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급소화기만 있었어도"…비용탓하며 주방화재 '火' 키워

뉴스1 제공 2019.02.24 08:05
글자크기

일반 소화기 진압 어렵지만 대부분 의무 대상 제외
소방관들 "의무도입 절실"… 전문가 "유인책 필요"

2017년 6월 16일 새벽 경기 고양시의 한 음식점에서 발생한 화재로 불에 탄 주방. /사진제공=고양소방서 © News12017년 6월 16일 새벽 경기 고양시의 한 음식점에서 발생한 화재로 불에 탄 주방. /사진제공=고양소방서 © News1


(서울=뉴스1) 조현기 기자 = # 지난달 14일 서울 구로구의 한 중식당에서 종업원이 튀김기로 기름을 가열하던 중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38분만에 진화됐고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40여명이 대피했고 약 1억200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소방당국 역시 대응 1단계를 발령해 차량 55대와 인원 183명 등 대규모 장비와 인력을 동원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한 소방관은 "현장에서 소화기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며 "K급 소화기가 있어서 사용을 했다면 그 정도까지 불이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화재 중 주방에서 발생하는 사고 건수와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전국 주방화재건수는 2009년 4176건에서 지난해 5065건으로 10년 만에 약 20% 증가했다. 또 전체 화재에서 주방화재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2009년 8.9%에서 2018년 12%로 3.1%p증가했다.



모든 화재가 그렇듯이 주방 화재 역시 초동 조치만 잘 해도 큰 불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 화재와 달리 주방 화재는 기름 때문에 일반 분말형 소화기로 초기 진압이 쉽지 않다.

때문에 정부는 2017년 6월부터 신축하는 음식점 주방에 의무적으로 'K급 소화기'를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개업한 대부분의 음식점에서는 아직 K급 소화기를 찾기가 힘든 실정이다.



◇주방화재, 일반소화기로 진화 힘든데…업주들 "K급 소화기 비용 아까워"

<뉴스1>이 서울 강남역 일대 30여곳 음식점을 직접 돌아다녀본 결과, 대부분 사업장은 K급 소화기를 비치하지 않고 있었다. 대부분 분말 소화기만 비치돼 있었다.

많은 영업주들은 K급 소화기를 처음 들어보거나, 알고 있지만 비용문제로 비치하지 않고 있었다. 한 영업주는 "K급 소화기를 도입하면 별도 교체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큰 특이사항이 없으면 분말소화기를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K급 소화기는 기름 표면에 순간적으로 유막층(비누화 작용)을 만들어 화염을 차단하고 빠르게 기름 온도를 낮춰 진화하는 '주방화재 특화 소화기'다. 식용유 화재는 끓는점보다 발화점이 낮기 때문에 화염을 제거해도 식용유의 발화점(288~385도) 이하로 냉각되지 않으면 재발화 한다. 때문에 일반적인 분말소화기로는 소화가 어렵다.

이에 대해 일선 소방관 A씨는 "주방화재가 나면 K급 소화기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분말소화기가 비치된 곳이 많다"며 걱정했다.

이같은 이유로 소방당국은 2017년 6월 화재안전기준을 개정하고, 개정 이후 신축되는 음식점·다중이용업소·호텔·기숙사·노유자시설·의료시설 등의 주방에 K급 소화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주방이 25㎡ 이하일 경우 K급 소화기 1대, 25㎡ 이상일 경우 K급 소화기 1대 이상과 분말소화기·자동확산소화기·상업용 주방자동소화장치 중 1대를 함께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소방청은 화재안전기준 이전(2017년 6월 12일 이전) 건축물은 K급 소화기를 의무 배치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2016년 4월 4~13일 동안 실시한 음식점 주방 실태조사 결과 식용유를 사용하지 않거나 1리터 이하 사용 식당이 44%를 차지했기 때문에 모든 식당에 K급 소화기를 의무 비치하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관계자회의·전문가회의·의견조회·행정예고 등 화재안전기준 개정을 확정하기 전까지 과정에서 별다른 쟁점이 없었다"며 "2017년 6월 12일 이전에 K급 소화기를 소급 적용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뉴스1 © News1 정우용 기자/뉴스1 © News1 정우용 기자
◇소방 현장·전문가 "화재보험 혜택 등으로 K급 소화기 확대 유인"

그러나 일선 현장의 목소리는 소방청과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A 소방관은 "주방화재는 초동진압이 중요하며, 주방화재에 K급 소화기가 탁월하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K급 소화기의 의무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K급 소화기는 식용유 및 주방 화재에 특화돼 별도 등급까지 마련해서 출시한 소화기"라며 "하지만 현장에 출동해 아직까지 K급 소화기가 비치돼 있는 것은 본 적이 없고, 또 K급 소화기를 통해 진압된 화재 역시 아직까지는 목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B소방관 역시 "주방화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며 K급 소화기 배치를 확대해야 한다"며 "K급 소화기 확대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K급 소화기의 효능과 사용방법을 더 잘 알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방 전문가들은 업주들이 소화기 구매 비용에 부담을 갖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재보험 혜택', '법개정을 통한 K급 소화기 의무 배치' 등 2가지를 대안으로 꼽았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보험사에서 K급 소화기를 설치한 가정이나 영업장을 대상으로 보험료율을 할인해준다면, 국민들은 할인 받은 보험료를 통해 K급 소화기 구매에 대한 부담을 덜을 수 있을 것"이라며 "보험사들 역시 K급 소화기가 확대돼 손해율·지급율이 낮아진다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세진 우송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화기 구매는 돈이 많이 드는 스프링쿨러 설비에 비해 국민적 저항이 적은 편"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K급 소화기를 확대 보급해 주방화재를 줄이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K급 소화기는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당시에 10만원 대로 비쌌지만, 현재 평균 5만원대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