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
오전 취재를 빌미로 광화문 인근을 둘러보기로 했다. 바깥 공기도 쐬겠다는 흑심은 돌연 괜한 발제를 했다는 후회로 돌아왔다. 경복궁역 인근을 시작으로 커피전문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단 2시간 만에 만 보가 넘었다. 다리가 쑤셨다. 좀 더 자세히 지켜보자고 커피만 수 잔을 마시니 몸도 괴로웠다.
◇광화문 인근 커피점 20곳 중 일회용컵 규제 지킨 곳은 단 3곳 = 경복궁역,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청 주변 무교동, 청계천 주변 등 광화문 사거리를 중심으로 큰 원안으로 포진된 커피전문점 20곳 중 단 3곳만이 전원 머그컵을 사용했다. 규제를 지킨 곳도 그 시간대에만 일회용컵 사용 손님이 없었을 수도 있고, 표본 자체가 작아 일반화는 어렵다. 그러나 커피 전문점마다 6명 중 5명, 8명 중 1명, 9명 중 2명 식으로 숫자는 달랐지만 일회용컵을 안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공기관에 속하는 한 청의 1층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도 일회용컵을 버젓이 사용했다.
손님이 일회용컵을 원하면 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묻지조차 않는 것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들의 경우 일회용 잔 사용 규제를 잘 준수했다. 카운터에서 안내도 분명하게 했다. 머그컵만 사용한 3곳도 전부 대형 프랜차이즈였다. 그러나 중소형 규모의 커피전문점이나 개인 카페는 일회용컵 금지라는 규제가 잘 지켜지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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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회용컵 사용이 준 것은 명확하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1월 (사)한국부인회총본부와 공동으로 주요 도시 내 커피전문점 75개 매장을 대상으로 1회용품 사용 실태 조사 결과, 매장 내 소비자 1665명 중 1377명(82.7%)이 다회용 컵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테이크아웃 이용 소비자 750명 중에서는 694명(92.5%)이 1회용 컵(플라스틱, 종이)을 사용했고, 텀블러 사용자는 56명(7.5%)에 불과했다. 내부에 앉아서는 10명 중 8명이 평균적으로 머그컵을 사용한다는 결과다. 테이크 아웃 이용자는 10명 중 9명이 일회용컵을 사용했다.
카페 직원이 '일회용컵' 매장 내 사용금지가 시작된 지난해 8월 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카페 내에서 고객들이 사용한 일회용 컵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사진=뉴스1
그러나 1회용품 사용점검 시 실적위주의 과태료 부과 조치는 하지 않기로 했다. 또 논란이 된 일명 컵파라치(1회용품 컵 사용 사진 제보)를 통한 과태료 부과도 않기로 했다. 단속을 위한 단속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규제의 '구멍'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업주 입장에서도 손님이 일회용컵을 요구한 뒤 매장 안에서 마시는 경우 속수무책이다. 무조건 나가 달라고 쫓아내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많다. 규제의 '회색지대'가 생기는 부분이다.
사업주가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이 안 된다고 안내만 하면 과태료 부과는 피할 수 있다. 이렇게 규제가 희미해지다 보니 테이크아웃 여부는 형식적인 질문이 돼 버린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회용컵 사용 금지 단속 관련 질문에 "사실 시 입장에서도 한 번 적발 현황, 실태 조사를 해야 하는데 전수조사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현재 관련 통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일회용컵 금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부터 시청 청사 내의 사무공간·회의실·매점·카페 등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금지해 온데 이어 올해 1월 1일부터는 아예 테이크아웃 커피, 배달음식 등 일회용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을 청사 내로 반입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