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재판 끌어낸 故 조비오 신부는? "오월의 사제"

머니투데이 조해람 인턴기자 2019.03.1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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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나눔과 정의 실천...5·18 당시 수습위원 활동하기도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 씨가 11일 오전 광주지법에서 열릴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2019.3.11/사진=뉴스1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 씨가 11일 오전 광주지법에서 열릴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2019.3.11/사진=뉴스1


'사자(死者)명예훼손'. 전두환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서게 만든 혐의다. 전씨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故 조비오(조철현) 신부를 회고록에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 언급해 검찰에 기소됐다.

23년만에 전씨를 법정으로 끌어낸 조비오 신부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았을까.



조 신부는 1937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광주신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수품 이후 꾸준히 약자를 위해 살았다. 1977년 농협이 거짓 고구마 수매 약속으로 농민들을 속인 '함평 고구마 사건' 당시 1000여명의 농민들이 기도회를 열 수 있도록 도왔다.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이들을 위한 야학 설립도 지원했다. 1978년 조 신부의 도움으로 탄생한 '들불야학'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회보 등을 배포하며 활약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는 광주대교구 윤공희 대주교의 위임으로 천주교를 대표해 수습위원회로 활동했다. 조 신부는 온건파로 무기 자진 수거에 나섰지만, 계엄군의 폭력 진압을 목격한 시민군을 설득하기는 어려웠다. 계엄군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진압이 더 잔인해진 26일엔 동료들과 '죽음의 행진'을 조직했다. 조 신부와 시민들은 일렬로 줄지어 4㎞ 남짓을 행진했다. 계엄군과 탱크가 도열한 상황에서 목숨을 건 저항이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엔 신군부의 보복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내란음모 사건에 엮여 옥고를 겪었다.

2016년 9월21일 오후 광주 북구 임동 주교좌대성당 지하 1층에서 고(故) 조비오(조몬시뇰) 신부의 추모 미사가 거행되고 있다./사진=뉴스12016년 9월21일 오후 광주 북구 임동 주교좌대성당 지하 1층에서 고(故) 조비오(조몬시뇰) 신부의 추모 미사가 거행되고 있다./사진=뉴스1
이후 조 신부는 5월 광주의 진상규명에 적극 나섰다. 초대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1989년 국회에서 열린 5·18 청문회에서는 직접 본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청문회에서 조 신부는 "헬리콥터 기총소사는 너무도 엄연한 사실"이라며 "지상에 있는 시민들이 공중에 대해 아무런 공격을 가하지 않는 상태에서 공중에서 사격을 가하는 것은 자위권 발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헬기 사격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나눔도 계속됐다. 1989년엔 정신지체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의 이사장을 맡았고, 광주인권평화재단에 3차례에 걸쳐 2000여만원을 기부했다. 2008년에는 국내에서 28번째로 '몬시뇰'(교황의 명예 사제)에 임명됐다. 2016년 9월21일 췌장암으로 선종하면서는 400여권의 책을 소화자매원에 기증했다. 한평생 기부와 나눔으로 살아온 조 신부의 선종 당시 통장 잔고는 '0원'이었다.

한편 전씨는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 신부를 회고록에서 "가면을 쓴 사탄"이라며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 매도해 2017년 4월 조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에게 고소당했다. 전씨의 재판은 11일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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