운 방에서 “잠의 바깥을 생각”하거나 “이미 깨진 유리창을 닦는” 꿈을 꾸거나 “캄캄한 벽을 바라보다가 문을 열려고 헛손질”을 한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양파를 이해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벌어진 일에 대한 결과를 공유할 뿐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므로 주워담을 수도 없다. “층층이 겹쳐지며 매운맛이 나는 동행”은 결과에 대한 책임이면서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양파를 열고 들어가 방에 가 앉”아도 창문에 “매일 질문하는 얼굴”이 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발을 숨긴 유령들”(‘그 여름의 섀도복싱’)이 출몰한다. 그때 깨닫는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내일의 날씨’) 없음과 현실을 도피하기보다 동행하면서 서서히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음을.

네가 전화를 걸어
불안해라고 말했을 적에
나와 전화기는 창밖에 있었다

너의 불안은 멈추지 않고
달콤한 맛을 본 인간과 새들이 점점 더 모여들었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저으며
유리문에 머리를 부딪친 새를 보았다

창에 번지던 새의 피
크림이 묻은 입 주위를 닦다가
사랑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시간이 낯설어지고 날기를 멈추었다

맛은 중독성이 강해
골목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끔 날아가는 기억을 보며
입맛을 잃었지만

골목은 빵집들로 넘쳐났다
사랑을 잃고 빵집에 가는 새들도 늘어났다

네가 전화를 걸어
불안해라고 말했을 적에
나와 전화기는 창밖에 있었다

- ‘유리문에 머리를 부딪친 새를 보았다’ 전문


“유리를 갈아 끼운 창틀의 낯빛으로”(‘내 몸을 빠져나간 검은 피처럼’) 겨우 캄캄한 방에서 나와 골목에 있는 빵집 창가에 앉아 커피와 크림빵을 먹을 때, “네가 전화를 걸어/ 불안해라고 말”한다. 내가 불안한 만큼 너도 불안하다. “달콤한 맛을 본 인간과 새들이 점점 더 모여”들어 손가락질할 때, 이제는 너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임을 확인한다. 빤히 보이지만 접촉할 수 없는 투명한 유리문은 서로간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증명하고, “유리문에 머리를 부딪친 새”는 현재 상태와 상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개물이다. “크림이 묻은 입 주위를 닦다가” 다시 깨닫는다. 애증도 사랑이라는 사실을. 순간 과거의 “시간이 낯설어지고”, ‘허공이 아닌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한다.

이제 남은 것은 환경에 변화를 주는 것과 나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가 다 함께 이 긴 터널을 통과”(‘자정의 심리학자’)하기 위하여 “초원으로 가”(‘머나먼 아르헨티나’)거나 바닷가에서 “모래가 될 때까지 나를 밟으며” 걷거나 “오래도록 두 손을 씻”(‘내 몸을 빠져나간 검은 피처럼’)으며 지난 세월과 나 자신을 돌아본다. 혼자 “해변을 따라” 걸을 때면 “사람이 그리워”지기도 하련만, “다시 태어난 이름으로 회복”(‘진짜 이름이 뭐예요?’) 중인 시인은 끝내 ‘용서’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 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최서진. 파란. 140쪽/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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