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대학 총장 출신 사외이사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19.03.19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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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대학 총장 출신 사외이사


고려대 염재호 전 총장이 SK의 이사회 의장인 사외이사로 취임하게 된 것이 화제다. SK는 이번에 처음으로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면서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로 보하는 기업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한다.

일각에서는 대학의 총장을 지낸 인사가 사기업의 사외이사로 가는 데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지만 우리와 문화가 다른 서구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버드대 파우스트 전 총장은 골드만삭스 사외이사고 스탠퍼드대 헤네시 전 총장은 알파벳의 이사회 의장인 사외이사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전직이 아닌 현직 총장들이 사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08년 당시 미국 40개 대학의 총장 중 19인이 사외이사를 겸직했다.

사실 파우스트 총장은 재직 시 스테이플스 사외이사를, 헤네시 총장은 구글을 포함해서 3개 회사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프린스턴대 틸먼 총장도 나란히 구글 사외이사였다. 아이비리그 최초의 흑인 여성 총장 시몬스 브라운대 전 총장은 현직 때 골드만삭스 사외이사를 지냈다.



가장 유명한 총장은 뉴욕 주에 있는 렌셀러폴리텍 잭슨 총장이다. 페덱스, IBM을 포함해서 다섯 군데 사외이사를 겸직했다. 한때 사외이사 총 보수가 130만달러였던 적도 있다. 잭슨은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흑인, 미국에서 두 번째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흑인 여성이다. 벨연구소와 럿거스대 교수를 거쳐 1999년에 렌셀러폴리텍 총장이 되었다. 2022년까지 임기이므로 23년 재직하게 된다. 사립대 최고연봉 총장으로도 유명하다.

골드만삭스는 회사 홈페이지에 사외이사별로 왜 영입되었는지를 간략히 설명해놓았다. 파우스트 총장의 경우 리더십 외에도 리스크 관리 능력, 회사 구성원들의 자질과 다양성 제고 측면에서 기여가 기대된다고 한다. 대학이라는 조직은 사기업 못지않은 관리능력 없이는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 어렵다. 특히 부총장들 외에는 모두 총장보다 상전이라는 교수들을 ‘관리’해야 한다.

미국 기업들이 현직 총장을 이사회에 영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사회의 다양성 때문이다. 1990년대 말 대다수가 백인 남성이었던 이사회가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학교로 가장 먼저 눈을 돌렸다. 학교는 여성과 흑인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넓은 곳이어서 인재가 많았다. 워싱턴대 와이즈 총장은 나이키 사외이사인데 나이키는 와이즈가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점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소수집단 출신들이 독립적인 사고에 강하다고 한다.


다음은 위신이다. 어느 나라든 대학은 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관이다. 대학의 총장을 이사회에 영입하면 기업과 이사회의 위신이 제고되고 결정의 정당성에 무게가 실린다고 믿는다. 사실 대학교수들을 영입하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교수들에게 사업 감각을 기대하는 회사는 없다.

총장과 교수는 기업의 이사회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프린스턴대 보웬 전 총장은 제약회사 머크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기업과의 관계가 프린스턴대의 생명과학 분야를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총장들 대다수는 평생 학교에서 교수 생활만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제로 사기업 내부를 경험하는 것은 진기한 일이다. 보웬 총장은 장시간의 현장 세미나에 참가한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전문가들은 대학총장의 사외이사 겸직은 회사와 대학 양쪽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본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는 사업 관련 전문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총장은 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시몬스 총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아 사퇴했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고액의 보너스가 지급된 일에 대해 책임을 추궁당한 것이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소송을 당하게 되는 데 총장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국내에서도 전직 총장 사외이사가 주주대표소송을 당해 패소한 적이 있다. 판사가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무려 5%로 낮추어 주었는데도 30억원이 나왔다. 해당 회사 오너가 다 내고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끝났다. 만일 현직으로 이런 일을 당하면 학교까지 물의의 대상이 된다.

독립성 문제도 있다. 나이키는 워싱턴대 운동선수들에게 장비를 공급한다. 총장이 사외이사면 거래조건에서 이해상충이 생길 수 있다. 또 나이키는 신흥시장 노동조건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총장이 회사에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면 본인뿐 아니라 학교의 위신이 실추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국내 주주총회 시즌에는 특히 사외이사 선임절차와 자격이 중점적인 관심 대상이다. 다양성 문제도 부상했다. 느리지만 조금씩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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